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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클라베

다양한 접근과 생각을 일으키는 영화

by 김유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제저녁 잠들기 전 디즈니 플러스에 업로드된 영화 <콘클라베>를 드디어 봤다. 내가 사는 곳은 군 단위의 작은 시골이라서 보고 싶은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콘클라베>도 보고 싶은 영화 중에 하나였지만 상영되지 않았고 상영되는 곳까지 찾아가 보기엔 장거리 운전을 해야만 볼 수 있었기에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디즈니 플러스에 떡! 하니 콘클라베가 업로드된 것을 보고 바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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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각 종교의 특징과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편이고,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새로운 교황 선출과 교황의 행보, 지향점에 대해 조금씩 살펴보곤 한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콘클라베>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고 더구나 랄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와 같은 엄청난 배우들이 출연하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제작사에서 만든 새로운 작품에다가 평이 좋았기에 더욱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봤을 때 완벽한 스릴러 영화는 아니지만 유유히 흐르는 영화 흐름을 가지면서도 밀실과 외부와의 단절된 환경을 적절히 잘 사용하여 긴장감을 충분히 유발한다.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흐름을 가지면서 그 안에 날카로운 요소들을 배치한 느낌이다. 왜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생각했는데, 아마도 보편적으로 가톨릭 하면 느끼는 평화로움, 안정감, 너그러움의 이미지를 받으면서도 유력한 교황 후보자들의 욕망과 과거를 쫓아가는 로렌스의 모습을 훌륭한 랄프 파인즈의 연기와 영화 속 미장센을 통해 날 선 시선을 느낄 수 있게 연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벨리니 추기경의 물음에 존으로 불리고 싶다는 로렌스의 대답은 영화의 결말과 이어진다. 성서를 아는 이들이라면 오실 이를 예비하는 자로 자처한 요한(존)을 쉽게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눈치 빠른 관객 중에서 로렌스가 아닌 베니테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될 것을 예상했을 테지만 영화는 결말에서 충격과 함께 또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관객을 이끌며 반전과 함께 화두를 던진다. 영화의 끝에서 완전무결한 결말을 만들기보다 관객, 어쩌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신앙이라는 이름 안에 전통을 이어야 하는가, 진보해야 하는가 혹은 신(하나님)의 의도를 인간이 완벽하게 알 수 있는가, 종교적 직분을 맡은 성직자로서 신을 어떻게 대변해야 맞는가에 대한 무결한 답을 확정하는 건 의미가 없다. 주관적이라는 특성을 가진 인간이 성서를 해석하고 전파할 때 완전하고 정확한 해석이란 불가능하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종교적 행위와 성서 해석은 정치적 의도로, 개인적 욕망으로, 거시적 관점으로 세상을 위해서라는 의미로(그 외 무수히 다양한 이유로) 때와 상황에 따른 인간의 주관적 선택으로 결정되고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는 여성, 남성뿐만 아니라 간성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베니테스 추기경은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평생 죄를 지으며 살아온 것 같다는 고백과 함께 완전히 남성의 신체로 살아가기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로 자신은 평생 자신 스스로 존재했음을 깨달았으며 신의 작품에 손을 대는 것이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간성은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세상에선 대부분 간성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세상에서 우리가 성 역할을 어떻게 부여받고 있으며 그것에 일치되게 일평생을 살아가는 인간만이 정상이라는 세뇌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적인 것을 신의 의도와 축복으로 여기지만 간성을 부정하는 세상과 반대로 베니테스 추기경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신의 온전한 의도로 받아들였으며 이는 교황으로서 이노켄티우스(무결하다는 뜻의 이름)로 불리기를 원하는 그의 단단한 신념을 명확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관객에게 화두를 던진다.




콘클라베를 시작하기 전 연설에서 로렌스 추기경은 자신이 무엇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는 확신이라고 말한다. 예수조차 마지막에는 확신하지 못했으며 신앙이 살아 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이라고 연설한다. 영화 초반의 이 연설을 곱씹어 보면 영화 결말의 화두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베니테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영화적 설정이 나는 매우 반갑다. 어떤 것이 가장 신앙적인가, 어떻게 해야 신의 말씀에 부합하며 따르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콘클라베>.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압도적으로 흥미롭고 훌륭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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