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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troBoyKorea Aug 02. 2024

한보그룹의 찬란한 유산,
대치동 은마아파트

회사는 사라져도 공간과 이야기는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파트 단지는 어디일까? 압구정 현대아파트? 대치동 타워팰리스?


 이들과 함께 꼭 언급되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다. 단언컨대 전국에 이 아파트 이름 못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택은행 간판과 주차된 차들로 미루어 보아, 사진이 찍힌 시점은 1990년대 중반이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본래 이름은 한보은마아파트이다. 한보? 한보라고? 그렇다. 은마아파트를 지은 회사가 바로 연쇄부도의 첫 주자로서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서막을 알린 한보그룹의 주택사업부문이다.


한보그룹 (1974~1997)

 한보그룹을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몇 개 있다.

"IMF 외환 위기의 서막을 알린 회사", 또 하나는 "점(占)으로 흥해서 점으로 망한 회사"


IMF 외환 위기의 서막을 알린 회사


1997년 1월 24일 동아일보 1면 "한보철강 不渡 (부도)"


한보철강 不渡 (부도)
母(모) 기업 (주)한보도... 全(전) 계열사 확산 예상
鄭泰守(정태수)씨 어젯밤 경영권 포기 의사

 1996년 말 한일은행에서 160억 원의 긴급 대출을 받으며 휘청거렸던 한보철강은 결국 1997년 1월 23일 부도 처리되고 말았다. 한보그룹은 철강 사업 개시를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벌여 약 5조 7000억 원의 불법 대출을 받았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과 횡령으로 인해 결국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었고, 한보철강은 도산하고 만다.


  한보철강의 부도는 한보그룹의 전 계열사에 영향을 끼쳐 결국 재계 서열 14위였던 그룹 자체가 도산해버리고 만다. 천문학적인 빚을 떠안고 망해버린 대기업, 그리고 대금을 받지 못해 한보와 함께 도산해 버린 수많은 중소기업들, 그리고 결국 부도나버린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투입한 엄청난 공적 자금 낭비까지.. 1997년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으며 흉흉하게 새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점(占)으로 흥해서 점으로 망한 회사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1923~2018)

  한보그룹의 총수였던 정태수, 그는 원래 세무공무원이었다. 본명은 '정태준'이었으나 역술인의 조언을 듣고 '정태수'로 개명했다. 어쨌든 그는 평소에도 역술 혹은 점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1969년 가을, 정태수는 점쟁이 '백운학 (1921~1979)'를 찾아간다. 백운학은 당시의 유명한 역술인으로, '박정희 정권의 2인자' 김종필의 증언에 따르면 1961년 "5.16 군사 정변"의 성공을 맞추었고, 또 박정희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예언 ("정권이 한 20년 갈 것, 그러나 박 대통령이 말년에 흉하게 돌아가실 것")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백운학은 1969년 가을, 정태수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


 흙. 흙이라. 땅과 관련된 사업을 하라는 이야기일까. 정태수는 이 말을 듣고 등산을 다니다가 몰리브데넘 광산을 발견하고, 수백 배의 차익을 남겨 판 다음 그 돈으로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재벌 한보그룹은 이렇게 시작했다.


흙과 관련된 사업


  흙과 관련된 사업이 광산업 말고도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땅 투자. 다시 말해 부동산 투자다. 정태수는 쓸모없어 보이는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고, 아파트를 분양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여기서 독특하다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는 자금조달 방식을 사용했다.


 한보의 자금조달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방법 하나였다.

1. 사업 계획을 세워 돈을 빌린다.

2. 빌린 돈으로 사업을 한다.

3. 사업이 성공한다.

4. 빌린 돈을 갚고 이익을 낸다.

 

 성공하면 대박 성공하지만 실패하면 크게 망하는 방법.. 이른바 "하이 리스크 (High Risk, 고위험) 하이 리턴 (High Return, 고수익)"이다. 어쨌든 한보는 초기에 이러한 방식이 크게 성공해서 대재벌로 거듭날 수 있었다.


황무지에 은마아파트를 건설


 대치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영원한 재건축 유망주 은마아파트. 강남은 원래 논밭이 있던 땅이고, 지대가 낮아 큰 비가 오면 지금도 땅이 잘 잠긴다. 은마아파트가 위치한 땅은 양재천 변의 땅으로 옛날에도 특히 저습지 (지대가 낮고 습한 땅)이라 농사도 못 짓는 "쓸모없는 땅" 이였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남 개발". 공무원이었던 정태수는 아마 주변 인맥을 통해서라도 강남 개발 계획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막대한 자금을 빌려 강남의 황무지에 은마아파트를 짓기 시작한다.


1978년 7월 31일 동아일보 7면에 실린 "영동 銀馬(은마) 아파트 타운" 분양 광고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히 대규모인 "28동 4424세대" 규모로 건설된 "은마아파트타운". 지금이야 1만 세대가 넘어가는 헬리오시티 같은 아파트 단지들이 생겼지만 70년대에 4424세대의 규모는 상상이 힘들 정도의 "매머드급 아파트 타운" 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은마아파트에 모든 것을 "올인 (All-IN)"한 정태수의 한보, 역시 강남이 장차 서울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벌이지 않았을까.


1979년 준공 당시 은마아파트 항공 사진


 그러나 대규모의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늘 생기는 법. 1977년에 일어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으로 부동산 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1978년 6월 30일 동아일보 1면에 실린 "民間(민간) 아파아트 特惠(특혜) 분양 - 高級公務員(고급공무원)등 220명 索出(색출)"


 뒤이어 1978년 하반기 이른바 "8.8 부동산 대책" 이 발표되어 부동산 경기는 급격히 냉각된다. 이 당시 부동산 규제를 정리한 블로그 글이 있어 첨부한다.


[독서챌린지] 주택시장 30년 파노라마 (70년..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8.8 부동산 대책의 규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양도세 기본 세율 50%, 미등기 전매 시 100%

2. 2년 이내 거래 시 양도세율 70%

3. 토지 거래 허가제, 신고제 도입

4. 소개업 (중개업소) 신고제

5. 인감증명 유효 기간을 3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

1978년 3월 29일 매일경제 3면 "不動産(부동산) 투기 규제 法制化(법제화)"


 프리미엄에도 취득세를 매긴다고?

미등기 전매 (= 분양권 전매)의 양도세율을 100%로 매겨버리는 무시무시한 규제 직격탄을 맞고 신규 주택 시장은 빠르게 식어갔다. 이때 한창 분양 중이던 한보로서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대로라면 한보는 4424세대의 대단지 미분양 물량을 떠안고 장렬히 전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망하라는 법은 없었나 보다. 흙을 만지면 성공한다는 점쟁이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다.

1979년 7월 11일 동아일보 1면 "오일쇼크... 景氣沈滯(경기침체) 가속"

 1979년 발생한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해 안전자산인 부동산의 인기가 높아졌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이 각광받는 법이다. 하여튼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게 된 한보는 은마아파트 4424세대를 모두 분양하는 데 성공하고, 당시 돈으로 2000억 원을 "현찰"로 손에 쥐어 대재벌의 반열에 오른다.


 정태수는 이렇게 한보그룹의 기틀을 세운 은마아파트에 각별한 애착을 가졌다. 한보그룹의 본사는 은마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자리를 잡아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존속하였고, 옥상의 대형 광고판은 2006년 까지도 남아있다가 상가가 외국계 자본에 경매로 낙찰되어 없어졌다.

은마상가 옥상 韓寶(한보) 광고판


1979년 12월 4일 매일경제 1면 광고 "국내 최대의 위용과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는 은마타운 입주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광고에도 나와있다시피 1979년 은마아파트의 분양가는 평당 68만 원이었다. 2023년 현재 은마아파트의 최저가 매물 가격은 31평 22억 원, 평당 7164만 원이다. 은마아파트의 가격은 지난 45년간 약 105배 이상 뛴 것이다. 대충 계산을 해보면, 당시 은마아파트 34평의 분양 가격은 2,312만 원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은마아파트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잘 와닿지 않으니 다른 아파트와 비교를 해보자. 필자가 살고 있는 도시 인천에 은마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있다. 인천 중구 신흥동에 위치한 삼익아파트가 그것으로, 1979년 5월에 준공하여 은마아파트 (1979년 8월 준공)와는 3개월의 차이가 난다.

1978년 7월 11일 조선일보 7면 광고 "仁川(인천) 初有(초유)의 高層(고층) 딜럭스맨션. 仁川(인천) 新興洞(신흥동) 三益(삼익)맨션 분양"

 위 광고를 통해 파악할 수 있듯, 신흥동 "삼익맨션"은 인천에서 처음 지어진 "초유의" "고층" 아파트이다. 물론 세대수는 은마아파트에 비하면 적지만, 70년대 당시에는 부자들만 사는 아파트였다고 한다.


 "신흥동 삼익아파트" 35평의 분양가는 1,949만 원이었다. 은마아파트와 신흥동 삼익아파트의 분양가 차이는 363만 원에 불과했다. 지금 신흥동 삼익아파트 35평형의 최저가는 1억 9000만 원 (평당 548만 원), 은마아파트 34평의 최저가는 24억 8000만 원 (평당 7096만 원)이다. 가격 차이는 22억 9000만 원, 가격 비교 시 약 13배 차이가 난다.


한보와 은마의 엇갈린 운명

1997년 한보 당진 제철소 (現 현대제철 당진 제철소) 전경.
당신은 쇠(金)를 만져야 큰돈을 번다


한보사태 이후 세간에 돌았던 풍문, 정태수가 점쟁이의 이 조언을 듣고 제철 산업을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한보그룹은 한보철강을 비롯한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1997년 부도를 맞았다. 그 후 한보 정태수 총회장은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 등 여러 유력 인물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 수감되었으나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 해외로 도주한다. 정태수 전 총회장은 키르기스스탄, 에콰도르 등을 전전하다가 2018년 향년 95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난다.


 그가 세상을 떠났어도 그에게 선고된 체납세액은 자손들에게 그대로 남겨진다. 정태수의 4남인 정한근 (1965~) 전 한보 금융소그룹 회장은 주식매각자금 322억 원을 빼돌리고 253억 원의 국세를 체납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1998년 6월 잠적했다. 그는 21년간의 도피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9년 6월에 파나마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되었다.

경찰에 붙잡혀 포토라인에 선, 정태수의 4남 정한근 씨.

정한근 씨에 대해 법원은 2021년 5월 13일 징역 7년 형과 추징금 401억 원을 선고했고, 형이 확정되어 정 씨는 구속 수감 중이다. 한보사태 이후 24년 만에 책임 있는 사람이 처벌을 받음으로써 한보의 망령은 역사 너머로 퇴장하게 되었다.


 한편, 1979년 지어진 은마아파트는 지어진지 고작 17년이 지난 1996년부터 재건축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204%"라는 높은 용적률로 인한 낮은 사업성과, 여러 이권 단체의 다툼이 얽혀 사업이 지연되어 왔다. 그러다가 2023년 8월 19일, 재건축 추진 시작 27년 만에 재건축 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銀馬 (은마) 한자 표기가 복도식 아파트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인터넷에서는 은마아파트의 "느려도 너무 느린" 재건축 추진 속도를 비틀어, "100년 뒤의 강남구 모습"이라는 사진이 돌아다니기에 이르렀다. 주변에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섰지만 그 가운데 은마아파트만 낡은 모습으로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100년 뒤 강남구 모습

은마아파트의 재건축 추진 경과는 다음과 같다.


1996. 재건축 추진 시작

2001. 재건축 추진 위원회 구성

2002. 삼성물산-LG건설 (現 GS건설) 컨소시엄 시공사 선정

2002. 재건축 안전진단 탈락

2003. 주거 정비법에 의한 재건축 추진 위원회 승인

2004. 소형 및 임대주택 의무 비율,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 등 규제로 재건축 난항

2005. 일부 주민들이 리모델링 추진했으나 무산

2006. 서울시, 단지 내 관통하는 15m 도로 계획 입안, 수익성 약화

2010. 재건축 안전진단 조건부 통과

2015. 협상 끝에 단지 내 15m 관통 도로 계획 무산

2016. 재건축 설계안 확정

2017. 49층 재건축 안이 서울시 반대로 무산

2017. LTV, DTI 강화가 골자인 문재인 정부 부동산 규제 발표

2017. 49층 재건축 안 폐기, 35층 재건축 안으로 선회

2020. 35층 재건축 안을 밀어붙이던 박원순 서울 시장 극단적 선택

2020. 정부의 공공 재건축 안을 은마아파트 측에서 거부

2021. 안전진단 결과 붕괴 위험 있는 것으로 밝혀짐

2022. 재건축 안 서울시 재건축 심의 통과 (최고 35층, 33개 동, 5,778세대(공공주택 678세대)로 재건축)

2023. 정비 구역 지정

2023. 30년 만에 아파트 외벽, 옥상 방수 도색

2023. 은마아파트 재건축 조합 설립 (8월)


 그동안 은마아파트는 재건축을 위해 아파트 단지 유지보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심하게 노후된 외관, 좁은 주차 공간 등 열악한 주거 환경이 수면 위로 떠올라 여러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30년 동안 도색을 하지 않아 심하게 노후된 은마아파트 외관.

 이쯤 되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아직도 이런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제 오랜 시행착오를 다 지나고 재건축 조합까지 설립된 만큼, 은마아파트가 서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2023년 12월 27일

만년필 수리를 위해 강남 삼성동을 찾았다가, 근처에 있는 은마아파트를 방문했다. 은마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은마상가에 있는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귀가했다.


최근에 도색 작업을 하여 겉은 굉장히 깨끗하다.
주차 공간이 상당히 부족해 대낮인데도 이중주차가 많았다.
한때는 검은 매연을 내뿜었을 우람한 난방용 굴뚝
23동 9층 복도. 바닥의 누런 타일이 아파트의 연식을 말해준다.
단지 정문의 시계탑. 요즘 아파트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구조물이다.
은마 상가는 꽤나 규모가 크다.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수준이 아니다. 마치 던전 같이 복잡하다.

 2023년 12월 기준 은마아파트 31평의 시세는 매매 23억 원, 전세 5억 원가량이다. 매매가 대비 25%도 되지 않는 전세가를 보면, 주거 환경이 꽤나 열악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겉은 칠을 새로 해서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단지 내에 주차된 차들은 서울 강남임에도 불구하고 수입차가 많지 않았다. 아마 대치동 학원가를 보고 은마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온 입주민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은마아파트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현대 대한민국의 단면을 가장 잘 나타내는 아파트 단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부동산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다. 은마아파트는 1970년대 고도개발기 강남 개발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현재는 전국 재건축 유망주 1순위 아파트이다. 각종 부동산 뉴스에서 시세 변동의 기준으로 삼는 아파트가 대치동 은마아파트이다. 처음 지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부동산 개발과 관련한 각종 이슈를 몰고 다닌다는 점에서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학원 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고, 입시에 목숨을 거는 나라는 드물다. 전국에서 가장 학원이 밀집한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은마아파트. 학부모들은 대치동에서 최고의 사교육을 받아 좋은 성적을 낼 자식들을 기대하며 기꺼이 준공 50년을 바라보는 낡은 아파트에 입주한다. 맹모삼천지교라고 했던가.



 이처럼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만들어갈 아파트는 아마 은마아파트가 유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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