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를 나와 걷다 보면, 길가에 시선을 끄는 오래된 녹색 5층 건물이 있다. 한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알려져 있던 "충정아파트"다. 충정아파트는 그동안 정확한 준공 연도를 파악하지 못해 193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는 것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니 관련 정보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일제 강점기 경성 (서울의 옛 이름)에 들어선 아파트들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루어졌고, 관련 도서도 출판되었다.
도서 "경성의 아파트"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충정아파트뿐만 아니라 많은 공동주택이 존재했고, 또 현재도 일부가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930년 남산동 1가에 들어선 미쿠니아파트다.
지금도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에도 경성(서울) 집중 현상은 여전했나 보다. 경성의 고질적인 주택난 해결을 위해 아파트의 개념이 제시되었고, 미쿠니아파트와 충정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초기의 아파트로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미쿠니아파트는 일제 강점기 조선 전역에 연탄을 공급하던 회사인 미쿠니 (三國) 상회의 직원 관사로 쓰이던 건물이다. 상회라고 하니 구멍가게가 아닌가 오해할 법도 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삼천리 도시가스 정도의 큰 회사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 건물은 지금도 건재한데, 심지어 최근에 대수선 공사를 했는지 외관까지 깔끔하게 바뀌었다. 얼핏 보면 빌라처럼 사용되어서 이것이 일제 강점기 건물인지 모르는 이들도 많지만, 건축물대장에 1931년 1월로 기록된 사용승인일이 이 건물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좌) 사진 출처 : 국내 최고령 '충정아파트' 역사속으로 - 아시아경제 (asiae.co.kr) / (우) 사진 출처 : X "살구나무 아랫집 (@salguajc)"
그래서 충정아파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는 아니다. 그래도 일제 강점기 서울의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 몇 안 되는 건물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충정아파트를개별적으로 연구한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충정아파트의 준공 연도를 1938년 7월 12일로 예측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충정아파트는 일본인 건축가 도요타 다네오의 이름을 따서 처음에는 도요타아파트- (혹은 도요타를 음차 한 풍전아파트)라고 했단다. 그러나 이 아파트가 처음의 용도대로 사용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고,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파란만장한 수난의 역사를 겪게 된다.
해방 직전 호텔로 용도가 변경되어 동아 기업이라는 곳에 소유권이 넘어갔었다가, 해방 직후에는 해외에서 귀국한 동포에 의해 무단 점유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6.25 당시에는 서울로 진주한 인민군이 인민재판소로 사용하며 건물 지하에서 양민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맥스 데스퍼 기자가 촬영한 6.25 전쟁 당시 시가전 모습.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물이 충정아파트다.
전쟁 후에는 UN 전용 호텔인 트레머 호텔이 되었는데 여기에 CIA 서울 지부가 비밀리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1962년에는 김병조라는 자가 건물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는 6.25 전쟁 때 아들 6형제를 나라에 바쳤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는 이승만에게 건국 최고 공로 훈장을 수여받은 바 있고, 5.16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눈에 들어 건물을 받게 되었다. 군인 출신의 최고권력자가 김병조를 애국자로 추켜세운 이유는 아마 군과 군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였을 것이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호텔로 사용하던 미군 측에서 사연을 듣고 흔쾌히 양도에 동의했다고 하는데, 건물의 가치가 그 당시의 시가로 무려 5억 환이었다고 한다.
아래 대한뉴스에는 김병조의 "애국적인" 일화와 함께 충정아파트 건물을 "코리아관광호텔"로 공사하고 증축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시기 쯤 기존 4층 규모에서 한 층을 올려 5층 건물로 증축된다. 그러나 이는 불법 증축으로, 현재도 건축물 대장에는 4층 건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병조의 이야기는 모두 사기로 밝혀졌고, 건물은 국세청으로 몰수되고 김병조는 구속되기에 이른다. 소유권은 내과병원장 장동현에게 넘어가 병원 건물로 바뀔 뻔했으나 공사 비용 문제로 무산되었고, 그의 부인 최이순을 거쳐 유인옥이라는 이에게 넘어간다. 유인옥은 1967년 각각 호실을 유림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분양했지만 사실 아파트로의 용도 변경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1975년에는 최종적으로 건물을 저당 잡고 있던 서울은행에 소유권이 넘어간다. 이때까지 호텔로 사용되던 충정아파트는 서울은행에 의해 다시 아파트로 용도변경, 구조 변경 공사를 거친다. "유림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분양된 세대의 입주자들과서울은행은 소유권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1976년에 협상이 타결되어 입주자들이 서울은행에 매입 대금을 갚아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1979년에는 충정로 왕복 8차선 확장 공사로 건물의 1/3이 잘려나간다. 당시 입주해 있던 52 가구 중 19 가구가 헐렸는데, 통째로 철거할 수도 있었지만 입주자들과의 분쟁 때문에 도시계획에 확실히 걸리는 19 가구만 철거하고 만 것이다. 한동안은 건물이 잘려나간 상태로 방치되기까지 했고, 잘려 나간 부분에 살던 주민 중 3 가구가 중앙계단 자리에 집을 증축하는 등 공용공간을 점유하자 복도와 계단을 다시 만들면서 현재의 독특한 형태가 되었다. 잘려나간 부분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다는 설도 있지만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8년, 마침내 충정아파트 일대는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 대상이 되었으나, 소유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원래 주거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세대와, 1979년 이후 공용공간을 무단 점유하며 살던 세대, 그리고 김병조가 불법으로 증축한 5층에 살고 있던 세대간의 갈등이 있었고, 4층 이하의 세대들은 5층 세대에는 토지 지분이 없음으로 이들이 보상 대상이 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다만 서울시 박원순 시정에서 2013년에 충정아파트를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다만 서울미래유산은 보존의 강제성은 없다. 한때 문화재청에서 등록문화재 지정을 검토한 바 있으나, 5층이 불법 증축되면서 건물 구조에 무리를 줬기 때문에 안전진단에서 E등급(즉시철거) 판정이 이미 나와있는 상태여서 문화재 지정을 포기했다고 한다.
2019년에는 서울시가 마포로 도시정비형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에 의거해 충정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기고 문화시설로 이용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 방안은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사를 수렴하지 않은 채 발표를 강행했고, 거주 중인 주민들을 위한 방안 없이 무작정 건물을보존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건물 지하에 오수가 들어차고 외벽 일부가 붕괴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2022년, 10여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 시장이 주도하는 도시 계획 위원회에서 충정아파트의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충정아파트 일대 마포로 5구역 제2지구에 28층 복합 건물을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건물을 보존하기에는 노후화가 너무 심해 철거를 결정했고, 해당 부지에는 공개 공지를 조성하여 충정아파트가 있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충정아파트를 3D 스캐닝하여 기록을 남길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2021년 6월 7일 충정아파트를 방문했다. 건물 입구에 "외부인 출입 금지" 안내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어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고, 밖에서 둘러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충정로역 9번 출구에서 나오니 저 앞에서 녹색 건물이 아우라를 풍기며 서 있다.
충정아파트의 첫인상은 뭐랄까.. 500년 묵은 구렁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칙칙한 녹색 때문인지, 아니면 주변 건물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 때문인지.. 아무튼 엄청난 존재감을 풍기는 건물임에 틀림없다.
일제강점기 것일지도 모를 3층의 창문 사이로 사람의 손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특이하게도 1층 상가와 아파트 출입구가 지면으로부터 다소 높은 곳에 있다.
2021년 당시 필자의 블로그에 남긴 충정아파트 방문기는 이러하다.
칙칙한 녹색의 건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낡았고, 건물의 상태도 좋지 않아 보였다. 하루빨리 밀어버리든지, 보존을 하려면 수리를 하던 해야 될 것 같았다. 지금의 "방치" 상태로는 도저히.. 사실 여기 사는 사람들도 주로 세입자이거나 옛날부터 살아왔던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쨌든 대부분 갈 곳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결론이 안 나는 것 같다. 오세훈의 서울시가 이 건물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