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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pr 24. 2024

나는 공무원이지만 현장을 모른다, 알아가려고 노력할 뿐

(부록1) 고래 사무관이 되었다를 마치며.




  고래 사무관이 되었다의 초안은 2024년 3월 즈음에 쓰였다.

시카고의 인텔리겐차라는 카페에서 녹차라테를 마시면서 구석에서 지구 반대편의 직장으로부터 멀어져서 자아의 일부를 어디에 떨어트리고 온 사람처럼 이방인이나 아웃사이더 인 채로 앉아있는 내가 떠오른다.  




"남들은 내 이야기가 그렇게 궁금하지 않을 텐데 써도 되나?"



"약간 라떼는 말이야 같은 느낌인가?"



"스스로를 너무 미화하는 거 아니야?"




  자기 검열이 계속되었다. 한국에서 일을 할 때는 일과 관련한 에세이가 잘 안 써졌다. 공무인데 너무 자세히 쓰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쓰는 것도 이상해 보였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좀 어려웠달까. 그래서 퇴근하고 나서 취미로 쓰는 글은 단편소설이 좋았다. 브런치에 올릴 글을 고르면서 오랜만에 다시 읽어본 단편소설은 오 제법 괜찮은데 싶다가도 어딘가에 내놓자니 좀 못나 보인다. 




  고래사무관이 되었다의 초안은 업무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은 그냥 고래 보고 슬펐던 사람의 이야기였고 나는 또는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브런치 북에서는 영어 초안이 포함된 부분들이 초안이다. 그러다가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는 업세이라고 해놓고 업에 대해서는 말 안 하는 게 맞는가? 고민이 되어서 목차를 재구성했었다. 우리나라에서 고래를 사냥하면 어떤 벌을 받나요?/ 충청도의 지역 축제에서 고래고기를 팔았다./ 국제회의 갔다가 야구배트를 든 환경단체를 만날까 봐 쫀 썰/ 후원하는 환경단체에서 욕먹은 썰/ 기타 오피스 이야기를 더 써볼까 하다가.. 결이 좀 다른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쓰기로 했다. 




  요 며칠간 브런치에 올린 글들의 조회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게 나와서 기쁘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이 기뻤고, 그래도 내가 나의 녹을 먹는데 이렇게 나대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고민과 부담은 약간 직장 내 문화나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일을 하면서 훌륭한 직장동료들을 많이 만났다. 훌륭한 것에 비해서 공무원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데 적극적이지 않다. 우리 일은 공공의 일이고 업무 담당자의 개인적인 사견을 드러내는 것은 업무를 방해하기도 하니까 오히려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부담이 있다. 




  예를 들자면 나의 글에서는 공무원이 되기 전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는 동물에 대해서 슬픔을 느꼈던 경험을 다룬다. 하지만 반대로 배 한 척에서 나 홀로 조업을 하는 어부가 그물을 쳐놓고 나중에 걷으러 갔는데 고래가 지나가다가 걸렸고 탈출하면서 그물을 다 찢어놓았다면, 우리는 그 어부에게 '고래가 살아서 다행이네요.'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 어부는 또 나름대로 하루 조업을 망치는 일이니까. 또, 오징어는 사시사철 잡을 수 있는 어종이 아니라 날씨가 쌀쌀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만선을 바라며 나간 오징어 조업에서 돌고래 떼를 만나서 돌고래가 오징어를 잔뜩 먹고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도 어부에게는 좀 아쉬운 일일 것이다. 돌고래가 자유롭게 바다에서 수영했으면 좋겠지만, 오랜 시간 사람 손에 큰 애들을 놓아주자면 그것도 나름대로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관점을 듣다 보면 일이 참 어렵다. 모든 것이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어서 밥그릇 싸움은 치열하다. 



 

  치열한 필드에서 나는 아무리 배를 타보고, 통계를 들여다보고, 연구자들과 이야기해도 나는 내 민원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책상머리에 앉아있다 가끔 가 보는 바다에서 나는 손님이다. 20여 년 먼저 해양수산분야에서 일을 시작하신 분이 어느 날 이야기했다. 지역으로 출장을 갔다가 어업인들과 하는 회의에서 시원하게 한 소리 듣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서삼아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현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 물고기를 전공하고 이 분야에만 일하신 분도 그렇다는데 5년 일한 내가 다 안다고 까불수는 없다. 다만, 과장님이 말씀한 취지도 그랬듯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찾아보고 물어보고 공부하고 분석하고 듣는 것이 아닐까.

 

  


  몇 년을 물고기 관련된 것만 들여다보고 있지만 제대로 아는게 없다. 몇 년을 가족들과 같이 살지만 서로 제대로 이해하는게 있는지 잘 모르겠고, 평생을 나로 살아가지만 나에 대해서 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것에 대해서 내가 다 안다, 해봐서안다, 전문가라서 안다고 할 때 오히려 병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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