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 백사혜

잊히지 않는 밤을 통과하며

by 영영

#서평단 #도서일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허블 부스를 지나던 어느 여름날,

나는 이 책과 마주쳤다.

부스 한 켠에 놓여 있던 문장 하나에 발이 멈췄고,

편집자분이 전해주시던 설명 하나하나가

책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이 책을 들고 나오지 못했다.

무거운 짐도, 아마 마음의 준비도.

그 선택은 한참이 지나도록 아쉬움으로 남았고,

결국, 나는 다시 이 책을 찾아왔다.

밤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연작소설이다.

그러나 단편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앞선 이야기의 감정이 다음 이야기의 그림자가 되고,

어떤 인물의 사랑이 또 다른 인물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파편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궤도를 그리며 돌아가는 행성처럼 엮여 있고,

그 궤도는 점차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낸다.


첫 번째 단편을 읽고 나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그 사람을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람 역시 언젠가 나를 자신의 기억을 위한 대상으로 삼게 되겠구나.

기억은 결국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그 사람을 매개로 자신을 지탱하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 순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추억의 도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이 조금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의 세계는

그런 관계들로, 서로를 기억하려는 불완전한 마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들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응시한다.

죽음이 가까이 있고,

삶은 소진되어 있으며,

사랑은 너무 연약하고,

구원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 세계 속에서 인물들은

‘살아남기’보다 ‘살아 있으려는’ 마음으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연인을 기억하는 로켓이 되고,

누군가는 끝내 노래를 잃고,

누군가는 권력의 손에 의해 쓰이고 버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놓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으려 하고,

무너진 세계 속에서도

어떻게든 감정을 지키려 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연약하고, 지워지기 쉬운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이 책은 그들을 박제하거나 소비하지 않는다.

끝까지 살아보려 애쓰는 이들의 온기를

차분한 문장 속에 담아 건넨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이야기의 구조와 리듬, 문장과 정서를 모두 아우르며

독자에게 아주 깊은 감정의 결을 남긴다.


장르로 따지자면 SF 연작소설이지만,

이 책이 품고 있는 건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억은 무엇을 남기고,

사랑은 끝끝내 무엇을 지키는가.

이 질문들을 다정하게, 그러나 뚜렷하게 묻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불꽃이었다는 것을.

불꽃이 피어올라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고,

나는 그 세계 안을 조심스럽게 헤엄쳤다.

읽는 동안 나는 내가 되지 못한 삶들을

잠시, 그러나 진심으로 살아볼 수 있었다.


밤은 언제나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이 밤은,

그들이 끝내 보지 못했던 이 밤은—

정말 아름다웠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지만 감상은 철저히, 정말로, 주관적입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3화지뢰글리코 - 아오사키 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