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하는 것들과 우울증
그렇다면 나란 사람은 어쩌다 혼자 힘으로 청소하나 해내지 못하는 [쓰레기집에 사는 사람]이 된 걸까. 왜 이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태가 되도록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이제부터는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병력을 가진 환자마다 차이를 보이겠지만 어떤 우울증 환자는 365일 모든 상황에 우울해있지는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집도 많이 멀어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주 오랜만에 보기는 하지만 친한 친구들과 만나면 너무 활발하게 잘 놀고 서로의 근황을 물어본다. 하지만 이런 우울증 환자도 어떤 공간에 혼자 남겨져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에너지를 기어코 소비하면서 가면을 쓴 모습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울증, 번아웃에 걸리면 가장 먼저 티가 나는 부분이 개인의 위생상태다. 주변 환경을 둘러보고 청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심해지면 개인의 몸을 깨끗하게 씻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실제로 어떤 정신과전문의들은 우울증이 의심될 때 개인 공간과 개인의 위생상태 여부를 물어보려는 시도도 한다.(조심스러운 부분이고, 어떤 환자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숨기기도 하지만.) 의료진은 이 부분에 대해서 "사람이 물건을 버릴 때는 버릴지 안 버릴지 판단하는 의사결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에너지,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소비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이미 우울증과 번아웃 때문에 지쳐버린 몸과 뇌는 호르몬을 소비해야 하는 이런 간단한 의사결정까지 노동으로 판단하게 되면서 청소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노인분들의 쓰레기집이 [저장강박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면 2030 세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쓰레기집은 [자기 방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우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세상에 뭐만 하면 우울증이라고 해서 패션 우울증(실제로는 우울증이 아니면서 겉으로만 우울증 인척 연기하는 우울증)도 많다는데 굳이 약한 척하면서 병원 가서 약까지 먹어야 할까? 돈 아깝게. 일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두가 힘들다. 다들 월요일은 싫어하지 않는가.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천하의 죽일 놈도 술을 가운데 두고 대화를 하면 천하의 불쌍한 놈이 된다는데. 다들 이렇게 사는 게 아니겠나. 뉴스에 나올 정도로 엄청나게 힘들고 괴로운 일을 겪은 것도 아니고 더욱 힘든 일을 겪고도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 모두 힘듦과 아픔을 이겨내었을진대 왜 이렇게 독보적으로 한심한가.
이건 내 생각이었다. 아무도 내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게 나에 대한 내 평가였고 그래서 내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고 느끼면서도 3년간 병원을 가지 않았었다. 언젠간 그래도 청소를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내 공간에 쓰레기를 채워놓으면서.
그래, 나는 우울증과 번아웃을 모두 겪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우울증은 10대부터 지속되어 왔는데 우울증이 온 이유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나의 우울증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큰 키워드는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성(性), 두 번째는 가족(家族)
아, 요즘 세상에 불편러들이 워낙에 많아서 잠시 사전에 깔고 들어가겠다. 난 남자 좋아한다.
비혼주의도 많지만 언젠가 내가 존경하고 배려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날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서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서 평생을 힘든 일이 있어도 함께 이겨나가며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루고자 하는 내 목표 중 하나다.
그러나 세상에는
남성이 여성을 추행하는 경우가 있고
여성이 남성을 추행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동성끼리 추행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난 여자고, 여자라 남성에게 겪은 피해뿐인 것으로 부디 이후의 내 글을 읽고 혹여 누구 하나라도 역시 여자는~, 역시 남자는~이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앞으로 말할 비정상인 범죄자들과 다른 정상인 남성들에게 공통점은 성별 단 하나뿐이니 그 성별 하나 때문에 서로 어느 성별이든 비정상인을 옹호한다던가 싸잡아서 비난한다던가 하면서 정상인이 상처 입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여성과 남성으로 성별이 편을 갈라서 욕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이 갈려져서 정상인이 비정상인을 욕해야 할 문제다.
확신하건대, 요즘 세상의 성별 갈라 치기는 비정상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방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