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경관지구에 묶인 낡은 아파트는 어떻게 철거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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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철거민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주는 ‘철거민 특별공급제도’를 내년 (2008년) 4월 18일부터 폐지하는 내용의 ‘서울시 철거민 규칙 전면개정안’을 확정해 시행한다고 7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이미 특별공급 자격을 얻은 철거민은 아파트를 분양받지만 이후에 발생하는 철거민에게는 임대주택 입주권과 이주정착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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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SH공사는 내년 새 제도 이전에 협의보상을 완료할 예정인 회현시민아파트 철거민 353 가구, 연희시범아파트 철거민 328 가구, 25개 자치구 철거민 1658 가구 등에 현행대로 아파트 분양권을 줄 예정이다. 특히 한강르네상스 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해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7동 240 가구)와 종로구 옥인동 시범아파트(9동 264 가구)를 철거하면서 생기는 철거민 504 가구에 대해서도 특별분양을 실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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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철거민에게 아파트를 특별공급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68년 무허가 주택이 급증하자 판자촌 254만 5000㎡에 시민아파트 2000채를 건립하면서 이 특별공급제도를 시작하면서 해마다 철거민 1000여 명이 분양권을 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철거민 딱지가 주어질 이번 보상협의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SH공사의 특별공급 기준에 따라 전용면적 40㎡형 이하의 철거주택 소유자는 85㎡형이 아닌 60㎡형을 받아야 하는데 전체 504 가구 중 76 가구가 이 기준에 미달된 것. 마포 용강이 60 가구(39.5㎡), 종로 옥인은 16 가구(39.77㎡) 등이다. 이들 가구는 고작 0.2~0.5㎡의 차이로 85㎡형이 아닌 60㎡형 딱지를 받게 돼 불만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종로구 관계자는 "주민들의 억울한 사정은 이해하지만 SH공사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 규정대로 60㎡형의 특별공급권이 부여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세입자들의 보상 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을 겪었는데, 임대주택 입주권 소송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옥인아파트와 용강아파트에 대한 철거를 시작했다. 집주인들은 이미 보상을 받고 집을 비웠고, 소송 중인 세입자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그 집만 빼고 철거를 시작해 퇴거를 압박했다. 급기야 용강아파트에서는 이로 인해 세입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09년 용산 참사로 인해 불거진 "동절기 강제 철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지고 있는 서민들의 오래된 벗 ‘시민아파트’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주거 이전비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아 영세 세입자들이 집단 소송을 내는 등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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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시 마포구 용강 시민아파트와 종로구 옥인 시민아파트의 52세대가 서울시를 상대로 주거 이전비 청구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규모는 한 세대 당 1천만 원 선으로 5억 7천만 원이다. 세입자들은 서울시에서 법령이 개정된 이후에도 과거 조례를 적용해 주거 이전비를 보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7년 4월에 개정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공토법)에 따르면 철거 세입자들은 임계주택 입주권뿐 아니라 주거 이전비를 함께 보상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개정된 법률을 곧바로 적용하지 않고, 1년 뒤인 2008년 4월에서야 자체 조례를 개정해 이 같은 규정을 적용했다. 그 사이 1년 동안에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받은 세입자들에게는 주거 이전비를 주지 않았다.
지난 2일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 세입자 김 모(66) 씨가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주민들은 고인이 지난달 27일 동절기 철거가 시작된 직후와 사망 직전에 철거용역업체 직원과 몸싸움에 휘말렸다고 전했다. 신청한 임대주택 공급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 젊은 용역직원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모욕적 언사를 들은 일 등이 김 씨가 자살을 선택한 원인으로 알려졌다. 마포구 용강동 시범아파트 주민들은 7일 용강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씨의 자살에 대해 "주거이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철거를 감행한 서울시와 마포구청에 책임이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제안에 앞장섰던 최재원 독립큐레이터는 “전부 철거되고 7동 한 동이 남아 있을 때 상실감을 토로하던 주민들이 ‘흔적을 조금이라도 남기자’고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마구잡이 개발시대의 산물이긴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향이었고, 소중한 집이었던 기억을 일부라도 남기기 위함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7동의 벽체 일부가 남게 됐다. 서울에서 아파트가 철거된 후 흔적을 남긴 첫 사례다. 최 큐레이터는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지 못해) 폐허처럼 보이는 것이 아쉽지만, 주민들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소중한 기억”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