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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저렴 버전 예술 감성 에세이 #03

by 서안

고된 하루가 끝났다.

내일도 오늘과 다름없을 거란 서글픔과

오늘을 버텨냈다는 안도감으로 밤을 맞이한다.


버려지지 않으려 애쓴 하루를 무심히 걸어왔다.

불을 끈다.

눈을 감는다.

평온하다.


The Sheepfold, Moonlight | Jean-François Millet | 1856-1860


사냥을 노래하는 음악 이건만 뿔피리 소리도, 생존에 쫓기는 짐승도, 생명을 탐하는 자도 느껴지지 않는다.

평화로운 달밤의 양들의 음악이다.

아름다운 부니아티쉬빌리가 연주하건만 그녀의 관능도 수려함도 선율에 묻힌다.

고요한 달밤의 바흐의 선율일 뿐이다.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도 노동자였다.

끝없이 작곡해야 해야 하는 노동자였다.

한평생 의무로 점철된 노동으로 만들어진 음악이지만,

그의 음악은 나의 노동과 달리 고귀할 뿐이다.

그는 노동으로 바로크 시대를 완성시켰고, 고전의 시대를 열었다.

노동의 성실함과 끝없이 걸작을 만들어 낸 천재성으로 음악의 두 사조를 아우른다.


그녀는 인생을 계획하지 않는다고 했다.

피아니스트로서 특별한 목표도 없다고 했다.

계획과 목표가 있든 없는 음악이 그녀의 삶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그녀의 음악이 아름답다.

음악이 곧 그녀의 삶이기 때문에 그녀의 음악은 그녀만큼이나 아름답다.


https://youtu.be/PV2p-TbFzcE


눈을 감아야 한다.

포근하고 익숙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에 묻은 나의 체취를 느끼며,

달밤을 맞이하는 양들과 같이

고요하되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녀가 다독여 주는 양들처럼,

오늘은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01 달빛 교교한 밤을 보내는 방법

#02 분노에 삼켜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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