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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troBoyKorea Aug 08. 2024

쇠락한 부촌에서 고층 주상복합으로, 남천 삼익비치아파트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원조 부촌 남천동의 부활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항구도시 부산.

 탁 트인 푸른빛 바다와 광활한 모래사장, 그리고 그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기다란 광안대교가 자랑인 광안리 해수욕장 오른편 바닷가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 , 파란색 지붕의 오래된 거대한 고층아파트 단지가 있다.


 1979년 10월에 지어진 남천 삼익비치아파트다. 요즘 기준으로도 대단지인 33개 동 3,060세대의 남다른 규모를 자랑하며 웅장히 서 있는 이 아파트는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한다. 아파트가 바닷가에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까닭은, 아파트가 앉아있는 네모 반듯한 땅이 바다를 매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 수영구 삼익비치타운 아파트. 출처: 국제신문 DB
 1978년 11월 10일 조선일보, 釜山(부산) 廣安里海邊 (광안리해변) 옆
 *坪当(평당) 約 (약) 59 万(만) 余(여) 원* 三益 (삼익) 비치타운 分讓 (분양)!

  삼익주택은 "삼익비치타운" 외에도 일대에 "삼익기존아파트 (1976년 준공, 남천 코오롱하늘채 골든비치로 재건축)", "삼익빌라아파트 (1978년 준공, 남천 금호어울림 더 비치로 재건축)", "삼익타워아파트 (1978년 준공, 남천자이로 재건축)", "뉴비치아파트 (1986년 준공)"를 지어 일대를 "삼익타운"으로 만들었다.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가 연달아 들어선 1980년대 남천동은 그 위상이 대단했을 것 같다.


2004년 2월 (좌)과 2023년 5월 (우) 남천동 위성사진, 삼익비치아파트와 뉴비치아파트를 제외한 모든 삼익아파트 단지가 재건축이 완료되었다. 구글어스 위성사진 캡처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의 개념조차 없었던 시대에 삼익비치아파트 단지 내에는 실외/실내 수영장, 골프 연습장, 피트니스 클럽 등 시설을 갖춘 "삼익스포츠센터"가 같이 들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아래 사진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 기준으로도 실외 수영장과 대형 미끄럼틀은 파격적이다.

준공 당시 삼익비치아파트와 삼익스포츠센터

 다만 스포츠센터는 2005년 1월까지 운영하다가 폐업했는데, 현재까지도 폐건물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 흠이다.


[날라-리] 아이들 웃음이 사라진 그곳엔…광안리 삼익비치 폐수영장 : 네이버 포스트 (naver.com)

https://naver.me/Ixsvzu4y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변호인.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송우석 (송강호 분)이 젊은 시절 막노동을 하며 직접 지었던 아파트를 변호사로 성공한 후 웃돈을 주고 사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려운 시절 "절대 포기하지 말자!"라고 의지를 다지며 시멘트에 글귀를 새겼던 바로 그 집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공사장이 바로 남천 삼익비치아파트에서 따온 설정인데,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1988년까지 이 아파트 203동 1105호 (48평형)에서 거주했었다고 한다.

https://youtu.be/4ZIBPiAkNdQ?si=mq69nIyOKiUr1ftK

"변호인 아파트 구매신 감동장면", 출처 : 유튜브 "냥무비"
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 포스터
절대 포기하지 말자!

 마찬가지로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범죄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당시 부촌인 남천동의 위상을 짐작할 법한 부분이 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같이 밥 묵고 싸우나도 같이 가고, 마 다했으"

 비리 세관원 최익현 (최민식 분)이 형사의 뺨을 때리며 하는 대사가 압권이다. 아무튼 당시 남천동은 경찰서장이 살았을 정도의 원조 부촌이었던 것이다.


 ... 그랬던 남천동이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어 1990년대 이후에는 해운대, 마린시티, 센텀시티 등 새로 개발되는 지역들에 부촌의 지위를 넘겨주게 되었다. 일대의 "삼익"아파트가 하나둘씩 재건축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삼익비치아파트 또한 재건축 절차를 밟게 되었다.


 삼익비치아파트의 별명이 "부산판 은마아파트"이다. 은마아파트처럼 규모가 크고,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급 아파트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재건축 진척이 느리다는 웃지 못할 사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남천동 삼익비치아파트는 올해로 19년째 재건축 추진 중이다. 상세한 타임라인은 아래와 같다.


2005년 10월 301동 단독 리모델링 시도, 경남기업 시공사 선정했으나 여러 문제로 무산

2005년 12월 재건축 추진위원회 승인

(9년 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인가)

2014년 5월 정비구역 지정

2016년 7월 조합설립인가

2016년 12월 시공사로 GS건설 선정

2017년 6월 시공사의 금품제공 의혹 제기로 시공사 선정 무효 소송 개시

2018년 8월 GS건설 시공사 지위 유지 법원 판결

2022년 9월 사업시행인가

2023년 초 조합원 분양 신청, 조합원 분담금 발표

기존 34평형 보유자가 신축 34평 분양 시 "6억 8000여만 원"의 분담금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발표되어 논란

2023년 4월 설계업체 변경 관련 법적 분쟁 있었으나 법원 판결로 일단락

2023년 6월 재건축 정산 방식 관련, 상가 소유주들과 분쟁 중

2023년 9월 조합장 뇌물수수혐의로 고발, 수사 진행 중

[단독] '분담금 7억 내라'…날벼락 맞은 부산 재건축 대장주 | 서울경제 (sedaily.com)

 우여곡절 끝에 사업시행인가까지는 얻어냈지만, 건설 원자재 (원유, 유연탄, 철스크랩, 시멘트 등) 가격 인상으로 인해 공사비가 많이 올라 분담금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게다가 예정된 일반분양 물량도 적기 때문에 재건축 사업성이 좋지 않아 앞으로 갈 길이 더욱 험난하다.

"그랑자이 더 비치" 재건축 예상 조감도와 재건축 전 후 비교

 2022년 4월 30일 방문한 남천 삼익비치 아파트.

 

바닷가와 매우 가까이 붙어 있으며, 오래된 세월만큼 나무도 울창하다. 방문했을 때는 벚꽃이 이미 다 진 시점이라 아쉽다.
어느 동 지상 철문에 철 가닥으로 만든 삼익 로고가 인상적이다. 일부 세대는 바닷가 쪽으로 거실이 나 있다. 일렬로 늘어선 색색깔 지붕 아파트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301동 꼭대기 층 복도와 광안대교 조망
301동 꼭대기에서 바라본 광안리 해수욕장 뷰

 아파트는 오래되었지만 연식에 비해 잘 관리되고 있었으며, 단지 내부의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탁 트인 바다 조망은 아파트의 특이한 인상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이런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독특하고 예쁜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히 지속될 줄만 알았던 것들은 결국 언젠가는 시간의 흐름을 이기고 사라지고 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사라질 운명인 대상을 그나마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진을 찍은 지 2년이 지났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남천 삼익비치아파트는 건재하다. 아파트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부산에 다시 들러 단지 구석구석을 자세히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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