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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troBoyKorea Aug 13. 2024

광산과 함께한 흥망성쇠,
태백 동점아파트

중고차보다 저렴한 아파트가 있다?!

 얼마 전 동생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강원도 태백에 있는 동점아파트라는 아파트가 매매 가격이 단돈 1000만 원이라는 것이었다. 뉴스 기사 내용대로 중고차 값보다 싼 집이라니.. 저절로 눈길이 쏠렸다. 더 재미있는 것은 아파트 주변이 산 좋고 물 좋은 환경이라 사람들이 별장으로 사둔다는 것이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6/0002186559?sid=101

중고차보다 싼 집값... 990만 원 아파트 18채 거래

강원도 태백시에서 1000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아파트 18채가 한꺼번에 거래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해당 단지 인근에 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등 대규모 일자리 수요가 생기면서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나 역시 웰빙과 세컨드하우스에 대한 로망이 큰 사람 중 하나다. 텔레비전에서 농촌의 빈 집을 수리하여 별장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그램인 "세컨하우스 (2023년 KBS2 TV 방영)"를 보며 나도 별장을 한 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별장을 마련하고 싶지만, 태백은 수도권에서 차량으로 꼬박 4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에 있어서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2022년 12월 10일 한겨레신문
한땐 '화양연화'였던 막장의 삶… 검은 탄광 떠날 수 없는 광부들

  태백은 강원도에서도 특히 광업이 융성했던 지역이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광산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광산이 많았고, 자연히 광부들을 비롯한 인구가 늘어 지역 경제가 번성했다. 1987년의 태백시 인구는 120,208명으로, 결코 규모가 작은 지역이 아니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G-DRAGON의 "삐딱하게" 가사 中


그러나 이러한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6년부터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은 태백뿐만 아니라 광업으로 먹고사는 강원도 대부분의 지역들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에너지원의 변화는 시대 변화 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국민 소득이 증가하는데 언제까지나 검은 가루를 폴폴 날리는 연탄을 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산화탄소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거나 장애를 입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문제는 에너지 정책의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기는커녕 매우 급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연착륙에 실패한 정부 정책은 결국 광업 전체의 몰락을 불러왔다. 태백시에서는 1989년 한 해에만 15개의 탄광이 문을 닫았으며 사람들은 떠나갔다.


 태백시의 인구는 빠른 속도로 줄어 2024년 4월 현재 38,272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마저도 감소세이다. 태백시는 전국의 시(市) 중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이며 앞으로도 줄어들 일만 남았다. 강원도에서 인구 감소로 제일 먼저 자연소멸을 맞을 지역이 태백이 될지도 모른다.


태백시 동점동 "동점마을"에 위치한 동점초등학교의 정보 (2024년 7월 기준)
2024년 동점초등학교 재학생 현황

 지방 소멸 문제의 심각함은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겠지만, 이 표를 보면 지방 소멸이 이제 현실의 문제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동점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재학생 단 세 명! 초등학교 재학생은 전 학년 통틀어서 16명! 심지어 1학년은 학생이 없음!!


 앞으로 한 20년 정도 있으면 아마 대한민국 행정구역 중 "한 명도 살지 않는" 지역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동점아파트는 태백의 석탄 산업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1986년 12월에 준공되었다. 36년 전 강원탄광의 광부들과 그 가족들은 부푼 꿈을 가득 안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했을 것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7/0000491110?sid=102

2014년 1월 23일 강원일보 
[태백] 동점아파트 300세대 전량 경매로
세입자 보증금 채권 확보 유찰 시 직접 낙찰 나설 듯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광산 운영이 어려워져 1993년부터는 소유 주체가 여러 번 바뀌었고, 결국 2014년에 아파트 단지 300세대가 통째로 경매에 부쳐지고 말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7/0000629744?sid=102

 그런데 2016년에 난 위 뉴스 기사가 상당히 흥미롭다.

2016년 9월 19일 강원일보
... 강원탄광 사원 아파트였던 태백시 동점동 동점아파트가 서민형 별장 아파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아파트관리소에 따르면 1986년 건축된 동점아파트는 30년이 넘은 전용 면적 39.72㎡짜리 아파트로 1채당 거래가가 1,200만~2,000만 원으로 저렴하다.

또 동점아파트는 아파트 단지 앞 철암천에 버들치 등 1 급수에만 서식하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살고 있는 등 청정 환경을 자랑하며, 백두대간 협곡열차와 중부내륙 관광열차 정차역인 철암역으로부터 자동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해 교통도 편리하다.


 모든 세대가 경매에 부쳐져 자칫 폐 아파트 단지가 될 뻔한 아파트가 뜬금없이 별장이라니? 우선 이 14평짜리 주공아파트의 최근 거래 가격을 알아보자.


출처 호갱노노


 무려 990만 원부터 2450만 원까지 거래되었다. 990만 원은 꼭대기 층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략 1,500만 원 정도,  평당으로 따지면 107만 원 정도에 집을 한 채 살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절대! 영원히! 재건축이 될 일은 없지만 대지지분은 세대 당 16평 정도 나온다고 한다. 1,500만 원에 태백에 16평 땅을 사는 격이다.


 땅을 평당 107만 원에 구입한다고 생각해 보면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땅을 샀는데 아파트가 덤으로 따라온다고?


 이 아파트의 주변 환경을 알아보자.

강원도 두메산골

 전체적으로 보면 강원도 두메산골 한가운데 아파트가 파묻혀 있는 형상이다. 동점아파트에서 태백 시가지까지는 차량으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대중교통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의외로 영동선 철도가 가까이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동점역은 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위쪽의 철암역에는 영동선 무궁화호가 하루 8회 (상행 4회, 하행 4회), 누리로 전동차로 운영하는 동해산타열차가 하루 2회 (상행 1회, 하행 1회), 관광열차인 백두대간협곡열차가 수~일요일에만 하루 2회 (상행 1회, 하행 1회) 정차한다.


2023년 8월 기준 철암역 열차 운행 시간표
배산임수의 명당(?)

 지도를 더 확대해 보면 아파트 위쪽으로는 동점 마을이 있고, 초등학교도 그 동네에 있다. 아파트 앞으로는 강이 흐른다. 이 지역 일대는 이름도 유명한 "태백 구문소"로, 고생대의 지층을 그대로 간직하여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최신 로드뷰 사진 (네이버 로드뷰 2024년 5월 기준)을 보며 아파트 주변 탐구를 이어가자.

산이 아파트 단지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동점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 "동점교"가 있으며, 다리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건너편 산을 깎아 만든 철길로는 기차가 다닌다.
단지내 상가의 모습이다. 유이한 편의시설 중 하나인 "동점마트"가 있다.
또 다른 편의시설은 다름 아닌 공중전화 두 대. 저 KT 로고만 한국통신으로 바꾸면 90년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떠난 아파트가 아님을 증명하듯, 경로당이 있고, 부녀회가 있으며, 관리사무소가 있다.
외관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저층 주공아파트의 모습이다.
단지는 널찍널찍하다. 주차 공간 뿐만 아니라 녹지 공간도 넓고, 나무들도 수령이 오래되어 키가 크다.
차들도 꽤 주차되어있다. 로드뷰로 둘러보면 벤츠 등 고급차가 가끔 보인다.
다만 관리 상태는 그닥 좋지 못해, 유리창이 통째로 사라진 빈 집이 군데군데 있다. 5층 세대는 아마 누수로 인해 거주가 힘들 듯 하다.
담벼락에 붙은 "경로무료급식" 안내. 노인분들이 많이 거주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https://blog.naver.com/leio5210/222523041911 

네이버에 아파트 이름을 검색해 보니 최근에 누군가 별장으로 쓰려고 하는지 올 리모델링 수리를 했다는 글이 보인다. 내부는 14평 치고는 꽤 넓어 보인다.


 네이버 부동산을 보며 아파트 단지 정보와 시세, 그리고 매물 정보를 살펴보자.


 아파트가 외진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가스가 공급된다니 놀랍다. 노후 저층아파트에서 1층이 선호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1층 2,000만 원은 나쁘지 않은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5년 간의 매매 가격이다. 매매 거래가 700만 원에서 2500만 원에 이르기까지 넓은 가격 폭에서 일어나고 있고, 거래량도 많기 때문에 실거래가를 나타내는 빨간 점들이 무질서하게 찍혀있는 모습이다.



 누가 강원도 두메산골 한가운데까지 들어와 전세를 들어오나 싶기도 하지만? 전세 거래 이력도 있다. 최근 전세 거래 내역은 2022년 11월 9일, 1층이 1000만 원에 거래되었다.

 또, 전혀 월세 거래가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월세 거래 이력도 있다.



 2000만 원에 매수하여 300/12에 월세를 놓는다고 가정하자. 월세만으로 집 값을 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8년 정도인 것으로 계산된다. 월세 수익률은 나쁘지 않다. 물론 인구 자체가 적다 보니 계약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박월산 (917m), 연화산 (1053.5m), 삼방산 (1176.6m), 면산 (1246.2m)으로 둘러싸여있다.

...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문정희 시인의 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 中

 태백산맥 주변 지역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하다. 눈이 많이 오면 시(詩) <한계령을 위한 연가>의 내용처럼 "눈부신 고립"에 기꺼이 묶여서 설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처럼 전원생활은 즐기고 싶은데 도시가스와 전기는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태백 동점아파트는 별장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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