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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pr 04. 2022

아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현생에서는 날 구한 거 같은데

 "영희야, 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4월에 접어든 첫 주말 아침.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너무 좋다. 아내는 주말 아르바이트로 아침 일찍 나가고 아내를 제외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아침이다.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흘렀다. 아내는 처음보다는 일하는 곳에서 불만도 늘었고, 아쉬움도 생긴 듯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자신이 일하는 매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이렇게 아내가 없는 주말, 휴일을 보낸 게 두 달. 내게는 처음보다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아내가 없는 주말 휴일은 아쉬움이 크다. 요즘같이 놀러 가기 좋은 봄 날에는 특히 그런 마음이 그득하다. 그래서 부쩍 아내의 일터를 자주 찾는다. 많이 찾는 주에는 토요일, 일요일 모두 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에도 이틀 중 하루는 꼭 아내의 일터를 방문한다.


아내의 일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아내와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12시 50분이 조금 넘은 시간에 아내가 일하는 곳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1시부터라 아직 10여분의 시간이 남은터였다. 난 아내가 근무하는 매장 근처에서 다른 것들을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1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내가 매장 근처에 있는 것을 그때까진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그렇게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며 십여분 주변을 배외하자 아내와 함께 일하시는 분이 어떤 남자가 어슬렁 거리면서 매장을 훔쳐본다고 아내에게 귀띔을 하는 바람에 그날은 아내에게 들키고 말았다.


오늘은 날씨도 너무 좋아서 아내가 일하는 매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려고 집을 나섰다. 시간이 12시 40분이 다 되어가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충분히 1시 전에 도착할 듯싶었다. 페달에 발을 올리고 조심히 나선 처음과는 달리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고 나니 속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한적한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는 한껏 기분 좋게 달렸다. 금세 도착한 아내의 일터 앞에서 아내에게 함께 점심 먹자는 톡을 보내고 봄 햇살을 맞으며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가 주말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섭섭함이나 아쉬움은 채울 수가 없지만 뜻하지 않게 둘만의 오붓한 점심시간이 생긴 건 나름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톡을 보낸 지 이삼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아내는 건물 밖을 빠져나왔다. 매주 오는 곳이지만 날 보며 한껏 반기는 아내가 항상 날 기분 좋게 한다. 오늘은 '뭘 먹을까' 묻는 내게 아내는 '뭐든 좋아요'라는 메뉴를 주문했다. 아내가 일하는 곳이 상가가 밀집한 중심가도 아니어서 먹을 곳을 미리 정해놓지 않으면 점심시간 내내 식당을 찾다가 시간을 모두 허비할 수 있다. 그래서 늘 난 아내와 함께 먹을 메뉴를 골라놓고 아내에게 '뭘 먹을까'를 묻곤 한다. 아내 또한 특별히 뭘 먹고 싶은 날이 아니면 이런 상황을 너무 잘 알기에 '뭐든 좋아요'란 현답(答)을 내놓는다.


두 달여 동안 아내와 함께 한 점심식사를 생각해보니 몇 군데 되지 않는 식당에서 참 많은 메뉴를 선택해서 먹었다. 근처 하O로 마트 내에 있는 메밀 전문점부터 주꾸미 비빔밥, 청국장 보리밥, 쌀국수까지 몇 가지 되지 않은 선택지에서 골고루 먹어봤다. 오늘은 지난번 갔을 때 만족도가 높았던 쌀국수 가게를 다시 찾기로 했다. 토요일 점심시간이라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우리 둘 모두 국수를 좋아해서 맛이 없지 않은 이상 국수는 어느 정도 만족도가 높다. 오늘도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는 못했지만 평균 이상을 한 듯 싶어서 맛있게 식사하고 여분 산책으로 점심 데이트를 마무리했다. 퇴근 때 마중 나온다는 인사와 함께.


 "자전거 타고 중고서점 가서 책 좀 보고, 혼자 커피 한 잔 하고 영희 씨 끝나는 시간 맞춰서 데리러 올게요. 이따가 같이 퇴근해요"



 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아내를 속상하게 만들 때가 있다. 미리 잡혀 있는 약속이 아닌 급하게 잡힌 약속들을 만들 때가 간혹 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의 필수 불가결한 업무의 연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거절하면 할 수도 있는 그런 약속이다. 다만 가족들과의 관계만큼이나 직장에서의 관계도 어느 정도 신경이 쓰는 내 성격상 매번 거절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세 번에 한번 정도는 저녁 약속에 응하는 편이다. 물론 아내는 내 이런 원칙을 정확히는 모른다. 이렇게 급하게 잡힌 약속들이 당연하게도 술자리이다 보니 이런 문제로 가끔 아내로부터 감점을 받곤 한다. 하지만 내게는 가산점을 주는 분들이 아내의 곁에 계셔서 만회의 기회가 늘 있다.  


지난주에도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아내에게 톡이 왔다. 내게 가산점을 주시는 분 중 한 분이 어김없이 그날도 내게 가점을 무더기로 주셨다. 그분은 아내와 자주 통화하시는 가까운 지인 중 한 분인데 아내와는 언니, 동생 하는 친한 분이다. 그날도 오랜만에 아내와 통화가 이어졌고, 아내와 내가 사는 모습을 아주 오래전부터 봐왔던 분으로서 아내와 내가 예쁘게 잘 사는 모습을 늘 응원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아내 주변에 계시는 친한 지인분들과 통화를 하거나, 만남을 갖고 오는 날이면 늘 기분이 업(Up) 되어 있다. 물론 그 덕에 내게도 평소보다 조금 더 후한 점수를 준다.  


 '점심 맛나게 먹고 열심히 일하고 계시겠네요. 2층 언니랑 통화하다 보니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언니들에 말이 맞네요. 이리 좋은 서방님 만나 행복하게 지내는 날 보면요...'


오늘도 가산점 준 아내의 지인분께 마음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아니 다음번에는 아내가 저녁 약속을 하는 날에 저녁을 사라고 돈이라도 넣어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내도 내게도 참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다.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의 가치는 개인이 아닌 우리가 함께 만든다. 가장 곁에 있음에도 그 소중함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소중한 사람이 당신 곁에 왔을 때 소중함이 더욱 빛을 발하고, 사라지지 않는 사랑스러움을 유지하는 건 모두 그 사람만의 가치가 아닌 함께 있는 당신몫이기도 하다. 예전 광고 카피 중에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도 내가 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싶다.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의미에선 '기브 앤 테이크'이지 않을까. 관계에서는 일방통행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관계는 지극히 드물다. 표현하지 않으면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어도 표현하지 않는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주는 게 당연한 도리이자 의무이다. 그걸 몰라주면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아쉬운 일이 켜켜이 쌓여 허전함만 가득한 삶이 될 테니까.



오늘 코로나 격리 해제된 아들을 포함해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며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스물다섯, 스물 하나'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펜싱 선수가 2001년 마드리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이 나왔다. 아들이 2001년에 개최된 올림픽이 마드리드가 맞냐는 질문에 난 2001년에는 올림픽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2001년에 있었던 아내와 나의 결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2001년이면 아빠, 엄마가 결혼했을 때네"

 "벌써 21년 전이네요. 그때 태어나지 않은 전 내년이면 군대 가고"

 "난 내년이면 고등학생이네"

 "그러게 아빠는 내년이면 오십이네"

아이들이 부쩍 컸다는 생각의 한편에 내 나이 오십이 잠깐 서글프게 터져 나왔다.

 "어, 엄마도 내년이면 오십이네. 맞지?"

 "어, 어? 무슨 소리야. 엄마가 아빠한테 오빠라고 부르잖아. 엄마 내년에 오십 아냐"  

딸아이의 놀리는 한 마디에 아내는 자신은 아닌 척 발뺌했다

 "에이 엄마 호랑이 띠잖아. 우리 다 안다고"

잠자코 아내와 딸아이의 얘길 듣던 내가 아내에게 점수를 딸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한 마디로 아이들의 빈정을 사겠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얘들아, 니들 몰랐구나. 엄마 아빠랑 띠 동갑이잖아. 서른일곱"

  "......"


오늘도 가산점이다. 플러스 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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