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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Sep 18. 2020

오늘도 나는 딸을 쫓아내는 중이다

이해가 안 되는 딸아이의 사춘기 취침 습관

 "어이~ 따님, 오늘은 네 방에 가서 자기로 했잖아. 왜 또 아빠 자리 차지하고 누웠어?"

 "몰라, 몰라. 오늘도 여기서 잘 꺼야."




딸아이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말인즉슨 어엿한 질풍노도 중이병에 근접한 사춘기 소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사춘기의 조짐은 있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부쩍 예민해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입을 닫아 버리는 습관도 생겼다. 그래도 사춘기를 겪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형편이 낫다.


평소 난 딸과 어울려서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취향도 비슷한 게 많아 딸아이는 여전히 내게는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한마디로 죽이 잘 맞는다라고 할까. 하지만 예전하고 분명히 달라진 행동이 있다. 예를 들어 조금만 본인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표정은 어느새 굳고, 재잘거리던 입도 닫아버리기 일쑤다. 사춘기 때는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답답한 마음에 머릿속으로 가슴을 칠 때가 종종 있다.


딸아이는 모든 게 사춘기에 들어서맘때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나 패턴이 고스란히 나온다. 하지만 오히려 퇴보한 아이의  행동이나 습관을 보일 때도 다. 바로 딸아이의 이해가 가지 않는 취침 습관이다. 

 절대 혼자 자려고 하지 않는다.


딸은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도 잘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거실에서 자신을 뺀 나머지 가족이  TV 시청을 하거나 어울려 놀 때면 잠이 들지 못하고 자꾸 거실로 다시 나오는 습관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일회성에 그쳤고, 지금처럼 아내와 나의 공간인 안방을 들어와서 자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하루 걸러 한 번씩은 안방에 와서 자는 습관이 생겼다. 가끔은 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다 깜짝 놀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자기 전만 해도 자기 방에서 잠을 자던 딸아이가 안방 바닥에 턱 하니 자리를 깔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가는 자는 녀석을 밟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요즘은 침대를 내려올 때면 늘 아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딸아이는 이렇게 한밤중에 안방을 들어오는 일이 하루하루 늘더니 올해 초부터 부쩍 안방에서 우리 부부와 함께 자려고 한다. 이렇게 안방에서 자려는  딸아이와 안방에서 못 자게 막으려는 난 어제도, 오늘도 말도 안 되는 언쟁을 하고 있다.


 "지수야, 며칠째 우리 방에서 잤는데 이젠 네 방에 가서 자야지."

 "아냐. 오늘은 꼭 아빠 방에서 자야겠어. 내 방에 혼자 자기 싫단 말이야."

 "어이~ 따님, 오늘은 네 방에 가서 자기로 했잖아. 왜 또 아빠 자리 차지하고 누웠어?"

 "몰라, 몰라. 오늘도 여기서 잘 꺼야."


생떼를 쓰던 딸아이는 침대 중간을 턱 하니 차지하고 누워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생각도, 그렇다고 침대 아래로 내려갈 마음도 없는 것 같다. 아무리 킹사이즈의 넓은 침대지만 그래도 셋이 자기에는 좀 좁다. 게다가 아직까지 조금은 더운 날씨로 내가 침대를 포기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날이 많아졌다.


사정도 해보고, 일주일에 세 번만 와서 자는 걸로 제안도 해보고, 야단도 쳐보고, 딸아이 방을 없애고 내 서재로 만들겠다는 협박을 해봐도 좀처럼 바뀌지가 않는다. 언제쯤 딸아이를 방에서 내쫓을 수 있을까. 난 14살 딸아이를 둔 여느 아빠와 다른 고민으로 오늘도 방으로 슬쩍 들어온 딸아이와 취침 전쟁이다. 그 전쟁의 끝을 기다리며 싫지 않은 이 전쟁놀이를 이어간다.

 "딸~, 그래도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냐? 침대는 내 자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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