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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같은 치밀함_ <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作

by 눈뉴난냐

"작은 균열조차 없던 완벽한 가족이 단번에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야마 세이타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안정적인 직장, 실력파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아내 기키, 음악 유닛의 보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장녀 마후유와 지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살아가는 막내 아야카까지.


그러나 완벽해 보이던 그의 삶은 아주 작은 실수와 우연한 균열로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떻게든 원래의 삶을 되찾고자 기사야마는 평소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무모한 도박에 인생을 걸고야 마는데. 원래의 궤도로 돌아올 것인가, 벌어진 균열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인생을 송두리째 건 확률 게임이 시작된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을 단 한 권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알 수 있겠지만 그의 글은 '예측불허'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절대 죽지 않을 것 같은 인물도, 그럴듯해 보이는 추리도 작가의 촘촘한 그물망 안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다. 시라이 도모유키가 제시하는 놀라운 세계는 마치 마트료시카와 같아서, 이쯤이면 다 왔겠지 싶다가도 독자가 깨닫지 못하게 슬며시 숨겨놓은 복선이 나타나 새로운 국면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특히 이 작가의 소설은 마치 '환상' 속에서 진행되는 것 같은 장치가 이야기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현실에 살고 있는 독자들의 상식으로 앞으로의 일을 추론하기에는 쉽지 않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반전의 반전'을 가장 충실하게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라 생각한다.


배경이나 인물 심리 묘사는 단정하고 간결하며, 사건 풀이에 중요한 단서는 사물 묘사나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제시된다. 책의 분량은 길지만 복잡하게 꼬여있는 실타래를 차례차례 풀어나가는데 결코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엄청난 몰입도를 자랑한다. 미사여구나 많은 문체가 아닐뿐더러 연속적으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글이 루즈해지지 않는다. 한 번 책을 잡으면 손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다.


<엘리펀트 헤드>는 그런 그의 장점을 극대화한 소설 중 하나이다. 그의 전작인 <명탐정의 제물>이나 <명탐정의 창자>보다 더 촘촘한 구성과 절대 독자의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주인공은 안갯속으로 돌진하는 스포츠카처럼 위험천만하고 그만큼 짜릿하다.


하지만 숨겨진 트릭이 워낙 많다 보니 반전의 반전의 반전과 같이 사건의 전말이 계속해서 새롭게 뒤집힌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다소 복잡해 보이기도 한다. 보통 다른 미스터리 소설의 경우 주인공이 독자와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느낌이 강한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을 사람 하나 없다. 나 같은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는 작가의 그런 단호함에 깊은 매력을 느끼지만, 미스터리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리저리 헤매다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완결로 달려 나간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미스터리 초보자에게는 <엘리펀트 헤드>보다는 그의 전작인 <명탐정> 시리즈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만약 판타지 소설을 정말 조금이라도 좋아하지 않는 등 소설에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이야기가 끼어드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시라이 도모유키 소설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도 곧잘 읽는 나에게 작가가 끼워 넣는 약간의 환상성은 소설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곤 하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을 출간 순서대로 읽은 독자로서, 그의 소설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 새로워질 것이며, 어디까지 치밀해질 것인가를 늘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다. 미스터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인 <엘리펀트 헤드>를 추천하는 이유다.



*해당 작품은 성인 인증을 해야 구매 가능한 작품입니다. 해당 서평은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이니, 참고 바랍니다.


*사진 출처: yes24

https://www.yes24.com/Main/default.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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