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쓰레기집을 인식하다.

프롤로그

by 늘봄

청소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맨 처음 건드린 것은 큼직 큼직한 택배박스였다. 집 한쪽에 위험한 젠가를 하는 것처럼 비스듬하게 쌓여있던 택배박스를 하나하나 뜯어 가장 큰 박스 안에 정리했다. 가장 큰 박스로 2박스가 가득 찼다. 물을 마시고 나서 바닥에 던져둔 페트병도 하나하나 모아서 큰 비닐에 넣어놓았는데 김장비닐 4 봉투만큼 페트병이 나왔다.

우스운건 이만큼 청소하는데도 하루종일을 소비했다. 한시간도 안되어 끝날일을. 내가 굳게 마음먹었다 한들 온 몸과 머리가 무기력해지는 시간이 사라지는건 아니었다. 참 그럼에도 하긴 한걸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는지 제 몸 하나 컨트롤 하지 못하는걸 한심하게 여겨야 하는지.


박스와 페트병같은 큼직큼직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건 그나마 할 만했는데 자잘하게 굴러다니는 쓰레기들이 내가 첫 번째로 부딪힌 골칫거리였다. 그동안 큼직하고 나름 멀쩡한(?) 쓰레기였던 박스나 페트병 같은 쓰레기에 깔려서 보이지 않던 자잘한 부스러기, 먼지, 머리카락, 각종 얼룩들. 분명히 내가 만든 더러움이고 분명히 이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먹고 청소를 시작하니 공간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청소를 하면서 드디어 내 공간이 비위생적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레기집. 내가 쓰레기집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건 10대일적 kbs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인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문제가 있는 가정이나 지역으로 긴급출동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솔루션 프로그램이었다. 이후로도 다른 방송에서 종종 쓰레기집 관련 내용을 보여주고는 했는데, 이렇게 쓰레기집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면서도 내가 그들과 나를 철저하게 분리해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본 모든 쓰레기집의 사연자들은 어떤 심리적인 문제들에 의해서 저장강박증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외부에서 필요한 물품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빈틈없이 천장까지 쌓아두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쓰레기집과 나는 완전히 다르다고, 나는 그냥 청소를 지금 좀 무기력한거고 귀찮아하는 거고 싫어하는 거라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치울 수 있다고.


그런 내가 현실을 직시하게 된 건 유튜브 알고리즘이 정말 갑자기 안내한 어느 동영상 하나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에버랜드의 판다 푸바오나 무한도전, 1박 2일 재방송만 돌려보던 나에게 그 영상이 뜬 건지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 나이가 젊었고, 각종 잡동사니를 집에서 들고오지 않았다. 기존의 쓰레기집이 5060사이에서 많았다면 근래들어서 늘어나고 있는 쓰레기집의 주체와 특징은 2030연령대이며 저장강박증이 아니라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되면서 [청소를 하지 못해서] 쓰레기가 쌓인 집이라고. 그리고 쓰레기집에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함께 출연한 전문가의 자문내용들도, 그들이 말하는 모든 특징들이 바로 나였고 내 집이었다.


귀찮아서, 그냥 무기력해서 청소를 하지 않는 거라고.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데 딱히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안 하고 있는 거라고 쓰레기가 한가득 쌓였는데도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던 나. 그리고 나도 모르던 내 상태를 제삼자의 눈으로 확인하고, 전문가들이 언어로 정리해 전달해 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충격은 상당했다. 하루 밤을 꼬박 새 가면서 유튜브에 나와있는 쓰레기집과 관련한 동영상들을 찾아봤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집 상태는 나와 비슷했고, 정신과전문의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라고. 그리고 청소를 마음먹고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움직여도 어느 순간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던 나. 제자리에 오래도록 서있다가 움직인다는 게 결국 그 자리에 다시 앉아서 멍하니 그 쓰레기들을 바라보던 나. 결국 창밖이 어둑해지던 한 없이 무기력하던 내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동안은 귀찮아서, 무기력해서 하지 않은 거고 정상이라고 자위질 하던걸 멈춰야겠다고. 지금의 나는 비정상이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아프고 이상한 상태로 있을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억지로라도 변해야만 한다고 느끼며 내 주변의 쓰레기를 둘러보았다. 그때서야 나는 청소를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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