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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an 07. 2022

어느 부부에게나 위기는 오기 마련이다

두 달을 참아온 아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난 두 달 전 직장을 옮겼다.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직군의 업무였고, 10년을 다닌 회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그 결심을 더 흔들리지 않게 했다. 아내는 나의 그런 마음을 잘 알기에 이직하는 회사에서 그려질 내 모습이 걱정은 됐지만 그런 나의 결심과 의지를 믿고 응원했다.


그렇게 입사한 난 업무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한 달을 제안 업무에만 매달렸고, 다시 한 달이 찾아왔을 때에는 조직개편에 따른 중책을 맡게 됐다. 입사 전부터 계획하고, 이미 그려진 그림임을 알았기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중책에서 오는 부담감을 없애고, 업무를 즐기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조직의 관리자라직무를 함께 받았다. 그런 부담감과 책임감이 최근까지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중 많은 부분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문제는 최근까지 이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던 몸에 드디어 이상 신호가 왔다. 얼마 전까지 아프던 허리의 통증이 최근에는 복부 통증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던 유전적 병력도 있고, 몇 년 전 이유 없이 급성 췌장염으로 쓰러졌던 경험도 있던 터라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아내에게는 말도 못 하고 우선 병원부터 찾았다. 그렇게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를 함께 했다. 다행히 초음파 상에는 특이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혈액 검사에서 나오는 소견 또한 무시할 수 없어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일주일을 꼬박 근심과 걱정 속에 살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이 머물렀다. 내가 정말 많이 아프면 남아있는 가족은 어떡하지. 당장 치료를 위해 쉬어야 하면 퇴직연금에 넣어놓은 돈을 받을 수 없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이기도 했고, 사랑하는 내 가족에 대한 걱정이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났고 검사 결과 확인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수치는 보이지 않았다. 생기지도 않았던 병 때문에 별의별 걱정을 다한 내가 조금은 우습고, 한심했다. 하지만 특별한 병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내심 마음이 편해졌다. 더 웃겼던 상황은 검사 결과를 듣고선 아팠던 부위가 거짓말같이 통증이 줄어들었고, 하루, 이틀 뒤에는 남아있던 통증도 완전히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은 저녁 아내에게 슬쩍 그간 있었던 통증과 병원 검사 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내는 내 얘기를 들으며 조금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였지만 더는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고 나는 최근 해왔던 대로 회사 일에 조금 더 신경 쓰며 다시 한, 두 주를 지났다.


연말이 되면서 아내는 마음속에 있는 얘기들을 꺼냈다. 요즘 내가 회사일 하는 걸 보면 최근 수년간 봐왔던 내 직장 생활과는 많이 다른 생활 패턴을 보이는 게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불쑥불쑥 계획 없이 일하는 방식이며, 갑자기 잡는 약속도 그렇고 무엇보다 과거엔 집에 오면 늘 에너지가 넘치고, 회사 얘기도 많이 하던 사람이 요즘은 집에 오면 그냥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모습이란다. 대화를 하려고 해도 집중도 못하고, 소파에 앉으면 졸고 있고. 아내 입장에서 보고 있으면 위태위태하다고 생각할만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난 걱정하는 아내의 말을 제대로 듣고, 이해해주지 못했다.


 "당연하잖아요. 20년을 했던 일과 다른 일을 하는데 스트레스도 있고,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니 또 힘들고. 그렇게 하루를 씨름하며 보내고 나면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되는 거죠. 당분간만 이해해 주면 안 돼요. 나도 업무가 적응되고, 일이 어느 정도 손에 잡히면 예전같이 생활이 될 거예요"

 "몸 생각도 해야죠. 예전 30대 때 하던 식으로 일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사람 뽑아놓고 너무 철수 씨한테 일을 다 넘기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막말로 전 회사에서 하기 싫은 일 스트레스받으며 꾸역꾸역 회사 다녔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이해해 줘요"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조용히 며칠이 지났다. 하지만 조용했던 며칠 이후 아내의 가시 돋친 말이 늘었고, 그 말속에는 항상 뼈가 있었다. 


'각자 자기 삶이 있는 거죠', '사람이 일, 가정 모두 잘할 수는 없어요'. '나도 이제 정말 일을 해야 할까 봐요' 


아내의 말에 담긴 뜻을 잘 알기에 변명도, 설득도 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집안 분위기는 평소 같았지만 아내와 나 사이에 며칠간 생겼던 미세한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예전에도 가끔 언쟁 있었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툭툭 털어버리는 우리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또 며칠이 지났다. 나름의 위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새해를 맞았고, 출근 아침까지 별 변화는 없었다. 월요일 퇴근 무렵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소통전문가 김창옥 교수의 강연 영상이었다.


 '유튜브 보다가 볼만한 강연 영상 있길래. 본 건지 모르겠네요. 퇴근하면서 봐요'


김창옥 교수 강연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강사의 영상이니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전달한 줄 알았다. 하지만 강의 주제를 보고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강의 내용을 들으면서 가슴까지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사는 게 숨이 찰 때'


퇴근길 강의 영상을 보며 아내의 최근 상태와 앞으로 자신의 자세에 대한 다짐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퇴근하는 내내 한 시간이 넘는 영상을 시청했다. 혼자 킥킥대며 웃기도 했고,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며 눈 끝에 모이는 눈물을 찍어내며 강의를 들었다.


그날 이후 특별한 조치 없이 며칠간의 냉전 분위기를 걷어내고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왔다. 물론 아내가 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도 아내의 그런 감정들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조금은 양보하고, 가끔은 모른척하는 게 모두의 행복을 지키는 일임을 알기 때문에 그냥 해오던 대로 살아간다. 평소 회사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모든 일들에 대해 아내와 얘기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 나였다. 아마 지금 회사로 이직하면서는 그런 소소한 일들에 대한 대화가 많이 줄어든 것은 내가 만든 작은 분란의 시작이자, 냉전의 이유였다. 사람은 살면서 변한다고는 하지만 사건, 사고뿐만이 아니라 평소 말하는 습관이나, 행동의 변화도 가족 간에는 '살면서 변화한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살면서 숨이 찬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외로움의 감정에서 올 수도 있다. 평소와 다른 가족의 변화로 일상이 바뀌고, 항상 곁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갑자기 밖으로 돌 때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힐 수 있다. 아마 아내는 최근에 숨이 차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조금은 숨이 차 있는 상태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아내의 찼던 숨이 편해질 수 있게 내가 산소가 되어주고, 숨이 차게 죄고 있는 짐을 함께 들어주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아내의 호흡은 차츰 나아질 것이다. 오늘도 그런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누군가에게는 콧방귀 뀌며 웃을 수 있는 일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일 수 있다. 모든 부부에게는 저마다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위기는 객관적 평가나 관련 없는 사람의 조언이 무의미하다. 오롯이 그 문제의 중심에 있는 당사자만의 주관적 관점일 수밖에 없다. 경중의 문제가 아닌 빈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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