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여름 낭만집
에어컨 바람이 뺨에 찰싹,
하지만 안쪽은 보글보글.
온 몸속 감정이 끓는 중.
차가운 공기를 꿀꺽 삼켜도
속은 끈적, 묘하게 들떠 있다.
몸 어딘가에서 포르르, 기포가 이는 소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부풀고 있다.
새콤한 무언가가 발끝까지 퍼지고,
나는 괜히 쿡쿡 웃게 된다.
횡단보도에 서 있다가
옆 사람 어깨가 살짝 스쳤을 뿐인데,
심장이 두두둑.
낯선 시선에도 고개가 절로 까딱,
낯익은 그림자엔 괜히 시선이 머문다.
기분은 톡톡,
행동은 팔랑팔랑.
가벼운 손짓 하나에도
심장은 팡, 하고 튄다.
가만히 있던 나를
어디선가 날아든 무언가가 툭, 건드렸다.
말보다 먼저 반응한 건 손끝,
그다음은 눈동자.
감정은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하게 피어오른다.
나는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햇살이 길게 눌러앉으면
마음부터 지글지글.
입꼬리는 덜컥 올라가고,
말은 쪼르륵 흘러나온다.
여름엔, 사람이 살짝 발효되지.
나는, 유난히 금방 넘친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서면
목소리가 말랑말랑해지고,
시선은 미끌,
몸은 느리게 움직인다.
아무래도 여름이 터졌다.
그리고 그 안에
나도 함께 터진 것 같다.
빙수 그릇 아래 맺힌 물방울이
툭, 손등 위로 떨어졌다.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내 말투가 너무 다정했다는 걸
입을 다물고 나서야 알았다.
눈빛이 너무 오래 맴돌았고,
그 사람은 피하지 않았다.
그게 더 아찔했다.
공기 중에 무언가가 찰랑,
우리 사이를 스쳤다.
향인지, 빛인지,
지나간 게 분명한데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무언가.
돌아오는 길,
발끝이 찌르르하게 달아올랐고
심장엔 여운이 방울방울 맺혔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건
그 순간이 너무 반짝였기 때문이다.
깨질까 봐, 그냥 걸었다.
머리카락은 이마에 철썩 붙고,
속눈썹은 습기 찬다.
내 뺨에는
요정의 가루처럼 무언가가
사르르 내려앉는다.
보이지 않아도, 분명 있었다.
어깨너머로
자두 껍질이 터지듯
어딘가에서 붉은 기운이 번졌다.
그 위로 미세한 노란색이
물 번지듯 따라왔다.
바람은 숨죽이고,
나는 조용히 끓었다.
이게 잘못된 건 아닐까
한참을 걱정하다가도,
괜히 히죽 웃게 되는 걸 보면
역시, 여름이다.
그래서 아무 일 없던 듯
물을 꿀꺽 마셨고,
땀이 마르기도 전에
나는 다시 웃었다.
햇빛이 너무 오래 머무르면,
감정도 끓는다니까.
나는 자꾸 웃게 되고,
자꾸 말이 많아져.
여름엔 사람이 이상해져.
나는, 특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