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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06. 2022

아내의 마지막 출근

당신의 행복한 출근은 계속될 겁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점심시간에 봐요


일을 새롭게 시작한 지도 4개월이 지났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지만 정기적인 출근을 한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내는 좋아하던 일을 하게 됐다고 마음으로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정작 주말 출근이라 미안한 마음에 드러내 놓고 좋아하진 못했다.


아내와 주말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아내의 출근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인 만큼 축하해 줄 일이었다. 그래서 아내보다 더 좋아해 줬더니 그제야 자신의 감정을 한껏 표현하며 좋아했다. 


아내가 일을 하면서 우리의 주말은 많이 변했다. 아내의 출근으로 주말이 조금 더 바쁘게 흘렀다. 아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 주말에는 각자의 시간이 없었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각자의 시간이 많이 늘었다. 물론 각자의 시간뿐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도 같이 늘었다.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함께 퇴근하는 일도 종종 생겼다. 얼마 전까지 회사 방문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우리 집에선 나 하나여서 아내만의 특혜처럼 여겨졌다. 이젠 아내의 출근으로 나도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되었다.


날이 따뜻해지고 좋아지면서 아내를 찾아가는 길은 더 신이 났다. 바로 자전거의 계절이 왔기 때문이다. 움츠려 들고, 웅크렸던 계절에서 벗어나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로 기분전환까지 하니 일석이조다. 아니 풀코스 요리 같다. 애피타이저 같은 기분전환 라이딩에 메인 메뉴로 아내와 둘만의 점심 데이트 그리고 후식으로 조용한 카페에서 오후를 향기 나게 바꾸는 커피 한잔과 혼자만의 글쓰기까지. 그렇다고 매번 같은 메뉴를 선택하진 않는다. 점심 메뉴는 그날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바람도 차고 을씨년스러운 날씨일 때는 뜨끈한 국물이 있는 쌀국수를 먹었고, 미세먼지 가득한 탁하고 텁텁한 날씨에는 시원하게 뚫어줄 매콤한 주꾸미 볶음을 먹었다. 화창한 날씨가 시샘 날 때면 샌드위치를 포장해 근처 벤치에 자릴 깔고 소풍 나온 분위기까지 낼 수 있어서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늘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였다.


아내와 점심 데이트가 끝나면 이후 두 시간은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이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까지 라이딩을 할 때도 있고, 중고서점에 들어가 아내 퇴근 때까지 책 보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낼 때도 있다. 근처 카페에서 책장을 펼쳐 커피 향을 벗 삼아 독서 삼매경을 즐기다가도 불쑥 떠오르는 글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분주하게 글을 쓰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좋아 매일 아내의 퇴근 전까지 혼자 노는 게 이젠 일상이 됐다.


하지만 이런 주말 일상끝날 예정이다. 얼마 전 아내 직장 단체 톡방에 알림이 고, 알림의 내용은 실적이 좋지 않았던 아내 매장의 철수 소식이었다. 어차피 입사 때 4개월짜리 단기 알바였지만 정작 연장 여부를 물어볼까 고민하던 아내에게는 아쉬운 소식이었다. 매장 철수 일정이 확정이 되지 않아서 매장 철수 때까지 일하지 않을까 잠깐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매장 철수도 아내의 계약기간과 똑같이 5월 말로 결정되었다. 아쉽지만 어차피 한, 두 달은 쉬었다 다시 일을 할 생각을 했었던 아내에게 계획대로 된 거라고 난 아내를 위로했다.


지난 일요일은 아내의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일했던 기간은 짧았지만 일하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출근 전날 걱정했던 모습부터 고정으로 출근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설레하던 모습까지 눈에 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4 개월이 지나갔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일하면서 있었던 얘기를 집에 와서 끊임없이 하던 주말 시간도 당분간은 없을 듯하다. 매장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 얘기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그런가 아내의 마지막 출근 모습이 더욱 아쉬움을 가득 담아 보였다. 평소에는 일요일에 아내의 매장을 찾지 않지만 날이 날인만큼 난 지난 일요일 아내의 매장을 찾았다. 내게도 당분간 아내와의 이 시간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스치니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정작 제일 아쉬운 건 아내일 테니 일부러 내색은 하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서며 멀리서 들여다본 아내의 일터는 철수하는 매장같이 물건도 거의 없고, 판매대 여기저기가 휑하다. 아니 매장 전체가 을씨년스러워 보일 정도로 비어있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여기저기 쓸고, 닦는 아내가 먼발치에서부터 눈에 들어와 더 마음이 쓰였다. 


오늘까지 고생한 아내를 위해 이곳에서 우리의 마지막 점심을 함께 했다. 생각처럼 근사한 식사 메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퇴근 무렵 매장을 둘러보던 아내는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플라워마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식물 구경을 했다. 퇴근 시간만 되면 아내를 후다닥 일터에서 멀어지도록 서두르던 나도 오늘만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그곳에 머물렀다.


한 참을 둘러보고 나오던 아내가 매장에서 두고 온 게 있다며 다시 매장으로 돌아갔다. 금방이라도 올 것 같던 아내가 돌아온 건 십 분이 지나서였다.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일하던 매장의 바로 옆 매장을 가리키며 조만간 다시 이곳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옆의 난 매장은 일도 많고, 근무시간도 전에 일하던 곳보다 길어질 거라며 미리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아내의 걱정은 설렘 한가득 담은 걱정이다. 


 "아무리 그래도 좀 쉬었다가 다시 일 시작했으면 좋겠네요. 영희 씨~!"



영희 씨, 사 개월 동안 고생했어요.  

아침잠이 많던 당신이 주말에 일곱 시도되지 않았는데 일어나는 걸 보며 얼마나 안쓰러웠는데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나, 매장을 찾는 손님들을 상대하다 보면 상처도 받고, 몸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늘 주말을 함께 하지 못한 내게 미안하다 얘기하고, 일을 하면서 20년을 넘게 가족을 위해 일하는 남편인 나를 더 생각해 주는 당신 마음이 너무 좋았어요.


영희 씨, 늘 고맙고 감사해요.  

나도 영희 씨 일하는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들을 선물 받았어요. 우리가 함께 하던 주말과는 많이 다른 시간이었어요. 평소 주말, 휴일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혼자 일어나 움직이다 보니 가족 모두가 일어난 이후의 시간에는 너무 휴일이 빨리 가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하지만 영희 씨가 일하는 기간에는 당신이 출근하는 시간에 내 시간도 함께 움직이다 보니 주말, 휴일이 무척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만큼 시간도 많았고요. 특히 당신과 점심을 먹기 위해 찾았던 곳에서 영희 씨 일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도 나고 둘 만의 시간이 더 많이 생긴 것 같아 더 좋더라고요. 영희 씨를 기다리는 퇴근 시간은 설레기까지 했다면 믿으시겠어요? 늘 함께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하고, 각자의 시간도 중요한 것을 새삼 배우게 됐네요.


영희 씨, 사 개월이라는 시간이 제겐 짧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당신에게도 그렇죠? 전 늘 영희 씨를 응원해요. 영희 씨가 하고자 하는 일도 응원하고요. 하지만 몸 상하지 않게 건강도 잘 챙기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지냈으면 해요.  저는 늘 당신을 사랑하고, 존중한답니다. 당신과 오랫동안 지내면서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내 마음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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