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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an 10. 2018

목에 걸어야할 것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인생의 금메달이다

런던 에세이- 올림픽 금메달과 에릭 리덜

올림픽은 또다시 찾아오고 시간은 그렇게 훌쩍훌쩍 간다. 이젠 옛 얘기가 되버린 런던 올림픽에서는 개막식이 장관이었다. 베이징 올림픽같은 규격에 딱딱 맞춘 한치 오차도 허용않은 개막식과는 또달랐다. 영화 감독인 ‘대니 보일’이 총감독으로 연출한 개막식은 영국 역사와 민족 사이키(psyche)를 상징적으로 또 은유적으로 보여주며 개막식을 하나의 예술로 이루어냈다.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었던 명장면은 영국 코메디언 ‘미스터 빈’과 배우들이, 지금은 클래식이 된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의 명장면을 재현한 것이었다. 올림픽 영화의 대명사처럼 된 이 영국영화는 유명한 배경음악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중세도시 세인트 앤드류스 해변을 따라 1920년대의 흰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육상선수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전세계에  보여주었다(이 영화가 촬영되었다는 표지도 거기 있다). 이 장면은 제임스 본드와 함께 연기(?)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낙하산을 타고 헬리콥터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코믹한 장면(물론 연출이지만)만큼이나 유명한 씬이었다. 대니 보일이 이 영화의 명장면을 재현했던 이유는 ‘올림픽 정신’을 이 영화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불의 전차' 영화에 나오는 두명의 주인공 중 한명인 ‘에릭 리덜(Eric Henry Liddell. 1902–1945)’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육상선수이자 개신교 선교사였다. 그의 별명이 ‘나르는 스코틀랜드인(Flying Scot)’이라고 불렸을 만큼 육상에 천부적 재질이 있었다. 1902년 당시 선교단체인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에 속했던 부모가 선교활동을 하던 중국의 텐진에서 그는 태어났다. 영국인이지만 중국과의 인연은 그의 출생지 만큼 중요하고 운명적이었다. 성년이 되자 영국으로 건너와 런던에서 기숙학교를 다녔고 나중에 스코틀랜드 수도의 에딘버러 대학에서 수학했다. 그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주종목인 100미터 경기가 일요일에 배정되자 그는 단연히 일요일, 즉 주님의 날에 경기장에서 뛰는 것이 자기 신앙에 위반된다며 기꺼이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금메달이 훤히 보임에도 안중에도 없었다. 대신에 그는 자신의 주종목 대신 400미터에 출전했고 금매달을 당당히 목에 걸었다.


그뒤 그는 올림픽의 명예와 영광을 뒤로하고 선교활동을 위해 자신의 탄생지 중국의 어느 오지로 미련없이 떠났다. 일확천금의 꿈을 쫒아 중국으로 향하는 지금의 중국이 아닌 1920년대의 가난하고 뒤떨어진 중국이었다. 막막한 시골이었던 허베이 성 샤오쟝(肖张镇)에서 그는 대부분 활동했는데 이곳은  중국내에서도 아주 가난한 지역이었다(펄벅 여사의 ‘대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두 번정도 고향 스코틀랜드에 방문한 것 외에는 중국에 계속 머물며 선교에 전념했다. 한번은 누가 그에게 물었다. 올림픽의 영광과 명성을 뒤로하고 중국의 시골 오지에서 일하는게 후회되고 아쉽지 않으냐고? 그러나 그는 진솔한 인간의 삶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담담히 말했고 자신의 선교일이 어떤 세속의 명예보다 더 가치있고 영광스런 일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2차대전이 터졌다. 중국대륙을 침략하고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내륙의 선교사들을 1943년  ‘웨이셴 수용소(Weihsien Internment Camp)’로 몰아다 넣었다. 이곳에서도 에릭 리덜은 희망을 잃지 않고 수용소안 사람들을 다독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성서공부반을 만들어 성서나눔도 수용소 안에서 했다. 그런 그를 수용소 사람들은 ‘에릭 아저씨(Uncle Eric)’로 친근하게 불렀다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전한다.


그러던 그는 수용소에서 수술해도 필요없는 뇌종양에다 영양부족까지 겹쳐 1945년 2월 21일, 일본이 항복하기 4개월전, 생을 마감했다. 중국에서 나서 중국에서 삶을 접은 것이었다. 수용소를 떠날 기회도 그에게 주어졌지만 나가지 않았다는 말도 전해온다(아우슈비츠에서 순교한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이 떠오른다). 육상 트랙을 달릴때도 그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달린다고 말했던 그였다. 전생애를 사랑하는 그의 하느님께 바친 그의 삶은 한치의 미련없고 후회없는 온전하고 거룩한 금메달의 삶이었다. 그런 삶을 살았던 그는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했다(It's complete surrender)."라고 마지막 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고 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결승전 테이프를 터치하는 순간이었다. 인생도 금메달리스트였다.


그와 그의 올림픽 동료였던 유대계 영국인 육상선수였던 ‘해롤드 에이브람스(Harold Abrahams)’의 올림픽 출전 에피소드를 영화화한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는 1981년 상영되었다. ‘불의 전차’란 성서의 열왕기 하(2 Kings 2:11 and 6:17)에 나오는 말로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그해 ‘칸 영화제’에도 출품돼 2개부문을 수상했고 제 5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당당히 7개부문 후보에 오르며 그중 4개부분을 수상할 만큼 잘 만든 영화였다. 이 시상식에서 미국 영화계의 영국침공으로 이해되는 “영국인이 온다(The British are coming)"란 유명한 말이 비틀즈 이후로 나왔고 요즘도 영국인의 미국내 활약이 클때면 자주 쓰는 용어이다.


돈도, 명예도, 지위도, 영광도 홀연히 버릴 수 있었고 더 높은 가치에 중점을 두며 치열하게 살았던 에릭 리덜의 삶은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들 뿐 아니라 모든 이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고 생각한다. 올림픽은 상업주의와 국제정치에 물들지 않게 처음부터 아마츄어 선수들로 구성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테니스와 골프까지 가세했다. 돈많이 버는 상위 프로 골프 선수들이 브라질의 지카 바이러스를 핑계로 쉽게(?) 리오 올림픽을 포기하는 것만 봐도 고귀한 올림픽 정신이 얼마나 쉽게 퇴색될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가슴 울렁이는 올림픽이 다시 온다. 또다시 많은 올림픽 스타들이 탄생할 것이다. 에릭 리덜이 전생애를 통해 직접 실천하고 보여준 올림픽 정신을 다시 되새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인생도 이 겸손한 선교사처럼 ‘금메달’이었으면 좋겠다.


***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열왕기 하 2:11)


:예언자 엘리야가 불의 전차(불 병거)로 들어 올려짐. 누가 이 불의 전차를 내보내고 몰았을까?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저 아이의 눈을 여시어 보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종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가 보니 군마와 불 병거가 엘리사를 둘러싸고 온 산에 가득하였다.” (열왕기 하 6:17)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 예언자가 막강한 아람 군대에 포위 되었을 때 겁에 질려 덜덜 떠는 아이에게 ‘영적인 눈(spiritual eye)’을 뜨게 기도하며 이 영성의 눈이 뜨이자 하느님의 군마와 불의 전차가 가득함을 보았다. 즉 일상의 눈으로 볼수없는 것을 영성의 눈을 뜨면 볼수 있다는 구절이다.

살리 맥너선의 에릭 리덜 전기
퍼트남 감독의 영화, '불의 전차' 포스터. 해변가를 달리는 육상선수들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코믹하게 재현했다.
런던 선교회 북중국 지부. 런던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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