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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r 19. 2024

투박한 양푼에 달달한 파를 넣는다

군산 <양푼 왕갈비>에서 적당히 맵게 소주를 마셨다

  비가 오는 날연 군산 '양푼 왕갈비'가 생각난다. 쌉싸름 시원한 소주잔을 한 입에 탁 털어 넣을 순간에 한 숟가락 떠먹을 수 있는 짭조름한 안주가 생각나서 군산 나운동에 있는 이곳이 타는 목마름으로 그립다.


  솔직히 간판도 메뉴를 담은 그릇도 투박한 것이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오픈 시간부터 사람들로 가득한 테이블마다 떠드는 소리에 괜한 의심도 사라지게 만들고 일종의 기대가 밑반찬에서 생긴다.

  족발도 그리고 잡채도 또 김치전도 나오는 와중에 준비가 한창인 주방에서는 주메뉴인 양푼 왕갈비가 나오기 전에 이렇게 소주 안주를 마구 준비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소주 한 병은 시작할 수 있으나, 호기롭게  적당히 맵게를 주문한 메뉴가 기대되어서 반잔씩 따르면서 기다렸다.

  정말 투박하게 나온 메뉴가 자리에서 팔팔 끓기를 기다리면서 같이 나온 파김치를 듬성듬성 썰어서 함께 넣었다. 이렇게 하면 파의 달달함이 양푼갈비의 맛을 한층 좋게 한다고 해서 말이다. 물론 생으로 파김치를 한 번 먹어보고 달달함 보다는 알싸한 매운맛을 느꼈지만, 양푼에서는 신기하게 달달해진다니.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밖의 빗소리도 묻어버릴 실내 각자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한 이런 식당이 좋다. 주변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만큼의 적당히 시끄러운 소음이 나와 상대방의 이야기도 정말 편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너무 조용한 식당에서는 감히 말하기 힘든 내밀한 이야기도, 취기에 오른 약간 큰 목소리도 속 시원하게 서로 나눌 수 있으니까.

  좋다.

  시원한 소주도

  속 풀리는 안주도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도.


  이렇게 안주가 익어가는 시간에 비워진 술병 하나가 다시금 시원한 파란 병을 부르고 있으니, 답답한 속마음도 빈병처럼 가볍다.

  국물이 시원해지라고, 콩나물도 더 넣었다. 김치와 함께 넣은 파김치도 적당히 익었고, 고기도 먹기 좋게 가위로 잘라줬다. 그 와중에 국물을 떠먹어보니, 땀이 나게 맛있다. 역시나 비가 오는 날에 소주를 부르는 매운맛이다. 그렇게 안주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탄소화물을 가득 담은 볶음밥을 먹다 보면 포만감 가득한 배와 매운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 계란찜과 함께 나란히 서있는 빈 술병을 보게 된다.

  참으로 적당히 취했다. 빈병의 숫자만큼은 답답한 내 속마을을 비웠을 테이블의 하소연에서 나는 얼마나 투정을 부렸을지.

  알면서도 모른 척 다시 비워야 하는 다음의 술잔에서 내일의 힘들어하는 나에게 다시금 이곳에서 한 잔 하라고 권해본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래야 더 맛있는 안주에 시름을 털 것 아니겠니..."

 

  비가 오는 날.

  투박한 양푼에 달달한 파를 넣고, 적당히 매운 국물에 소주를 마셨던 기분 좋은 하루.


  좋다.

  적당히 매웠기에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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