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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Nov 09. 2023

전 식물 안 좋아해요

잔디 키우기 1

누가 식물을 주면 도망가고 싶었다. 내게 온 식물 중에 결국 살아남은 게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아부지는 식물의 대가, 하루 종일 식물을 돌보고 가꾸는 분인데. 나는 그게 그렇게 싫다. 결국 죽으니까.


그런 내가 앞마당 뒷마당 사이드 식물 등등 식물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파트너가 주로 돌보고 나는 옆에서 거들고 있다.(집안의 일들도 많으니까. 이래서 아내-바깥양반이라고 하는) 여튼 식물들을 돌보고 있다. 호주에, 마당 있는 집에 사니까-라기보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테넌트(세입자)로 앞마당 뒷마당의 잔디는 물론 모든 식물들을 잘 가꾸겠습니다.

부모님 집에서 나온 후, 교무실 내 책상을 갖게 된 후, 내가 만난 그 많던 크고 작은 화분 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없다. 정말 없다. 


그런 내가, 집주인님 저를 뽑아주세요-하고 어필하기 위해(호주 테넌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약속을 남발해 버린 것이다. 어쩔 것인가. 신기하다 나무- 크구나 화분- 정도인 내가 키우고 돌보아야 한다니.


일단 물을 열심히 준다. 아침에 물을 줘도 오전 안에 말라버린다. 덧없는 아침이다. 오전 5-6시경에 해가 뜨는 브리즈번은 햇볕이 어찌나 좋은지 빨래가 기가 막히게 잘 마른다. 그리고 잔디와 식물들도 물을 머금자마자 바짝 말라버리는 것이다.(물값도 비싼데 ㅠ.ㅠ)


우찌끈. 저 열대의 나무는 위로 솟아오르느라 말라버린 누런 잎이 뚝 하고 떨어진다. 아이고 깜짝이야. 뱀이든 도마뱀이든 나온 줄 알았네. 그런 잎들을 후두둑 정리하고 쳐주었는데 다음날 또 다시이다. 왜 이렇게 빨리 자라고 마르는 거니. 분명히 후루루룩 누렇게 떨어진 잎들 잘 긁어서 버려주었는데. 뭐야? 어제였잖아. 벌써 또 후루루루루루룩 잎들은 떨어져 있다. 에잇 그냥 둘까 하다가 그러면 또 그 잎들이 금세 쌓여 햇볕을 못 받고 그러면 또 누렇게 떠버리고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여기에 마당 한가운데에 엄청난 구멍이 생기는 일이 생겨 버린다.


우리가 처음 본 집은 마당 가운데에 보틀 트리가 있는, 그 나무가 꽤 멋진(남다른 나무를 보는 것은 좋아하게 되었으니 -.-) 집이었는데. 알 수 없지만 새 집주인은 그 나무를 싫어해서 다른 곳에 넘겨 버렸다는 것. 그래서 그 나무 업체에서 나무를 뽑아갔고, 나무가 떠난 앞마당은 비어 버렸다. 흙은 채워졌지만 따가운 등살처럼 벗겨진 채 돋아나지 않는 저 마당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게다가 나무업체가 흙도 그냥 부어 놓고, 꺾인 나무도 그냥 던져놓고 이따 와서 정리할게- 하더니 2주째 오지 않는 이 상황.


우리는 항의라기보다는 정말, 이 마당을 어찌할까요(난 몰라 책임 안 질 거야. 나중에 뭐라 하지마의 마음으로)라고 부동산에 문의했더니 아마 그 나무업체에 항의를 한 모양. 우리가 갈게 미안-하고 문자를 보내더니 또 2주가 지났다. 앞마당은 이미 쑥대밭. 우리 약속했는데, 이건 어쩔 수 없어 우리도-하면서 사진을 찍고 보내고 찍고 보내고.(그렇다 호주에서는 부동산 계약 시에 세입자가 식물도 잘 관리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사인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뿌리도 마구 박히고 흙 다 파여있고 옆으로 모아 두었지만 남은 나무들이 정리가 안 되어 나머지 잔디들도 죽어가고. 엉망진창인 상황. 그리고 드디어 누군가.


 뭐 하는 거예요? 땅 다지는 거예요. 제가 알려줄 테니 참고하고 물 매일 주세요.


외출했다가 와보니 작업복의 남자가 땀을 흘리며 마당의 흙을 정리하고 있다. 드디어 왔구나. 그래 이제 새 잔디 심고 정리해 주겠지. 땅 정리하는 법 알겠어요. 물 잘 줄게요. 그래서 잔디는, 새 잔디는 언제 오나요?


잔디는 안 와요. 물 잘 주면 나머지 잔디들이 퍼질 거예요. 필요하면 잔디 씨 사다가 심어요.


잔디 씨를 심으라고? 언제 나는데? 알 수 없다고? 나무를 뽑아간 건 우리가 아닌데.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는, 잔디 가꾸기는 물론 식물 돌보기에 무지하긴 했지만 정말 열심히 고르고 정리하고 씨를 뿌리고 물을 아침저녁 주고 난리 부르스였지만 맨 땅에서 잔디가 퍼지길 바라는 건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비는 2달 가까이 오지 않는다. 물을 주면 무엇 하나 금방 또 말라서 이미 많이 죽어가는 걸.


아니 정말 우리는 이런 상태를 가꿀 수가 없어요. 이건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다시 부동산에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나무업체에서 다시 찾아왔다. 20여 장의 잔디판을 가지고. 무언가 압박에 의해서 왔는지 후두둑 깔더니 인사를 하고 간다. 그렇게 새 잔디가 오면 원래대로 초록초록 잔디밭이 만들어지는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었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앞마당의 잔디는 이렇게 누렇게 떠버렸다.

그렇다. 이것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이며, 잔디 키우기의 과정이며, 테넌트 그리고 느릿느릿 속 터지는 호주에 대한 기록이다. 다음은 밟아줘야 한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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