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집에서 사는 사람.

프롤로그

by 늘봄

수족냉증이 심한 나는 늘 겨울이 너무 힘겹다. 그다지 춥지도 않은 날씨에도 내 손과 발은 실내와 실외를 구분 짓지 않고 꽁꽁 얼어붙는다. 언젠가 너무 손이 차갑기에 체온계로 손의 체온을 측정해보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내 손의 체온은 오류코드가 떴다. 체온계는 너무 낮은 온도를 측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 두고 싶다. 여태까지 불편해도 이렇게 잘 살아왔는데..


너무 손과 발이 얼어붙어 그냥 다 에라 모르겠다고 내버려 두고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래도 꾹 참고 열심히 손과 발을 움직인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는 없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집을 보면 참 가관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페트병이나 내가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들이 한가득이다.


한때는 접시 위에서 너무도 맛있는 음식이었겠지만 지금은 접시 위도 아니라 방바닥에 머리카락과 뒤엉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조금 더 집안 꼴을 묘사해 보자면 널브러진 각종 택배박스와 포장지,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은 일회용 음식용기, 비닐봉지, 각종 과자봉투, 과자부스러기, 흘린 음료자국, 음식물쓰레기, 뭔지도 모를 자잘한 부스러기들, 옷걸이에 걸지도 않고 쓰레기 사이를 나뒹구는 옷 무더기... 그리고 나는 이런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면서 3년을 보냈다. 그래 정말 비위생적이고 정신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상하게도 청소를 시작하기 전의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쓰레기는 내 집에서는 굉장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배경이었다. 가끔 치워야 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뿐인.


아마도 내 친한 친구들은 내 이런 집구석 꼴을 본다면 절대 믿지 못할 거다. 앙심을 품은 원수에게 집이라도 빌려줬던 거냐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무인도에서도 살아남을 만큼 생활력이 굉장한 친구"로 통하기 때문이다. 나름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자기 관리를 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고 혼자 살면서 돈도 열심히 알뜰살뜰 모아 나이 서른 살에 내 부동산을 마련한 대견한 친구. 친구들 사이에서 그렇게 불리는 나지만, 아무도 모르는 나는 벌써 집 하나 청소를 하지 못해서 3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내 손으로 집을 더럽게 만들며 차마 청소 할 의지도 생각도 없이 먹으면 먹는 대로 옆에 쌓아두고, 그 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내리면 그때서야 가끔 쓰레기를 모아서 내다 버리던. 그럼에도 완벽하게 치우는 게 아니라서 집은 깨끗해질 날들이 없던 상태로. 필요한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쓰레기 사이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상태로 말이다.


나는 이렇게 비정상적인 쓰레기집을 천천히 청소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청소를 못하고 넘겼지만 그래도 못하겠다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저께에 이어 오늘은 청소했다. 한 달 동안 청소를 하지 못하고 넘어간 날이 절반이라면 뭔가 하나라도 치운 날들도 절반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겨울 땐 쓰레기 단 하나라도 쓰레기봉투에 옮겨 담고 청소했다고 정신승리 하기도 했다. 덕분에 거실은 변화가 보여 이제 제법 깔끔해졌다. 내일도 꼭 청소를 해야지. 언젠가는 내가 쓰레기 사이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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