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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상작가 해원 Apr 05. 2024

1-6. 사무실에 울린 두 발의 총성

1장. 환희, 꿈에 그리던 미국

도대체 왜 나는 병원에 실려 간 것일까? 혈액 채취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나를 의사도 더는 어쩌지 못했다. 얼마 후 같이 근무하던 현지 직원이 나타나 사태를 마무리하면서 나는 무사히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진화식 한 명뿐일 거로 생각했다. 나는 정신을 차려 진화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의외의 답변이 들려왔다.     


“법인장님이 차에서 잠깐 주무신다고 해서 저는 혼자 다른 데 가서 쉬다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괜찮으시겠냐고 여쭤봤는데 막무가내셨어요.”     


그렇게 나는 차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차에서 잠들어 있는 사이 누군가 911에 신고했고 다행히 먼저 출동한 병원에서 나를 응급실로 옮겨간 것이다. 만약 경찰이 먼저 도착했더라면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미국에 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아 나는 그렇게 큰 위기를 넘겼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가 불미스러운 일로 추방을 당한다면 그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지만 짐작만으로 그 상황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술에 취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출근해 업무를 시작할 때 회사에는 수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이건 대기업의 자회사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었고 직원들의 근무 태도나 일 처리 방식은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내가 가자마자 처음에 돌입한 일은 업무처리에 방해 요소가 되는 문제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일이었다. 첫날부터 그 리스트 20여 개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회사는 엉망 그 자체였다. 그중에 그 무엇보다 크고 급한 방해 요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뜻밖의 사람이었다.     


회사에는 사택 용도로 사용하는 집이 하나 딸려 있었고 그 집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에 흉가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집 앞 공터에 큰 컨테이너 두 개를 놓고 생활하는 직원이 한 명 있었고 회사 내에서는 그를 목수라고 칭했다. 회사에서 아주 가끔 생기는 목수 일을 맡기고 그에 따른 임금을 지불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행색이 마약을 하는 듯 보였다. 왜 그가 거기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속 시원히 얘기해 주지 않았다. 다만 거기서 그의 역할은 목수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영어 선생 역할을 한다는 거였다.      


그가 회사라는 공간에 머물러야 할 어떤 이유도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를 내보내기로 마음을 굳힌 나는 직원을 통해 정식으로 나가 줄 것을 요청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발생했다. 나와의 만남을 극도로 피하던 그는 내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사무실에 찾아간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농부들이 그렇듯 그는 총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전에도 총을 겨눠 직원들을 위협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결국 자기가 살던 터전을 하루아침에 뺏기게 된 그는 밀린 임금을 핑계로 사무실 직원을 협박했고 자기에게 지급되어야 할 수표가 발급되지 않자 결국 총을 뽑아 든 것이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The Office

내 미국 생활의 또 한 번의 위기가 지나가는 소리였다. 다행히 그의 총탄이 사람을 향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 총탄이 사람을 향했다면 나는 그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오히려 모든 일을 더 수월하게 만들었다. 경찰을 동원하겠다는 나의 지속적인 압력과 변호사의 공증을 마친 퇴거 명령서를 그는 더 견뎌내지 못했다. 그가 나가자 회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업무를 떠나서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가까이에 산다는 건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나 역시도 이역만리타국 땅에서 총에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일로 인해 회사에는 뭔가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희망의 빛도 잠시 이젠 더 큰 어둠이 미국 법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 본사에서 대대적으로 팀을 꾸려 감사를 나온다는 것이다. 감사의 목적은 ‘법인 폐쇄’. 4년 연속 적자에 이어 기업 신용등급이 위험 등급으로 떨어지자 본사에서 특별 조치를 명령한 것이다. 대부분 감사는 감사부서에서만 나오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감사실과 경영기획실이 합동으로 감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미 ‘법인 폐쇄’라는 목적을 가지고 나온 그들을 상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사실 직원들의 오랜 경험과 기획실 엘리트들의 예리함이 합세한다면 이깟 법인 하나쯤 ‘폐쇄’로 결정짓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미국 법인에서 희망을 보았다. 분명히 살려낼 수 있으리라는 강력한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효자 회사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강력한 그들의 압박을 이겨낼 대항 자료를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해외 법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되는 불필요한 낭비요인을 제거할 방법을 제시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미래 비전에 대해 그들을 설득했다. 모든 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던 그들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본사의 지원이 부족했던 점과 기존 영업방식의 문제를 더 크게 다루면서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의 목적인 ‘법인 폐쇄’는 불과 일주일 사이에 ‘추가 지원’으로 선회했다. 그들도 미국 법인에서 희망과 비전을 발견해 낸 것이다. 마지막 평가의 시간 숨죽여 기다리던 나에게 감사반장이 말했다.     


“이 회사는 반드시 살려야 할 회사라고 판단됩니다. 들어가는 대로 회장님께 보고 드려 현재 본사로부터 차입해 쓰고 있는 대여금을 자본금으로 전환하도록 하겠습니다. 법인장님께서는 직원들과 의기투합하셔서 회사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속으로 브라보를 외쳤다. 적군으로 우리를 없애려고 찾아온 그들을 180도 바꾸어 강력한 지원군으로 만든 셈이었다. 감사실과 기획실의 도움이라면 그동안 경영상 문제가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추가로 해결해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몇 가지의 큰 위기와 사건을 극복한 회사는 점점 힘을 받기 시작했고 부임한 지 채 6개월이 되지 않아 매월 적자를 면치 못하던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는 그 시점에 나에게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진화식이었다. 나는 문득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반복하여 느끼고 경험한 일이지만 우리가 속고 마는 그것, 그것은 바로 좋은 일 속에는 언제나 나쁜 씨앗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나쁜 일 속에도 언제나 좋은 일은 싹을 내린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전화위복이 되고 새옹지마가 되어 돌고 돌아가는 것이다.     


앤써니 박 회장과 기운찬 부장이 그렇게 힘주어 말했던 3개월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진화식의 인사 문제를 거론해 볼 짬도 내어 보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회사가 정상화되어 가면서 나의 스타일로 회사를 움직이기 위해 진화식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했고 지시하는 일 처리에 신속하게 대응했다. 상사를 모시는 태도에도 흠잡을 데가 없었고 한국이나 미국의 거래처와의 소통에도 능수능란했다. 뿐만 아니라 운전이나 회사 내 자질구레한 일 처리에도 밝았으며 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통해 직원들을 통솔하는 능력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모든 행동 이면에 어떤 찜찜함이 숨어 있었다. 모든 행동이 철저히 계산된 듯한 느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전 법인장, 전전 법인장, 초대 법인장 그리고 같이 근무한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 한시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말은 바로 “웃으면서 등에다 칼 꽂을 놈이다.”라는 말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언제나 한 가지씩 어떤 나쁜 흔적을 남겼다. 때로는 그게 거짓말이었고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냉정함이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나는 그에게 솔직한 얘기를 들어보고자 조용히 그를 술집으로 불렀다.     


“내가 미국 들어오기 전에 신기원 전무를 만나고 왔거든. 근데 진차장에 대해 엄청 나쁘게 말하더라. 연락도 다 차단해 버리고 진차장 필요할 때만 전화해서 도움 청한다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큰일이 있었어?”     


나는 사실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넌지시 그들 사이에 오갔다는 법인장 자리를 둘러싼 이야기의 진실을 물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듯 건네오는 그의 대답은 나를 더 깊은 혼란에 빠트렸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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