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의 반의 반 - 백온유

엄마라는 말에 우리가 걸어두는 환상

by 영영

가족이란 무엇일까.

모성은 정말 타고나는 감정일까, 아니면 타인의 필요에 의해 부여되는 역할일까.


2025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여는 백온유 작가님의 <반의 반의 반>은 이 오래된 질문들을 다시 꺼내오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가족이라는 말에 갇혀 있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스스로를 속인다.

이 단편이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건드리는 건, 우리가 가족이라는 단어에 덧씌운 환상이다.


할머니를 조금도 닮지 않은 엄마를 바라보며 줄곧 아쉬움을 느껴온 손녀는, 어느 순간 "엄마의 얼굴과 할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자신 역시 큰 손해를 입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그 문장에서 '닮지 않음'이 '손해'라는 단어로 연결되는 순간, 독자는 가족이란 이름 아래 요구되는 닮음, 유산, 역할 같은 것들을 인식하게 된다.

피를 나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는 자식에게 무언가를 남겨야 하고, 닮지 않았다는 이유 만으로 결핍을 느끼게 되는 관계.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강요당하고 또 대물림 하고 있는가.


딸은 또 다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식의 일이라면 도리 없이 내주고 마는 것, 그게 엄마 아닌가?"

이 문장에는 억울함과 기대, 동시에 엄마라는 존재를 향한 오래된 오해가 겹쳐있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삶을 마음껏 요구할 수 있다는 착각, 그게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해 왔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자주, 침묵한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영숙이 있다.

딸도 손녀도 아닌, 제삼자의 말과 태도에 마음을 내어주고, 조용히 무너지는 인물.

'엄마'라는 호칭에 마음을 연 건, 어떤 애틋함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금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도 쓸개도 내어준 가족보다 가까이 살을 맞댄 제삼자에게 영숙은 속절없이 당하게 된다. ㅡ 물론 명확하다 할 수는 없지만ㅡ

그런데도 영숙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끝내 명확히 인식하지 않는다. 혹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 마지막엔 이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왜인지 그 애가 자신을 여기에 붙들어두려고 그런 것만 같았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유력했다. 실버타운에 가지 말라고 그렇게 나를 말리더니, 바보 같은 것."

이건 배신감의 고백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조용한 합리화다.

"내가 좋아서 그런 거다"라는 말 안엔 체념과 자기 기만은 그리고 누군가를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섞여있다.


"넌 그러다 망하고 말아. 정말 그러다 버려지고 말아."

영숙이 딸에게 내뱉었던 냉정한 말은 타인을 향한 분노의 문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한 예언처럼 느껴진다.

필요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쓸모 있는 인간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이들이 결국 어떤 상처를 받게 되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영숙은 누군가에게 속기보다는, 스스로를 속이며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누구에게도 완전히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ㅡ사실은 묻지 못하는 것이겠지만ㅡ, 동시에 자신도 구해주지 못한다.


백온유 작가님의 <반의반의 반>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어 온 신화를 해체하고, 가족이라는 말에 씌워진 도덕성과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기대를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진심보다 '쓸모'로 존재를 증명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속고, 더 자주 스스로를 속인다.

사랑이라는 말 안에 조건이 있고, 침묵이 있으며, 자기기만이 있다. 그렇기에 이 단편은 나에게 질문으로 남겨졌다.


우리는 정말 사랑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숨기고, 합리화하고, 침묵해 왔는가.

그리고 그 침묵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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