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을 입고 있었고, 그건 비에 젖은 셔츠처럼 들러붙었다
이름은 처음엔 얇았다.
이름은 처음엔 투명했다.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나는 이름을 걸치고 있었다.
너는 나를 부르지 않았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공기는 나를 불렀다.
기류의 떨림으로,
햇살의 각도로,
꽃가루의 부유로,
나는 나라는 이름을 입고 있었고,
그건 비에 젖은 셔츠처럼 피부에 들러붙었다.
말랑하고 조용한 사람,
나는 그런 이름을 원했다.
그래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고,
손톱 끝을 둥글게 갈아냈고,
말을 삼킬 때는 꼭 혀끝으로 눌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항상 입천장 아래 눌려 있었고,
사람들은 그게 조용한 사람의 미덕이라고 말했다.
내 이름은 목덜미에 태그처럼 붙어 있었다.
누가 손가락으로 당기면, 나는 조금 기울어졌고
그걸 모른 척했다.
이름이 찢어지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구겨져야 했다.
나는 ‘사랑받을 사람’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물들인 천처럼, 희게 빨아낸 마음 위에
은은하게 퍼지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세탁할수록 지워지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사람들은 나를 부르고
나는 그 이름에 맞춰 웃고
입꼬리 뒤로 혀를 감추고
허리 각도를 조절하고
걷는 속도와 말의 속도를 조율했다.
그러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누워 있는 이름 하나를 봤다.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나처럼 자고 있었고,
숨을 쉬고 있었고,
내 대신 아팠다.
나는 손끝으로 이름을 문질렀다.
그건 문지르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점점 번지는 종류의 잉크였다.
먹먹한 먹물처럼
온몸에 번져들었다.
팔, 어깨, 턱, 이마, 눈, 눈동자, 안쪽.
지우는 척하다가 결국 새긴 것이다.
나는 이름을 지우다가, 나를 새긴 것이다.
지금도,
누가 나를 부르면
나는 먼저 냄새를 맡는다.
그 사람이 말하는 내 이름은
철제 서랍 냄새가 나거나
젖은 나무 냄새가 나거나
아무 냄새가 없다.
냄새가 없으면 무섭다.
그건 오래된 이름이다.
너무 오래되어, 감각이 지워진 이름.
나는 그런 이름을 입고 살아왔다.
나는 그런 이름을 벗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입는다.
살짝 큰 옷처럼,
이름을.
나보다 약간 좋은 사람의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