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만학일기_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특강
2025년 문화인사이트 시리즈 5강,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교수 특강”이 3일 저녁 온라인 세미나로 진행됐다.
전공 학부, 대학원생, 일반인 종사자, 가수 등 70여명이 참석한 이날 문화인사이트는 KHCU(경희사이버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에서 마련했다. 문화산업과 예술현장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전문가와 함께, 변화의 흐름을 함께 읽어보는 온라인 특강이다.
40여 년간 한국 대중음악을 비평해 온 평론가 교수는 이날 “K-POP 시장의 미래”라는 주제를 통해 음악산업의 흐름, 세대 간 감성의 단절과 예술의 본질을 아우르는 ‘K-POP 현장과 미래, 인사이트’를 제시했다.
교수는 강연의 서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이 서구문화권에 K-POP이라는 단어를 진입시킨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라고 회고했다.
2013년 청춘을 공략해 성공한 조용필의 바운스, 같은 해 데뷔한 방탄소년단(BTS)은 ‘케이팝의 서구 공략기’를 여는 이정표로 언급되었다. “이제 K-POP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라며 그는 “10년이 넘은 문화 흐름이 여전히 지속된다는 것은 유행이 아닌 구조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17년 이후 BTS와 블랙핑크의 완전체 활동 중단을 기점으로 K-POP의 성장세가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분석했다.
“신진 그룹이 등장하더라도, 아직 ‘곡’으로 세계 시장에서 각인된 팀은 드물다. 이는 K-POP의 신진대사가 느려졌음을 의미한다.”
이때 등장한 애니메이션 기반의 가상 아이돌 콘텐츠, 넷플릭스의 “K-POP 데몬 헌터스”(일명 ‘케데헌’) 현상을 예로 들며, “이 프로젝트의 음악이 빌보드 차트 HOT 100위 상위권 안에 8곡이 오른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교수는 필자에게 마이크를 열라며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조연섭 원우님…넷플릭스의 ‘케데헌’이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필자는 한국 뮤지컬의 지칠 줄 모르는 역동성이 좋아 한국 대학원에 진학한 일본인 원우 ‘마에다 타즈코‘와 인터뷰 결과를 예로 들며 해외에서 한국음악이 사랑받는 것은 아마도 “오랜 역사 속 자랑스러운 한국 국민의 역동성(dynamics)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교수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맞습니다. 역동성이야말로 K-POP의 핵심입니다”라며, 강의 후반부에서도 여러 차례 ‘역동성’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교수는 “K-POP은 감상형 음악이 아닌, 움직임과 감각의 총체예술이며, 그 에너지가 곧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라고 부연했다.
“예술성 사라진 산업, K-POP 최대 위기”
그러나 교수 생각은 찬사에 머물지 않았다.
“케이팝은 세계적으로 성공했지만, 예술의 언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는 최근 K-POP 산업이 음악의 깊이보다 자본과 계약 중심의 구조로 급격히 전환된 현실을 지적하며, 뉴진스와 하이브의 분쟁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이제 음악의 언어보다 법과 계약의 언어가 더 많이 등장한다. 예술의 자리에는 비즈니스가 들어왔다.”
교수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K-POP의 미래는 돈이 아니라 ‘좋은 노래’에 달려 있다.”
BTS, 블랙핑크, 에스파, 아이유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그는 “훌륭한 곡 하나가 세대를 초월한다”며, “예술성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케이팝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경고했다.
음악은 세대를 잇는 언어
강의 후반, 그는 음악을 세대 간 소통의 매개로 해석했다.
조용필의 ‘바운스‘가 젊은 세대의 언어로 변주되었듯, 아이유가 양희은과 신중현의 곡을 리메이크하며 과거의 감성을 되살린 예를 들었다.
“조용필은 1950년생으로 2000년대 감성으로 내려왔고, 아이유는 1993년생으로 1970년대 감성을 끌어올렸다. 세대가 서로의 음악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문화는 젊어진다.”
그는 “음악은 나이를 사라지게 한다. 젊은 음악을 들으면, 우리 마음도 젊어진다”라고 말했다.
교수는 “지금의 K-POP은 춤과 비주얼 중심의 콘텐츠로 충분히 성장했으나, 이제는 예술적 완성도를 더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댄스가 K-POP의 중심이었다면, 다음 세대는 감성의 회복이 되어야 한다. 좋은 가사, 완성도 높은 사운드, 그리고 진정한 노래의 힘이 다시 중심에 서야 한다.”
그는 ‘슈퍼노바‘, ‘아마존‘등 에스파의 최근 곡을 예로 들며 “좋은 곡 하나가 그룹의 생명력을 되살린다”라고 분석했고,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그랬듯, K-POP 역시 ‘좋은 노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역동성’에서 ‘음악성’으로
이번 세미나는 한국 대중음악의 철학적 방향을 재정의하는 자리였다.
K-POP의 세계화가 보여준 에너지의 근원은 ‘역동성’이지만, 그 지속 가능성의 조건은 ‘음악성’에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준 시간이었다.
강의 말미에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젊은 세대의 음악을 듣고 이해하려는 순간, 그 음악은 이미 세대를 넘어선다.
음악은 인간을 연결하는 가장 오래된 공감의 언어입니다.”
K-POP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날의 강연에서 만큼은 확실한 한 가지가 있었다.
좋은 노래는 언제나 시대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