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최고 35도. 아침 뉴스를 보기 전 예감은 했다. 아이들을 내려주러 나서는 8시경 이미 햇볕에 팔이 따갑다. 선글라스 꼭 가져와 엄마. 멋이 아니고 없으면 얼굴이 아플 정도야. 그렇게 호주 오시는 엄마에게 필요한 거 1순위로 말했으니. 그러한 이곳의 햇볕이 어제와 오늘 또 다르다. 이제 12월, 여름이 시작된 것이다.
여름에 와서 온화하고 더운 겨울과 봄을 보낸 우리는 제대로 여름을 맞이하였다. 마치 내가 일단 한번 보여줄게 하듯이 오늘 무섭도록 더웠는데 4시경 갑자기 처음 보는 돌풍이 불더니 온 동네 소리를 잠재우듯 폭우가 쏟아졌다. 아까 그렇게 뜨겁더니 순식간이로군. 이것이 아열대인가.
너무 덥지 않아요?
아니, 이건 너무는 아니야.
아이 교복을 사러 간 가게에서 주인아주모니는 더더더더더 더울 거라며 아직 봄인 걸이라고 했다.
주말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건 낫 투머치.
옆집 뉴질랜드 출신 부부는 지난 몇 년 살아보니 더더더더더 비가 많이 올 거라며 시작일 뿐이라 했다.
우와 오늘 진짜 덥죠. 괜찮아요?
에이 안 더운 걸. 오늘 11월 봄이라고!
요가수업 듣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껄껄 웃으시며 더더더더더 더울 거란다 드라이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식물과 동물이 다르다는 건 도착해서부터 줄곧 느끼는 것이고, 계절이 반대인 것은 지구 반대편의 예상한 감각일 텐데, 아열대의 기후란 정말 낯선 것이어서 내가 태어나 살아온 곳의 기후를 한번 더 더듬어보게 한다.
그 폭염과 폭우 속에서
잔디가 미친 듯이 자란다. 우리 집만이 아닌 온 동네 잔디가 이전에는 약한 모습이었어-라고 말하듯 새삼스러운 진초록으로 깎기가 무섭게 내뻗는다. 차마 다듬지 못한 공원의 잔디는 잔디가 아니라 또 뱀이 나올 듯한 무서운 덩굴로 변해가고 있음을 오늘 오랜만의 공원에서 보았다.
까맣게 날로 더 까맣게 타고 있다. 이미 수영복 자국이 온몸에 생생하긴 한데 여름볕이란 더 무서운 것이어서 고글의 모양이 내 얼굴에 나타나고 있다. 고글 자국 말고는 그새 더 탄 것이다. 자유형을 하면서 햇볕 반대쪽으로 숨을 뱉는 연습 중이다. 선크림을 발라도 발라도.
빨간 꽃이 사방에 피고 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오면 길가의 나무들이 빨갛게 변할 거야-라고 했던 이웃집 앨래나의 말처럼 순식간에 나무들이 빨간 꽃을 피운다. 봄을 알리는 꽃은 보라색 자카란다였다면 이제 보라꽃이 다 지고 난 자리에 빨간 카펫이 줄지어 늘어선다. 길가에도 아저씨 아이들 할 것 없이 빨간 크리스마스 셔츠 입은 사람들이 날로 넘쳐난다. 온사방 뜨거운 열기 가득 빨강의 계절이다.
같은 것들이 있다.
더워지면서 벌레가 많아졌다. 어린 시절 보다가 사라진 듯했던 개미를 여기서 아침저녁 수백씩 만난다. 요즘은 나도 애들도 그냥 눌러 죽이는 일이 너무 쉬워져서 문제. 하루에 살생이 수백수십. 예상되는 대로 벌레의 종류와 크기도 아열대에 맞게 다양하고 거대하다. 개미가 아니라 이것은 도구를 사용한다. 특히 날마다 파리를 잡는 전문가로 우리 가족은 거듭나고 있다.
그늘의 안온함. 여름의 그늘은 누구에게나 너그럽다. 언젠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안에서 80 넘으신 우리 할머니랑 가만히 앉아 쉬던 그날, 무엇도 없었는데 무어나 다 가진 듯 한껏 시원했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늘 안과 그늘 밖을 지날 때마다 이름도 없는 고마움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의 이 소리. 풀벌레가 우는 밤, 그 여름의 밤에 우리는 모기 쫓는 불을 피워 두고 감자와 옥수수를 잔뜩 쌓아두고 먹곤 했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면 밤은 까맣지 않고 다 보일 듯 하나로 가득, 그 밤에 듣는 풀벌레 소리가 좋았다. 당분간 글을 쓰는 밤에 이렇게 풀벌레가 울겠구나 같은 여름밤이구나 싶다.
그리고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엄마들은 어디서나 똑같아서 며칠 전 라디오에서 흥분한 여성 진행자가 아니 무슨 방학을 이렇게 빨리 하는 거지 이제 11월인데-라며 2달 동안 그 아이들이 먹고 싸고 안 치우고 어쩌면 좋아-하는데 혼자 빵 터졌다. 화장실 휴지도 엄청 든다고요! 하면서 예정보다 1주일 빨라진 방학에 흥분하던 육아동지. 똑같다 엄마들 우리도 방학하면 돌밥돌밥 돌아서면 밥 하고 치우면 또 밥 하고. 그렇게 방학은 길고 길고 춥고 또 덥고 지지고 볶고.
여기가 더워질수록 한껏 추워질 한국의 겨울을 생각한다. 낫 투머치의 겨울이기를 모두가 안온하기를. 한 번도 눈이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한국어반 아이의 눈망울을 생각하며, 그 겨울의 눈도 모두에게 혹한의 빙판이 아닌 귀한 선물이기를. 여기 밤새 또 꽃을 터트리는 저 포인시아나처럼 모두에게 붉은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