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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Apr 06. 2024

한국인 부모님과 문화 차이를 겪는 한국인 딸

국제결혼 하는 딸을 둔 부모님의 심정

아무리 좋은 남편이라 할지언정 처음부터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환영받지는 못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스물 하나 먹고 국제결혼을 하겠다니, 당연히 부모님께서 고민이 많으셨을 수밖에 없다. 나를 위하시는 그분들의 마음은 알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몇 번의 마찰을 겪었다.


우리를 제일 괴롭힌 것은 바로 문화 차이였다. 당연히 남편과 부모님의 문화 차이도 있었지만, 의외로 문제는 나와 부모님 사이에서 붉어졌다. 문화 차이는 실생활을 넘어 연애와 결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크게 작용했다. 부모님께는 “외국인”과 “국제결혼”하는 딸이 걱정스러우셨겠지만 나는 더 이상 외국인, 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평생 해외에서 자란 나는 이미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토종 한국인인 부모님과는 멀어진 상태였다. 기숙학교에서 자라며 물리적으로도 떨어져 생활했던 나는 어느새 부모님 모르게 훌쩍 커버렸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한 번에 받아들이기 힘드시지 않으셨을까 싶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당신과 같은 입장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딸이 낯설게 느껴지셨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과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왔고 대화도 스스럼없이 나누며 지내왔기에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런 일은 피차 처음이었다. 매번 쿵짝이 잘 맞아 온 우리인데, 이렇게까지 양 끝에 서 서 대립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과 부모님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가 부끄러웠고,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스트레스가 극치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깨달았던 것 같다. 지금이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완전하게 독립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아마 나와 부모님은 끝까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내가 나라는 개인으로서 온전하게 서는 순간이었다. 그제야 부모님의 입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분들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억울했던 것만큼 죄송스러웠다.


한바탕 성장통을 겪고 나니 우리 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 이후에 부모님도 나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깔끔하게 포기하며 관계를 새롭게 회복해 나갔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사위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부모님이시다.


나를 감당할 사람은 남편 밖에 없다며… 고마워해야 한다며… 누구보다도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응원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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