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알약을 삼켰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나 대신 무언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약은 늘 작고 단단해서
내 감정들이 너무 부드럽고 울퉁불퉁 하다는 사실만 증명했다.
물을 마시기 전, 알약은 혀 밑에서 잠시 숨을 참았다.
씁쓸했다.
그 씀은 내가 잊으려는 기억보다 더 명확했고,
그 기억보단 빨리 사라졌다.
나는 씀을 넘겼다.
고개를 젖히고, 목구멍으로 떨어지는 그것을 따라
작은 감정들이 줄줄이 미끄러져내렸다.
삼킨 후, 잠시 텅 빈 느낌이 온다.
몸은 알약의 지시를 기다리는 로봇처럼 조용해지고,
나는 내 의지의 부재를 위안처럼 받아들인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스, 맬서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아내는... 아니, 그런 이름조차 없는 약이,
내가 아닌 나를 대신해 삼켜졌다.
알약은 내 안에서 풀어졌다
천천히, 조용히, 모든 감정의 말 끝을 잘라버리는 식으로.
침묵이 몸 속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을 감정처럼 오래 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