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이 주는 트렌디함
작년의 유행 키워드 중 하나였던 ‘텍스트 힙’
최근 sns에는 다양한 책에 대한 콘텐츠와 애정이 담긴 게시물이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이런 글들을 보고 있으면 독서가 유행이자 트렌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책’이라는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드러내고 흘러가는 것 같다. 요즘 독서의 트렌드는 조용히 도서관이나 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것보다도 책을 읽는 나를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면 곧장 노트에 적는 것보다도 먼저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진은 갤러리에 오래 머물게 하지 말고 곧장 sns에 올려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책이 일종의 패션 아이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요즘이다. 이런 흐름으로 유행이 되고 있는 또 하나가 있는데, 바로 ‘러닝’이다. 이 두 가지의 최대 장점은 트렌디하게 나를 노출시킬 수 있으면서 나를 또 빛내준다는 점이다. 독서는 나에게 ‘마음의 양식‘을 쌓아주는 것이고, 러닝은 나의 몸을 더 건강하고 탄력 있게 만들어준다는 막강한 장점과 동시에 ’멋‘을 준다.
사실 이런 흐름이 독서의 질을 저해한다거나, 실질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늘지 않는데 책을 좋아하거나 사는 사람만 많아지는 것 같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나도 한때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저 취향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책과 독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책’에게 나쁠 게 없다는 점이다.
무심코 표지가 이뻐서 산 책을 어느 날 잠이 오지 않아 펼쳐서 읽다 보니 너무 좋아 독서의 맛을 알게 될 수도 있고, 제목이 좋아서 산 시집 속 문장이 불현듯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고 가줄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무관심보다는 관심이 낫고, 보통 책에 대한 이 관심은 긍정의 힘을 갖고 있기에 더 강하다.
학교를 다닐 때 교실에서 혹은 어딘가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어쩐지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것은 편견이 아니라 직접 내가 학창 시절에 느낀 인식이기도 하다. 심지어 도서관에서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틈틈이 책을 읽고 있으면 약간 음지의 아이처럼 여겨지는 묘한 시선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의 이 유행이 무척 반갑다. 이젠 독서가 음지를 벗어나 양지의 시간이 되었으니 당당히 어디서든 책을 읽는 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굴하지 않고 읽곤 했으나 이젠 당당히 즐기는 세상이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한국에서는 지금 때 아닌 독서 열풍이 불고 있는데, 나의 독서시간을 한층 더 빛내줄 독서 아이템도 함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처음엔 귀엽고 트렌디한 책갈피가 유행의 선두로 섰다. 그리고 점차 독서노트, 북파우치, 독서등처럼 아이템에 대한 관심이 다양해졌다. 요즘 가장 핫한 독서 아이템은 아무래도 북파우치인 것 같다. 라떼의 북파우치는 그냥 일반 파우치처럼 책을 담는 미니 주머니 같은 형태였는데, 요즘 유행하는 북파우치는 조금 다르다. 최근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은 옛날에 교과서를 배부받으면 집에서 열심히 끼우곤 하던 커버와 비슷하게 파우치를 책의 겉표지에 끼우는 형태다. 그러니까 정확히 표지를 가려주고, 읽는 동안에도 책의 겉면을 완전히 보호해 주는 일종의 케이스인 것이다.
나는 소형 에코백처럼 책을 그대로 넣었다가 읽을 때 빼는 단순한 형태의 파우치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 내가 북파우치에 관심을 갖은 첫 이유는 이동할 때마다 가방 안에서 상처 입을 책을 보호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언제 어디서나 가방 속에 무방비하게 담긴 책에 온 신경이 쏠리는 것을 조금은 분산시키고 싶었다. 처음에는 서랍 속 손수건으로 책을 두르고 다녔는데, 자꾸만 풀어지고 어느 순간 책과 분리되는 모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마침 집에 굴러다니는 몇 개의 파우치가 완벽히 책의 사이즈와 딱 맞는 것 같아 담아보니 제격이었다. 그렇게 얏호~를 외치며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젠 습관이 되어 책이 가는 곳엔 늘 그 파우치가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재작년쯤이었던가, 이런 케이스 형태의 북커버가 막 눈에 띄었을 땐 의외로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오히려 저 얇은 듯 도톰하게 책을 감싸주는 보호개가 오히려 내 책을 더 손상시킬듯한 적의가 들었달까. 집에서 뒹굴던 파우치는 쉽게도 그 자리를 꿰찼으나, 본래의 용도로 태어난 것은 영 탐탁지 않다니,,, 참 여러모로 쉽지 않은 나란 독서인이다.
요즘에는 내가 무슨 책을 읽는지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북커버를 쓰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 마음까지는 가닿지 못했다. 때론 상대가 읽는 책을 통해 묘한 친밀감을 느끼기도, 또 때론 내가 느낀 감상이 떠올라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나는 그 아날로그 한 동질감이 아직은 좋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남의 감상’을 내 독서생활에 끼우고 싶지 않아 감추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독서의 유행이 일종의 패션처럼 다루어지는 듯한 요즘, 이 흐름이 결코 싫지 않으나 한편으로는 금방 식어버리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뭐든 갑자기 핫해지면 갑자기 사라지기 마련이라 이 시간이 폭풍처럼 지나간 뒤, 시들해진 독서의 세상이 너무 씁쓸하게 남겨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책이 가진 힘은 꽤나 강력해서 갑작스러운 파도가 들이쳤다 사라져도 쉽게 모래섬처럼 사라지진 않을 거란 걸 안다. 그럼에도 자꾸자꾸 파도에 부딪치면 돌도 깎이기 마련이기에, 부디 그 파도가 맑고 푸른 해변이 되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기를. 그런 바람으로 오늘도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