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거리는 소란함이 좋아서
인류의 발전과 기술의 성장과 함께 아날로그 한 많은 것들이 디지털로 대체되고 있다. 그중 하나로 종이책과 이북이 있다. 그러나 결코 대체될 수 없는 종이책만의 매력과 힘이 있다. 오늘은 그 종이책이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자칭 종이책 대항마, 이북의 등장
대략 10년 전부터 이북이 보편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북을 찾기 시작한 것 같다. 그즈음에 나도 종이책이 가진 단점을 보완한 이북을 시도해 볼까 하며 각종 이북 어플을 다운 받고 가입을 시도했다.
이미 가지고 있던 아이패드를 통해 이북을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화면을 통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전자기기라는 이유에서 오는 집중력도 저하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눈 시림이었다. 화면을 통해 빼곡한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것은 종이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눈이 시리고 피로해 채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처음엔 이게 기분 탓인가 하는 생각으로 배경색도 바꿔보고, 글자 크기와 여백도 요리조리 만져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한 권은 다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눈 마사지와 함께 나를 다잡으며 꿋꿋이 읽어 내려갔다.
아무래도 불편하고 어색한 감각을 떨칠 수가 없어 검색창을 마구 두들겨보았다. 그 결과, 이북을 보며 느낀 피로감은 기분 탓이 아닌 물리적으로 솔직한 몸의 소리였으며, 이 피로감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북 리더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다양하게 출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패드를 통해 책 한 권을 다 읽어내고 난 후 난 조용히 이북 어플을 삭제했다. 그리고 곧장 읽을 종이책을 사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집 앞 동네서점으로 향했다.
괜스레 이북을 읽고 있으면 온전히 책을 읽고 있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너무 고리타분하고, 올드한 생각 같기도 하지만 실제 연구결과도 있다. 종이로 글자를 읽을 때와 전자기기 화면을 통해 글자를 읽는 것은 뇌가 받아들일 때 그 수준이 엄연히 다르다고 말이다. 모쪼록 여러모로 나에겐 다행인(?) 소식인지라 그런 정보들로 위안 삼으며, 어쩐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이북을 그저 떠내려가게 두기로 했다.
이북 리더기를 구매할까 말까 고민할 때 가장 큰 장점으로 느껴졌던 건 휴대성과 편리함이었다. 종류별로 크고 두껍고 다양한 부피를 가지고 있는 종이책과 달리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고 가벼운 이북 리더기는 휴대성이 참 좋다고 한다. 그리고 따로 조명이 필요 없이 어느 곳에서든 빛의 구애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말인즉슨 자기 전에 이북 리더기만 있다면 별도의 조명 없이도 팔이 아프지 않게 책을 읽다가 잘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요즘엔 이북 어플에도 정말 다양한 책이 담겨있다. 옛날엔 꼭 읽고 싶은 책은 이북에 업데이트가 안되어있곤 했는데, 그것도 이젠 옛말이 된 것이다.
그렇게 이북은 뒤로하며 종이책을 읽는 와중에도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이북리더기 구매 욕구가 솟아나곤 했는데, 다소 부담되는 가격과 놓지 못하는 종이책의 안정감 때문에 금방 그 마음은 시들해지곤 했다.
이후로도 약 10년에 걸쳐 몇 번은 이북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확실히 깨달았다. 책의 가독성 및 흥미와는 별개로 화면을 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지친다는 사실을. 전에는 책이 흥미롭지 못해서 이북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으나 정말 재밌는 책을 읽게 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 문장을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전자기기의 불빛으로 인해 누적된 몸의 피로감이 그 마음을 억누르곤 했다. 그러니까 난 신체적으로까지 종이책이 끌리고, 맞는 타입이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북으로 읽는데도 엄청난 몰입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훗날 더 심도 있게 책을 감상하고 싶어 종이책으로 다시 읽게 된 유일한 책이다. 당시에도 무척 좋아했으나 여전히 애정하는 소설 중 하나다.
그러나 끝내 이북 리더기를 사지 않은 가장 치명적인 요인은 종이책 특유의 페이지를 넘기는 사각거림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사락사락 넘어가는 종이와 맞닿을 때의 이 손끝 감각은 정말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안겨준다.
거기에 더해 종이책은 3대 감각 중 하나인 후각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책 냄새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책냄새를 표현한 디퓨저나 향수도 있는데, 아직 이걸 실제로 쓰는 사람까진 보지 못했다. 나는 사실 그 정도로 책 냄새를 사랑하진 않는데, 그저 지나가다 문득 맡으면 어쩐지 익숙한 포근함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려고 꺼냈을 때, 잠시 덮어두었을 때, 다 읽고 난 후 책을 덮으며 그 여운을 느낄 때 보는 표지의 이미지. 거기서 오는 종이책만이 주는 일종의 아련함이 있다. 그때 표지를 손바닥으로 슥슥 만져주면 어쩐지 불분명했던 그 감각이 손바닥의 감촉을 통해 마치 보이는 것처럼 선명이 살아나 내게로 온다. 이 배가 되는 감각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이라면 결코 잊지 못하고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종이책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갖가지의 이유로 대체불가하다. 종이책의 멸망 혹은 종말이 한참 화두가 되던 시기도 있었으나 이제 분명한 것은 결코 이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카메라를 휴대폰이 대체할 순 있으나 휴대폰 속의 카메라까지는 없앨 순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이 비유는 잘못됐다. 이 말인즉슨 종이책은 사라져도 이북이 대체하겠다는 말인데.. 그냥 나처럼 눈이 시리고, 종이의 질감이 좋고, 책냄새를 애정하는 사람이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야 할터이다. 그런 존재가 있는 한 종이책은 최소한의 수량으로라도 공생할 수밖에 없을 테니.
뭔가 거창한 이야기인 것처럼 제목을 지었지만, 사실은 그저 책을 종이책으로 읽어야만 진정 읽는 것 같다는 조금은 예스러운 고집을 핑계로 종이책의 불멸을 바라는 한 사람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