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물거품 - 김청귤

호명의 의의

by 영영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인간은 한 생을 살며 여러 이름을 지어주고, 또 부여받는다. 출산을 하지 않은 이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불리고, 또 누군가를 부름으로써 관계를 맺는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김청귤 작가의 『재와 물거품』 속 마리와 수아는 세상에 의해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이다. 마리는 선대 무녀가 죽은 이후 '무녀'라는 역할로만 존재했고, 수아는 이름조차 없이 괴물이라 불리며 존재를 지워졌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처음으로 ‘이름’으로 불러주는 순간, 단지 어떤 기능이나 현상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 호명은 사랑의 시작이자,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작고 조용한 외침이기도 하다.


천선란 작가의 『모우어』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름을 알면 그때부터 각별한 사이가 되어버려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영영 사라져도 그 사람을 부를 수 있는 단어는 평생 사라지지 않잖아요.”


『재와 물거품』에서의 호명도 이와 같다. 비록 마리와 수아는 재가 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만,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존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고, 그 사랑을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다짐이다.

사랑이 사라져도 이름은 남고, 존재가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다.


그들은 결국 영원할 것이다.

마리, 수아.

사라졌지만, 여전히 불릴 수 있는 이름.

그러니 그 사랑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다시 반복된다.

『재와 물거품』은 환생의 서사 구조를 통해, 사랑이 시간 위를 떠돌다 다시 만나는 방식으로 돌아온다는 걸 보여준다. 마리와 수아는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결국 서로를 알아보고 또다시 사랑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늘 이름이 있다. 수아는 잊지 않고 부르고, 마리는 그 부름에 이끌린다.

한 번 불린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될수록 선명해지고, 그 반복 속에서 기억은 사랑의 형태를 유지한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언제든, 다시,

그 이름이 불리는 순간부터 또 한 번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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