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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고래 Jun 28. 2015

늦가을, 마추픽추에 오르다!

2013. 페루 ::: 쿠스코


#1. 적응이라는 녀석이 필요해 - 미니양


 시카고에서의 일주일을 보내고, 본격적인 남미 여행이 시작되었다.

남미에서의 첫날 밤은 리마 공항에서의 노숙. 그리고 쿠스코행.

쿠스코에 발을 디딘 순간, 시카고에 있었던 시간은 거의 잊혀버렸다.

쿠스코에서의 첫 날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으므로.

 

 그 이유인즉, 고산병이란 놈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멀미를 하는 것 같은 울렁거림과 두통, 이따금 오는 호흡의 어려움.

고산병이 심하진 않았지만 처음 느껴보는 답답함이라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낯선 증상도 적응이라는 녀석과 함께 서서히 사라져갔다.

처음엔 너무도 맛없게 느껴졌던 코카잎도 자연스레 씹으며 쿠스코 라이프를 즐기게 되었다.

 

 현실에선 늘 바쁘지만, 길 위에서는 느긋하게 뒷짐 지며 다니고 싶었다.

쿠스코의 익숙해진 길을 다니며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맥주 한 모금.

여행은 이렇게 이어지는 거겠지.

 

 

 




#2. 이래서 오르는구나! - 미니양

 

 마추픽추에 가기 위한 다소 복잡한(?) 준비를 하는 동안, 마추픽추에 꼭 가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사전예약 없이 현지 여행사도 통하지 않고, 그냥 물어물어 기차표과 입장권을 구했다.)

그저 쿠스코에서만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기왕 준비한 거 끝까지 해봐야지 하는 오기도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마추픽추는 생각보다 멋졌다.

풍경 자체는 TV에서 본 모습이랑 다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망지기의 집 쪽에서 본 마추픽추가 참 좋았더랬다. 그저 멍하게 한참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다 둘러보지 않아도, 조용한 적막 속이지만 음악이 없어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대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 페루의 아쉬운 마지막 얼굴 - 미니양

 

 쿠스코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 라파스로 넘어가는 길.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을 넘으려는 찰나, 페루 경찰이 우리 일행을 불러 세워 짐 검사를 한다고 했다.

외국인들만 하는 짐 검사.

뭔가 찜찜한 촉이 왔지만, 국경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짐 검사를 받으러 들어갔다.

 

 짐 검사는 여행자 1명씩 방 안에 들어가서 받았는데, 방 안에는 경찰이 2명이 있었다.

큰 가방은 안중에도 없고, 작은 소지품 가방만 뒤지며 이것 저것 물었다.

그러다 돈을 보여달라기에 가지고 있던 50달러 4장을 보여줬다.

그 순간, 다른 경찰이 질문으로 내 주위 끌고 대답을 하고 보니, 달러 1장이 없어졌다.

 

 난 당황하지 않고 경찰을 향해 달러를 보여주며, 1장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선 손을 내밀어 내놓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랬더니 경찰 1명이 주머니에서 접은 50달러짜리 1장을 슬그머니 꺼내서,

본인이 가져가지 않은 척 하며 원래 있던 자리에 달러를 내려놓았다.

순간 울컥했지만 괜히 남의 나라에서 경찰한테 뭐라고 해봤자 불리할 것 같아 가방을 가지고 나와버렸다.

나오면서 경찰들을 한 번 째려봐주고...

 

 페루에서의 좋은 기억을 경찰들이라는 사람들이 망쳐버렸다는 사실이 씁쓸해졌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다시 한 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페루에서의 마지막 얼굴은 좋진 않았지만, 남은 페루 돈으로 산 엠빠나다는 맛있기만 했다.

 

 

::: 국경에서 페루돈을 볼리비아 돈으로 환전해주던 부부. 꼭 남미 인형같았던 아주머니 :::
::: 이제 볼리비아를 향해 간다. 그나저나 풍경 참 좋네 :::

 



#4. 남의 생일날 부산 떠는 거 아니야 - 고래군

 

 슬슬 연말이 다가온다.

거리에는 울긋불긋 작은 전구들을 늘어트린 채로 어릴 때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캐럴송 소리로 점점 채워져 나가기 시작한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거고,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의 생일까지 축하할 생각은 없다.

 

 문득 팬덤 문화는 신앙과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는 타인에 대한 다소 무조건적인 애정, 그리고 그 타인의 말과 행동을 우선 옹호하고 보는 점 등은 연예인을 향한 팬심이나 객체화된 신에 대한 믿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예수야말로 최고의 월드스타인 셈이다.

 

 그녀가 여행을 떠난 빈 자리는 외로움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일까? 남미와 한국은 시차가 거의 열두 시간을 전후한 정도이다. 간단하게 낮밤을 바꾼 비슷한 시간대. 덕분에 보이스톡으로 통화하는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지 않아 다행.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녀는 하루의 여행을 마칠 시간이고, 그녀가 햇살과 함께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면 나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밤의 고요함에 파묻히기 시작한다.

 

 그녀가 고산병 증세 때문에 피곤하다고 한다.

백두산이나 한라산도 못 올라본 내게 고산병이란 그저 읽고 들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이다.

정말 심한 사람은 생명활동에도 위협이 된다고 하지만, 다행히 그녀는 비교적 가벼운 증상에 머물고 있다 한다.

문득 저 높고 높은 곳에서 숨 쉬는 그녀와 낮고 탁한 서울을 숨 쉬는 내가 멀게 느껴진다.

비라도 좀 내려주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편하게 숨을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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