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troBoyKorea Aug 16. 2024

폐광에도 봄은 오는가,
태백 한보광업소와 한보사택

폐광 지역의 현주소와 재활성화 방안 모색

  앞선 글 "한보그룹의 찬란한 유산,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다루었듯, 한보그룹은 건설뿐만 아니라 철강, 제약 등 여러 사업으로 확장하며 계열사를 주력 소그룹, 목재 소그룹, 금융 소그룹, 제약 소그룹으로 나누어 정태수 총회장의 아들들이 소그룹 회장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주력 소그룹에 속했던 "한보에너지"의 석탄사업부문은 강원도 태백시의 통보광업소 (한보탄광)를 운영했다. 그룹 부도 이후 한보탄광은 2004년 태안광업 (태안디앤아이)에 인수되었다가 2008년 최종 폐광되었다.



 광산업과 함께한 태백시의 화양연화 (花樣年華,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는 역시 앞선 글 "광산과 함께한 흥망성쇠, 태백 동점아파트"에서 다루었다. 석탄 산업의 몰락으로 광산이 하나 둘 폐쇄되고 근로자들이 태백을 떠나자 이들 가족이 함께 살던 사택(社宅)은 비워지고 방치되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2634720?sid=102

강원 태백시 황연동 태안광업 한보광업소가 문을 닫아 광산근로자들이 한 명
두 명 떠나고 있는 가운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발걸음도
무거워 보이고 있다. 올해 (2008년) 7월부터 무연탄 생산을 중단한 한보광업소는 당시 470여 근로자가 근무했었다.


 한보에너지는 탄광 근로자들을 위해 4개의 사택 단지를 조성했다. 1단지부터 5단지까지의 사택이 있었고, 이 중 4단지는 4자 금기 때문인지 존재하지 않는다. 폐광 이후 "한보 3단지"와 "한보 5단지"는 건물 수리 및 리모델링 후 민간에 분양되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2307034?sid=101

... 분양가는 2900만~3100만 원이다... 분양 관계자는 "옛 사원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분양해 분양가가 시세의 60% 선"이라고 말했다.

 "신개념 별장아파트"라는 타이틀을 달고 분양에 나섰는데, 산으로 둘러싸여 공기가 맑은 강원도 태백의 세컨드 하우스를 갈망하는 수요가 있었는지 분양에는 성공한 것 같다. 애초에 분양가가 저렴한 편이기도 했고...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한보3단지 사택 (좌, 2008년 11월) 리모델링 후 민간에 분양된 하나연립 (구 한보3단지) (우, 2021년 3월)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보에너지를 인수한 태안디앤아이는 사택을 민간에 분양하면서, 폐광 부지에 허브 테마 파크 등을 짓는 "태백내추럴월드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홍보했으나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05327684?sid=102

강원 태백시 폐광시설에 허브테마리조트를 조성할 것처럼 기만해 폐광사택을 비싸게 분양했다며 사택 입주자들이 집단으로 분양업체를 검찰에 고소했다.

20일 한보사택 입주피해주민 최모(서울)씨 등 36명은 한보 3단지와 5단지 사택 540세대를 허위 사실로 분양해 피해를 입었다며 태안 DNI에 대해 사기혐의로 춘천지검 영월지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지난 2009년 태백시 황연동 한보탄광 폐광시설에 허브를 테마로 한 대규모 리조트단지를 조성하겠다는 ‘태백내추럴월드사업’은 한보사택 분양촉진을 위한 기만행위라고 주장했다.

                                        

 고소 이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태백내추럴월드사업"은 여전히 진행되지 않았고, 아파트를 분양한 태안디앤아이 또한 회사 운영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한보사택을 모두 팔아버리고 회사가 문을 닫은 것으로 보인다.


모두 같은 위치에서 촬영. 1994년 탄광이 건재하던 시절의 한보2단지 (좌), 2010년 폐가 상태로 방치중인 한보2단지 (중), 2015년 철거후 방치 중인 해당 부지 (우)


 한보연립주택이라고도 불리던 한보 2단지 사택은, 폐가 상태로 그대로 방치되다가 경기도 안양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우일학원이 연수원을 짓겠다며 부지를 54억 원에 매입했다. 그러나 해당 토지를 시세보다 4배 비싸게 매입했다는 논란과 함께, 천연 비누와 화장품을 제조하겠다는 "태백내추럴월드"와의 산학 협력 계획이 흐지부지되며 현재는 건물만 철거된 채 부지가 방치되고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04609637?sid=102

안양대는 54억 원에 태안 D&I에서 매입한 뒤 폐광사택 등의 철거를 거쳐 240억 원을 들여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연수원과 숙박시설 및 피트니스, 스파와 테라피, 사우나 시설을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태백연수원에는 천연비누와 화장품을 제조하는 태백내추럴월드와 산학연계를 통한 상호 보완을 추진키로 하고 안양대 김승태 총장은 지난해 6월 최문순 강원지사에게 태백연수원 건립사업의 협조를 요청했다.

... 그러나 태백연수원 건립사업은 안양대 내부에서 한보 2단지 부지매입이 지나치게 비싸게 매입해 학교에 손해를 끼쳤다며 교육과학부 진정을 하면서 연수원건립사업은 진전되지 못한 채 사실상 표류하는 상태다.

                                                              
 민간에 불하되거나 철거되어 부지가 매각된 2,3,5단지 사택과 달리, 지어질 때부터 국유지 위에 사용 허가를 받고 지어진 한보 1단지 사택은 현재도 폐건물 상태로 적나라하게 방치되고 있다. 당장 철거를 해야 할 정도로 건물이 "바스러지고" 있지만, 건물을 담보로 채권이 설정되어 있어 철거하기도 곤란하다고 한다.


폐허 사이 공터에는 주민들이 텃밭을 일궈 작물을 심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996424?sid=102

그러나 폐가로 전락한 한보 1단지는 사양화한 석탄산업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통보광업소는 1982년 문을 열었고, 한보 1단지는 1983년 8개 동 144 가구로 지어졌다. 한보 1단지는 당시 보기 드문 아파트형 사택이었고, 이는 '검은 노다지' 석탄이 가져온 풍요를 상징했다.

광산이 폐광하면 광산피해의 방지 및 복구에 관한 법률(광산피해방지법)에 따라 광부사택 등 광산 관련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 하지만 한보 1단지는 채권 문제로 철거하지 못하고 있다.


 폐허가 된 사택뿐만 아니라 태백 곳곳에는 폐광의 흔적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방치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대한석탄공사 태백 장성광업소의 폐광을 끝으로 태백의 모든 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내년 6월 폐광이 예정된 삼척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게 되면 대한민국에 대한석탄공사 소유의 광업소는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2/0002054643?sid=102

 태백 지역의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지만,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리적 인구 저지선인 5만 명 선이 무너진 지는 오래되었고, 폐광 부지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폐광 부지 개발 이야기는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개발된 곳은 일부일 뿐이다. 그나마 개발된 곳이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쓰인 옛 한보탄광 자리를 테마파크로 개발한 "통리탄탄파크"다.

통리탄탄파크 (tantanpark.com)

 그마저도 지역에서 체계적으로 (교통, 숙박에서 관광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으로) 운영하지 못하고, 관련 홍보도 부족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마파크의 존재조차 모른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6/0011636874

 강원도 곳곳에 폐광으로 인해 생겨나는 빈집이 많다. 당장 장성광업소의 폐광으로 기능을 잃은 석탄공사 소유의 사택만 태백에 6곳 (상철암아파트, 문곡아파트, 협심아파트, 계산아파트, 문화아파트, 석공간부사택)이다. 총 1760세대 중 1400세대는 사람이 살고 있고, 나머지는 빈 집인데 거주민 대부분은 한 달에 43,000원 월세를 내고 살고 있는 영세민들이다.


 태백시와 석탄공사는 이 사택 아파트들을 단계적으로 철거해 새 아파트를 짓고, 아파트 철거로 인해 발생하는 이주민들을 다른 사택 단지에 입주시키는 방법으로 (예를 들어, 문곡아파트를 철거해서 발생한 입주민을 상철암아파트 등 나머지 단지의 빈 집에 임시로 입주시키는 식) 이주 대책을 세우기는 했다.


그러나...


 어차피 전국적인 경기 침체와 건설/부동산 침체로 인해 태백산골짜기에 아파트를 헐고 재개발을 해 봤자 입주할 사람들이 없다. 지역 경제 기반이 이미 무너진 지 오래인데, 누가 태백까지 이사를 들어오겠는가.. 차라리 석탄공사 사택 아파트의 빈 집을 수리하여 시나 석탄공사에서 폐광 개발 관련 콘텐츠와 연계, 여행객 숙소로 제공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태백시나 석탄공사나 폐광 부지의 활성화에는 그다지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사견이지만 신 사업 유치니 뭐니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는 외국의 폐광 부지 개발 사례를 참고하여 태백을 관광도시로 만드는 것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연계해서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사택 아파트를 에어 비앤비 숙소 운영하듯 여행객 숙소로 운영하고, 폐허로 방치되고 있는 한보사택 1단지는 적절한 안전 조치 후에 공포 영화 촬영지나 사진 스폿, 또는 공포 체험 테마 파크로 운영해도 좋을 듯하다.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170503.22010204240

김해, 국내 첫 `탈출 테마파크` 추진 - 생림 마사터널 400m 리모델링 - 탈출게임장과 공포체험장 조성 - 시, 철도공단과 폐터널 매입협상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었던 용마랜드는 놀이공원 폐업 후 시설물을 그대로 남겨두어 뮤직비디오나 영화 촬영지, 촬영 스튜디오로 활용되고 있다.

 지방 소멸은 이미 눈앞에 다가온 문제이고, 지방 지자체의 존립 여부는 각자의 손에 달린 문제이다. 각 지자체는 지역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전 03화 광산과 함께한 흥망성쇠, 태백 동점아파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