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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Jan 23. 2024

번지 점프를 하다

인생의 순간

인생의 필요한 순간들, 무엇이 있을까

예상했던 혹은 상상했던 순간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교사 임용이 된 날, 결혼식장, 허니문, 아이의 탄생


처음이지만 분명히 인생의 빛나는 시간이 될 것들


안타깝지만 대학교 입학이나 졸업은 저기 들어가지 못했다.나는 그 이름도 특별한 수시 입학 전형 1세대로 학교를 대표해 지원하여 뚝 떨어진 학생이다. 재수 안 하고 사범대 나와 대학원 다니며 교직을 시작한 것이 다행이다 싶지만, 인생의 필요한 순간에는 넣지 못한다. 20년이 지나도 그렇다.

 

그리고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려본 것들이 있다


세계 여행, 지도를 펼치면 모두 빼곡한
어느 옷이든 폭도 길이도 딱 맞는 적절히 멋진 몸매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서핑 보드를 잡고 유유히 파도를 넘는
마라톤 또는 철인 3종 경기 무언가 결승선이 있는
숲 속 오두막 작은 학교 개량 한복을 입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리고
번지점프


세계 여행은 20대 유럽일주 하루 전 배신한 너로 인해 멀어졌다. 복직해도 갈 수 있을까?

몸매는, 늘 마음에 있으나 코로나가 몸을 불려 놓았다. 건강을 위해서 요즘 매일 수영한다

서퍼스 대신 선샤인에 가서 지지난주 서핑을 배웠다. 파도가 나를 오래도록 무참히 때렸다

마라톤은 10킬로이지만 대학원 시절 3번 정도 뛰었다. 그게 20년이니 이제 못하려나.

철인 3종 경기는 바닷속에만 들어가면 세월호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바다수영이 먹먹해졌다.

숲 속 오두막은 선생님도 꿈이 있단다-하고 발표하던 것인데 자꾸 머뭇거린다 꿈이었는데

그리고 드디어

번지점프, 그것을 했다. 지난주 목요일


분명히 점프했는데 이미 마쳤는데

1주일 동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번지점프를 했다니, 내가 그것을 해냈다니


이런 성취감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해내도 해내도 무엇을 해낸 것인지 더 크게 요청을 받는 학교일이나

먹어도 먹어도 쉴 새 없이 쫓아오는 식사의 시간이나

쓰면 좋지만 돌아서면 다시 퇴고를 시작하는 나의 글들 또한 멀어지는 시들이나

어제보다 조금 더 빨라진 자유형 한 바퀴의 텀 혹은 발끝까지 조금 더 뻗는 요가의 동작들

그런 일상에서 나는

무언가를 성취해 낸 것이었다.


뉴질랜드에서의 번지점프는 아주 오래전부터 막연히 꿈꿔왔던 것이었다.

영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두자. 그러나 행운이 있게도 영화 속 그 장소였다.


호주에서 6개월 살고 찾아간 뉴질랜드는

비슷한 두 나라의 국기만큼이나 슈퍼마켓도 카페이름 동네이름도 비슷한 것이 많았는데

정말 다른 곳이었다.

무성한 초록과 광활한 자연의 오스트레일리아 호주

붉은 산 푸른 호수, 눈앞에 있지만 실제하지 않는 것 같은 풍광의 뉴질랜드

퀸스타운 공항에 내리자마자 그 풍경에 압도당한 나는 잠시 멈춰 서 있었다.

하늘도 물색도 산의 그림자나 무지개 너머의 공간까지

이 세상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푸른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뛰었다

낙하하는 순간은 길었고

텅 빈 공간으로 나는 몸을 던졌고

날았고 다시 붕 떠올랐고

맘껏 소리를 지르는 동안

나는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이젠 무엇을 이루면 될까?

두려움 없이, 앞으로의 날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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