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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13. 2022

여보, 우리가 이제 쌓아야 할 건 의리인가요?

아내의 직장에서 무보수로 일했습니다

 "에휴~, 내일 고생 좀 하겠네요"

 "왜요? 내일 무슨 일 있어요?"



오랜만에 휴가를 내서 아내, 딸아이와 함께 가까운 김포 대명항에 다녀왔다. 교통편이 불편했지만 항상 대중교통으로 다녔던 우리에겐 늘 있는 불편함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곳에서 바다가 보이지 않아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함께 나온 외출이라 큰 불만들은 없었다. 다행히 승강장을 벗어나 5분여를 걸으니 금세 바다가 나왔다. 사실 갈매기와 고깃배만 없으면 강이라고 해도 믿겠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라고 보이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떡하니 강화도가 버티고 있었다. 동해 바다를 보며 자란 아내와 나에겐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대명항 앞바다가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김포 대명포구는 엄연히 조수간만의 차가 있고, 바다 물고기가 잡히는 바다는 분명했다. 우린 바다내음을 뒤로하고 바닷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싱싱한 자연산 활어회를 먹기 위해 미리 봐 뒀던 식당으로 이동했다. 가격대가 동네에서 먹던 횟집보다 비쌌지만 바다까지 나왔으니 2~3인분용 고급 코스로 주문했다. 들어선 식당의 인상은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코스로 나온 키조개, 전복, 해삼, 멍게, 낙지의 싱싱함에 우린 아쉬움을 잊었다. 게다가 자연산 활어회 삼총사(숭어, 밴댕이, 삼식이)의 식감과 맛에 제대로 반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입은 거짓말을 못하나 보다. 아내와 딸아이 모두 '역시 자연산'이란 감탄사를 연신 토해내우린 맛있게 식사를 마쳤다. 


싱싱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생선인지라 식후 입안의 비릿함은 우리에게 커피를 간절하게 했다. 깔끔한 무언가로 마무리할까 해서 찾아간 카페에서 우린 창이 큰 액자 같은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평일이라 카페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고, 2층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다. 막힘없이 뻥 뚫린 통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가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참을 얘길 하다 갑자기 몇 년 전에 딸아이가 아내와 이곳을 다녀갔다는 얘기를 했다. 그제야 이곳이 낯익은 이유를 알겠다고 아내가 말했다. 그 얘길 듣던 난 갑자기 몇 년 뒤에 이곳을 다시와도 아내는 똑같은 얘길 할까 하는 재미난 궁금증이 들었다. 


카페 앞에 보이는 튀김 전문점을 두고서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며 난 입맛을 다셨다. 앞에 바다를 보고서는 지는 노을바다가 아닌 강화도에 걸리겠네 등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렀다. 스마트폰을 보던 아내가 갑자기 한 숨을 쉰 건 대화가 잠시 멈춘 뒤였다.


 "에휴~, 내일 고생 좀 하겠네요"

 "왜요? 내일 무슨 일 있어요?"  여행지까지 와서  무거운 한숨을 쉬는 아내가 걱정되어 무슨 일인지 물었다.

 "모레가 어버이날이잖아요.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도 카네이션 관련 상품이 나왔나 봐요. 아마 온라인 전용으로 판매했는데, 주말에 진열해서 팔라고 오늘 매장으로 백개 정도 보낸다네요" 안 그래도 어버이날이 포함된 연휴라 플라워 마트에는 손님이 많을 텐데 이벤트 상품까지 가져다 놓는다고 하니 걱정이 앞섰다. 혼자 매장에서 포장에, 판매까지 할 아내를 생각하니 걱정이 더 커졌다.

 "내일 오전에 내가 나가서 도와줄까요?"

 "정말요? 나야 고맙죠. 나오면 내가 맛있는 점심 사줄게요" 내일 밀려올 손님 맞을 걱정에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던 아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사장님한테 내 몫까지 아르바이트 보수 1.5배로 쳐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음날 아침 아내는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전날 저녁 주중 아르바이트하는 직원이 백개의 카네이션 상품 사전작업을 마무리 못한 탓이다. 매장 오픈전에 상품 사전 작업까지 끝내기 위해서는 아내는 출근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출근하고서 서둘러 아내의 일일 헬퍼로서 나도 출근을 서둘렀고, 9시가 조금 지나서 아이들을 깨우고 아내가 있는 플라워 마트 매장으로 이동했다. 얘기했던 것보다 한 시간이이른  등판으로 아내는 평소보다  더 반겼다. 그렇게 아내와 함께 한 시간여를 매장을 지켰지만 생각보다 찾아오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결국 한 시간 삼십여분을 함께 있다가 아내의 배려 덕에 잠시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시간이 흐른 뒤 난 아내와 점심을 함께하기 위해 다시 아내의 일터를 찾았다. 둘만의 오붓한 점심시간을 보내던 중 아내는 오후에 한 시간 정도 함께 있다가 자신과 함께 퇴근하자고 말했다. 당연히 아내의 부탁을 거절할 줄 모르는 나이기에 아내 혼자 판매를 해야 하는 오후 한 시간여를 난 다시 매장을 지키며 아내를 도왔다.


 "철수 씨는 다른 거 할거 없고요. 판매 물품을 가 체크해야 하니 물건을 그냥 들고 계산대로 가시는 손님만 제가 있는 대로 보내주세요"

 "네, 알겠어요. 혹시 영희 씨가 포장하느라 바쁘면 나중에 체크 가능하도록 들고 가시는 식물 사진 꼭 찍어놓을게요"


 아내와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해놓고 잠시 입구 쪽을 멍하니 보던 시간도 잠시 점심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아내가 일하는 매장도 이곳저곳 손님이 붐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부탁한 대로 식물을 계산하기 위해 그냥 들고 가는 손님에 한해 아내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안내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내에게 들었던 풍월로 난 판매를 위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손님, 그 카네이션은 일주일이면 시들 거고요. 꽃에 함께 꽂혀있는 테이블 야자는 계속 자랄 거예요"

 "아, 물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갈아주시면 돼요"

 "수경재배라고 해도 몇 년은 그 유리병에서 키울 수 있어요"


그렇게 몰려든 손님을 맞아 한 시간을 서서 꾸준히 설명하고, 구매를 독려했다. 그렇게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아내와 함께 일하시는 주말 아르바이트 직원분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식사 후 돌아온 직원분은 아내와 함께 일하는 날 보고서 놀란 눈치였고, 아내의 설명으로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30여 분만 기다리면 아내의 퇴근 시간이라 난 매장을 벗어나 손님처럼 플라워 마트 이곳저곳을 구경 다녔고, 40분이 지나 아내와 함께 퇴근할 수 있었다.


아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어느덧 삼 개월이 지났다. 아내가 일하는 곳에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 자주 방문했지만 아내가 일하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해서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던 아내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기에 오늘의 무보수 매장 판매 지원은 전혀 아깝지가 않다. 아내는 나의 도움만큼 조금은 손을 덜었으니 나름 충분한 값어치를 했다고 믿고 있다.  


대부분의 기혼자들은 얘기한다. 부부간의 감정은 연애 시절 그리고 결혼초까지는 뜨거웠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식기 마련이고, 사랑보다는 오히려 가족 간의 '정'에 가까워진다고들 한다. 이십 년 정도를 지낸 부부 사이에서는 '의리'란 게 생겨서 오히려 형제간의 우애보다 더 돈독한 우애와 의리가 쌓인다고들 한다. 그렇게 따지면 아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 '의리' 어디쯤에도 와있지 않을까 싶다. 아내와 때로는 연인이자, 친구이고, 가족으로 이십 년을 살았다. 앞으로의 이십, 삼십 년 아니 그 이상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의리'의 감정도 조금씩 새로이 쌓여가지 않을까. 사이좋은 부부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어느 순간부터는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우리 부부도 그런 감정 이해와 공유가 훨씬  익숙해져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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