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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타란티노 형님의 세계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도시남자 수식씨

* 스포일러 주의! 아직 안 보셨으면 뒤로 가기 버튼 추천합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타란티노 형님의 찐팬으로서 무조건 봐야할 영화였다. 그런데 이게 샤론 테이트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고? 아름다운 여자 배우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이야기라니. 상상만 해도 마음이 심란하다. 나는 원래 슬픈 영화를 못 본다. 괜히 보다 울컥할까 봐, 심란한 기분이 며칠을 삼켜버리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오랫동안 넷플릭스 ‘내가 찜한 리스트‘ 에만 넣어두고 있었다. 너무 끔찍한 건 안 보고 싶지 않나. 예쁜 사람은 그냥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는 게 내 평소 철학이랄까. 아니다. 세상 모든 여자는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아니다. 인간 모두가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아니다. 생물 전체가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


여튼 그러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심심해서 봤다. 초반 중반 분위기 모두 참 따뜻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매달리는 모습이 좋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직업이 뭐든 간에, 그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 이 영화는 그런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카메라 뒤와 앞에서 펼쳐지는 영화인들의 고군분투가 묘하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낡은 거리, 올드카, 사운드트랙까지. 영화 전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오마주처럼 느껴졌다. 보다 보니 나도 내 일에 애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매달려야겠다는, 아주 가식적인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영화 끝나고 30분쯤 지나면 사라진다. 그래도 뭐, 마음 한구석이 살짝 뜨거워졌으면 된 거 아닐까. 늘 다짐을 하게 되는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참 좋다.


후반부에 이르러,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든다. 타란티노 특유의 과감한 상상력이 여기서 폭발한다. 히틀러를 날려버렸던 ‘바스터즈’처럼, 이번엔 맨슨 패밀리를 말 그대로 참교육한다. 현실이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도, 그 상상이 너무나 통쾌하고 시원하다. 고통스러운 실화를 이렇게 통쾌하게 뒤엎을 수 있다는 건 오직 영화의 힘이 아닐까. 특히 그 미친 불쇼와 개싸움은… 솔직히 히어로 영화 몇 편 합쳐놓은 것보다 쾌감이 크다.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된다. 왜냐하면, 이건 타란티노 영화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쯤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타란티노는 ‘감독님’이 아니다. 타란티노는 ‘형님’이다. 누가 ‘타란티노’라고만 부르면 살짝 실례처럼 느껴진다. 이 형님은 평행우주를 만들어서라도 우릴 통퇘하게 해주시는 분이다. 실화에 아파하던 우리에게, “만약에 말이지…” 하며 상상 속 복수를 그려주신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게 된다. “형님, 또 한 건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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