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동 계곡 복원을 이유로 철거된 시민아파트
경복궁 옆 옥인동 구불구불 골목길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인왕산 봉우리가 멀리 보이는 길 끝에 도착하게 된다. 옆으로 언덕 위에 지어진 옥인연립 단지가 보이고, 앞으로는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을 걸어 들어가면 울창한 수풀 사이 멋들어진 바위 위로 물이 흐르는, 도심 속의 계곡을 만나게 된다. 바로 수성동 계곡이다.
수성동 계곡은 인왕산에서 발원한 청계천의 지류인 옥류동천이 흐르는 계곡이다. 이 계곡은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많이 찾았던 장소이다. 경복궁 바로 옆 쪽이라 접근성이 좋기도 하고.
수성동 계곡은 <동국여지비고>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절경의 피서지로 기록된 바 있고, 조선 후기의 유명한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 <수성동>에 수성동 계곡의 모습이 남아 있다. 돌다리인 기린교(麒麟橋)를 비롯하여 나무 한 그루까지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으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도 그림에 담았다. 현재 수성동 계곡 사진 좌측에 비스듬하게 놓여있는 돌다리가 바로 기린교다.
그랬던 수성동 계곡은 1971년 옥인시민아파트가 들어서며 제 모습을 잃게 된다. 계곡 일부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시멘트로 메워지고, 기린교 또한 훼손된다. 옥인아파트를 비롯한 시민아파트들이 주로 산자락에 들어선 이유는 토지 보상의 문제가 적고 따라서 저렴한 가격에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수성동 계곡 일대의 지적편집도를 보면 옥인아파트가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특이하다면 특이하게도 옥인아파트는 계곡 암반 위에 그대로 지어졌다. 화강암 암반을 깨 부수기에는 당시 건축 기술의 한계도 있었을 것이고 공사 비용 문제도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무튼 아파트를 짓기 위해 기존 지형을 크게 해치지 않은 덕분에 수성동 계곡의 복원이 용이했을 것이다.
1970년에 발생한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로 인해 서울시에서 진행하던 시민아파트 건립 사업은 전면 중단된다. 문제는 이미 서울시에서 계약을 받아 놓은 시민아파트의 계약도 서울시에서 일방적으로 해지해버렸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기존 아파트 계약자들에게 타 지역 아파트 입주 우선권 지급을 검토하는 한편, 계획을 변경하여 일부 시민아파트는 1970년 11월 1일까지는 입주시키겠다고 발표한다.
이 무렵 옥인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다. 다른 시민아파트들이 빠른 노후화로 인해 단명하는 와중에도 옥인아파트는 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지어진 시민아파트는 보강 공사를 거쳐 튼튼하게 지었다는데, 아마 옥인아파트도 이렇게 지어졌을 것이다.
https://brunch.co.kr/@000c3ab5cbec476/7
인터넷에서 찾은 옥인아파트의 과거 사진 몇 장을 첨부한다. 집 앞으로 계곡이 흐르는 아파트라.. 더군다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참 신기하다. 도심 속의 전원주택 느낌도 나고..
... 그랬던 옥인아파트지만, 시간이 흘러 아파트가 낡고 노후되자 주민들이 재건축을 추진하게 된다. 실제로 2005년에는 서울시의 재건축 승인까지 받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0600551?sid=101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도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같은 기간 동안 39.99%가 올라 상승률 2위를 기록했다. 이곳 24평형의 경우 8월 1일 1억 5500만 원에서 이달 18일 상한가 기준 2억 2500만 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옥인아파트 부지는 제1종일반주거구역, 자연경관지구이기 때문에 재건축을 하더라도 최고 5층까지 밖에 건물을 올릴 수 없어 재건축을 사실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주민들은 재건축도 되지 않는 낡은 아파트만을 붙들고 아파트와 함께 늙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어찌저찌 옥인아파트 주민들은 보상을 받아 집을 비웠고, 건물 철거와 계곡 복원 사업을 거쳐 지금의 수성동 계곡이 탄생했다. 과연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