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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pr 29. 2024

직장과 영혼의 교차로: MZ세대의 소명과 몰입의 고민

(부록 2) 고래 사무관이 되었다를 마치며


부제 : 일에 너무 몰입하고 싶지 않은 MZ세대의 고민


아래의 글은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조각조각 갈무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일과 소명과 영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중 한 가지 의견으로 생각하고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십 년 뒤의 제가 '요즘애들은 영혼이 없어 또는 청춘은 아파야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면 꾸짖어주시기 바랍니다.






1. 영혼에 대해서



  영혼 있는 직장인이 좋은지 영혼이 없는 직장인이 좋은지 사람들은 고민한다. 문제는 '영혼'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서 말하는 쪽도 듣는 쪽도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듣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사회에서 우리는 왕왕 영혼의 유무를 따진다. 아무리 스스로 만족하는 직장이지만 일개 피고용인인 나의 몸과 시간을 옭아 맨 것도 모자라 영혼까지..  




 영혼 논쟁에 관한 내 개인적인 의견을 공유하고 싶다. 영혼의 개념이 어떤 강력한 사명감이라면 영혼이 없는 게 낫고, 영혼의 개념이 Proactive 한 자세라면 있는 게 좋다. 영혼의 개념이 열정인가? 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사명감을 예로 들자면 어떤 지자체에서 직급이 높은 공무원 A가 있다고 치지. 그는 이 지역에 있는 모든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케어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의 강력한 사명감을 아름답고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정확한 규정을 만들어서 시행해 나가면 좋겠지만, 대부분 너무 강력한 사명은 때로 급해서 준비기간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A는 아래의 직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그의 사명을 이루어 주도록 노력하기를 주문한다. 노인들이 잘 있는지 매일 전화해서 체크하고, 요양을 도와주는 분들도 적극적으로 보낸다. 법적으로 정하고 있는 케어의 수준 이상을 할 수 없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노인들은 처음에는 좋아했지만 자꾸 전화 오니까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가, 또 전화를 걸어주는 젊은이를 말동무로 삼았다가 한다. 직원들은 이 일을 왜 하는지 모른 채 계속하고 일만 바빠진다. 원래 해야 하는 다른 업무들을 할 시간도 없이 그놈의 전화에 목을 맨다. A는 그 전화 매일 돌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서 그 실적을 매일 체크하니까. 그리고 그걸 달성하게끔 도와주는 직원들을 예뻐라 하니까. 좀 과한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직원들은 그의 적극적인 행정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사실 강력한 사명을 무기로 한 잔인한 역사적인 예를 들고 싶기도 있지만, 제법 있을 법한 예를 들어보았다. 규칙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A의 사명 아래 진행되었던 일들은 A의 퇴직 후에도 지속될까? 행정력을 사용한 만큼의 혜택을 노인들이 보았을까? 여기저기 전화 돌리고 전화 안 받으면 찾아갈 시간에 그들을 위한 다른 기획을 하고 일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반면에, Proactive 한 자세는 한글로 뭘 쓰면 좋을 지모르겠다. 적극적, 선제적 대응? 미리미리 준비하고 사전에 대응하는 자세라고 생각해 보자. 영혼 있는 직장인이 Proactive 한 직장인이라면. 나쁠 것 없다. 어느 노인이 시청을 찾았다. 마을 회관의 다른 어르신이 시청에 가면 지원금을 준다고 해서 왔단다. 하지만 정확히 그게 뭔지 노인은 모른다. B 공무원은 최근에 어른들에게 지급되었던 보조사업을 떠올린다. 30만 원 주는 거 맞으시죠 물으니 노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원서를 쓰도록 알려준다. 노인이 지원받을 수 있는 다른 혜택들도 같이 알려주어서 한 번의 방문에 많은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다 지원 대상에 비해서 지원자가 적은 것을 발견하고 상사에게 이를 보고한다. 예산 시간 맞춰 털어야 하는데 노인들 사이에 이런 지원사업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으니 노인회관 등 통해서 추가로 전달하겠다고. 




  B의 일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특별하다. 법의 테두리에서 정하고 있는 혜택과 권리를 노인이 누릴 수 있도록 인간성을 발휘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힘이 든다. B가 노인을 돕는 동안 주변 동료들이 더 많은 민원 사무를 봐야 하는 경우도 생길 테고. 하지만 그는 기한에 맞춰서 정해진 예산을 지원대상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이후에 예산 이월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을 고려해서 상사에게 미리 대응방법을 공유했다. 나중에 터지고 나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미리미리 대응한 탓에 일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을 되게 잘한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만, 나는 이런 사람이고 싶고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다.






2. 소명에 대해서




  살아감에 있어서 소명을 갖는다는 건 왠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삶의 방향성과 이루어나가야 할 일들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대신에 가능한 논리적으로 어떻게 일이 잘 돌아가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필요한 경우 인간성을 발휘하고 싶다. 소명을 생각하기에 인생이 너무 짧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자잘한 일들을 처리해나가야 한다. 때로는 사회가, 때로는 부모님이, 때로는 지인들이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강요하는 수많은 그것들을 우리는 매일 마주한다. 눈 뜨자마자 출근해야 할 준비를 하고 일어나서 씻는다. 최소한 깔끔한 차림으로 다른 이들을 만나고 싶으니 조금은 단장한다. 부랴부랴 지하주차장에 내려가면 하얀색의 잘빠진 쉐보레 차량이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우와 좋은 차 모네요'라며 칭찬할 만한 차는 아니다. 게다가 중고차. 하지만 나는 이 차를 위해 처음으로 천만 원대의 소비를 했다. 바쁜 와중에도 자동차를 한 번 보면 이런 거 사려고 돈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통근 시간의 엄청난 정체를 뚫고 정부청사에 도착한다. 으리으리하다.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애를 먹는다. 조금 늦게 출근했다 싶으면 청사 가까이에는 차 댈 자리도 없다. 이중주차도 각오해야 한다. 이때는 저곳에 차를 요런 식으로 대면 한대 더 댈 수 있겠다는 창의성과 그런 자리를 봤을 때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대담함이 필요하다. 게다가 어떤 날엔 아 아까 지나친 그곳에 차를 대면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 창의적인 주차자리는 이미 지나쳤고, 백미러를 보면 다른 차가 거기에 주차를 하고 있다. 주차 결정력 부족이다. 우다다 직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많은 회사 사람들의 뒤통수를 마주친다. 근무시간 전부터 불러 세우면 귀찮을까? 그래도 봤는데 인사해야 하나? 그러다 '아놔 공무원증 안 가져왔네' 하면 쪽문으로 못 들어가고 대문까지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10분이 더 걸린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 발걸음은 빨라진다.




  하지만 출근해서 나 출근했소하고 공무원증을 찍고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는 그냥 자잘한 루틴일 뿐. 자리에 가자마자 과장님이 말한다. '왔냐 와서 앉아봐 봐' 자리로 가지 말고 바로 회의테이블에 바로 앉으라는 부름.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다. 과장님 미간 주름의 깊이를 보면 문제의 해결에 며칠이 걸릴지 대략 가늠이 된다. 문제를 마주했을 때 보통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만든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문제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해결방안은 무엇인지,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페이퍼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 페이퍼에서는 현재 상태와 개선된 미래를 위한 우리의 비전과 그를 이루기 위한 미션, 세부 이행계획을 짜낸다. 이런 일들이 몇 가지 동시에 휘몰아치면 퇴근 시간이 금방이다. 잊었던 일이 생각난다. 오늘 중간에 잠깐 외출 쓰고 동사무소 가서 인감 떼와야 하는데. 같은 것. 행정부에서 일을 하는데 개인적인 행정처리가 가장 어렵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내 인생의 미션과 비전을 찾을 시간은 없다. 인생의 비전과 미션은 너무 과하고 세부 이행계획 끝따리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퇴근 무렵에 같은 회사 지인의 카톡이 온다 저녁 약속 있는지 오늘 누구누구랑 소소한 회식이 있는데 한 명이 펑크 나서 머릿수를 채워 줄 수 있는지 하는 라스트 콜. 아 미안하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집 가서 쉬겠다고 말한 순간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다른 쪽에서 저녁 어떠냐고 물어온다. 아쉽다. 아쉬워도 일단 퇴근을 하면 홀가분하다. 저녁 약속이 없으면 서브웨이나 반미샌드위치를 먹는다. 아니면 햇반 돌려서 계란이랑 해서 먹는다. 집에 와서도 책상 앞에 일단 앉아있는다. 내가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머릿속에서 피어오른다. 씻다 보면 업무생각도 난다. 그건 이런 방향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할 일이 왜 이렇게 많나. 유독 바쁜 과나 바쁜 때에는 일과 내가 분리가 안 되는 때가 있다. 일이 잘 돼 가면 나란 인간도 잘 되어가는 느낌. 기분이 좋다. 반면 일이 잘 안 돼 가면 인간으로서도 잘 안되어가는 느낌. 머리로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안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문서들은 내게 주어진 일을 한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주문한다. 어느 순간 그래 나도 이 바람에 일조하는 거야! 하는 일중독자가 탄생해 버린다. 




  어느 날 국장님과 서울에 출장 갔다가 오송역에서 내 차를 타고 돌아왔다. 국장님이 뒷자리에서 말했다. "아. 서사무관. 인생에는 일 말고도 중요한 게 많아요." 당시에 일중독이 되면 안 된다 뭐 그런 말씀도 하셨는데 내가 봤을 땐 국장님께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이라는 것을 하는데 일이 년에 한 번 하는 일이 바뀐다. 그러니 수산자원정책과에서 일하던 나는 수산자원을 지켜야겠다는 몰입을 잔뜩 하다가 원양산업과로 옮기면 또 어떻게 우리 원양어선들이 참치를 잘 많이 잡아 올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를 고민한다. 상반된 미션이다. 일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부적인 과제를 들여다보면, 공적 분야의 일손이 필요한 중요한 일들이다.   




  일을 하다보면 나도 잘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이루고 싶은 하나의 일이나 목적이 있는건 아님이 아쉽다. 그런 것들이 있다면 성취를 위해서 달려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성취욕이 없으면 차선인 인정욕구를 추구하고 이게 오래 진행되다 보면 내가 희미해진다. 




  어떻게 이런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주어진 일은 성실히 하되 누군가 주는 인정에 목마르지는 않은 어떤 상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시점의 나는 일에 너무 몰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신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리라. 몰입이 주는 이점보다 몰입이 주는 스트레스가 더 커지는 그 임계점에서 조용히 손을 놓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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