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하는 것들과 우울증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내가 무슨 행동을 보고 당했는지 알았는데 성적인 지식이나 호기심과는 아예 동떨어져 살던만큼 충격은 더 심했던거 같다.
지금이야 오랜 시간이 지났다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불과 4년 전의 일이었다. 그것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시골집을 찾지 않게 되면서 그때 끝난 거고 그게 아니라면 얼마나 더 이어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날의 기억은 정말 생생한데,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불과 그 사실을 깨닫기 직전까지 나와 재밌게 잘 놀던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무서워졌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났다. 이상하다. 쟤네는 나에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쟤네 내 친구인데 갑자기 왜 이렇게 무섭지. 왜 이러지 내가.
머리로는 내 친구들인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몸이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미처 느끼지 못한 수치심, 분노, 서러움, 두려움, 억울함 등이 기억과 함께 한 번에 뒤섞여 몰려오면서 머리가 빙빙 돌고 숨통이 조이는 기분이 들어 당장이라도 눈을 까뒤집고 자지러질 것 같았다. 숨을 쉬기 어렵고 겨우 숨을 쉬면 마구잡이로 숨을 쉬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교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웃긴 건 그걸 친구들에게 가능한 티를 내기 싫어 생살을 잡아 뜯으며 견디다 배가 아프다고 양호실에 갔다. 그날은 공황장애, 과호흡증후군, 자해까지 한 번에 온 날이었다. 자해를 하면 그 통증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좀 분열된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그렇게 갑자기 남자들이 무서워졌고, 그러다 보니 여자도 무섭고 그냥 모든 사람이 무서웠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저 사람이 날 당장이라도 죽일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이런 상태가 찾아왔을 때 병원이라도 가보겠지만, 당시 나의 부모는 나를 병원에 보낼 사람들이 아니었고, 집 자체가 가난해 병원에 갈 돈도 없었다. 그리고 일단 그때는 정신병원에 가면 평생 기록이 따라다녀서 보험도 가입 못한다는 인식이 아주 강하게 있어서 정신병원은 말 그대로 '일상생활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다.
그럼 어찌해야 할까. 방법은 없다. 견뎌야지.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보는 얘네는 나랑 친한 친구, 집 밖에서 나에게 칼로 죽인다고 협박한 사람은 없음. 모두 이건 나의 망상. 내가 미친것.이라고 되네였다. 팔에 손톱으로 뜯어낸 상처가 늘어갔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은 공공 도서관이나 공원에 나가서 일부러 돌아다녔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억지로 버텨냈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게 무서울 리 없다고, 넌 참아야 한다고 되네였다. 참고 참다가 죽을 것 같으면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서 소리를 죽이고 울었다. 학교에서는 정 못 참게 되면 배가 아프다며 둘러대고 양호실에 갔다. 다행스럽게도 친구들은 알던 얼굴이라 그런지 그럭저럭 괜찮아졌지만 새롭게 보는 사람들이 문제였다. 과호흡이 왔을 때 비닐을 사용해서 숨을 쉬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친구들 앞에서 쓰러지면 심장이 약하다고 둘러댔다.
4살 때 만난 자는 얼굴도 제대로 모르고 누군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친척이다. 이걸 누구에게 말하나. 나는 누굴 원망해야 하나. 그때 왜 나는 싫다는 소리 하나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나. 내가 싫다고 했으면 안 했을까. 내가 가만히 있어서 나를 노렸구나. 나한테 그걸 반복했구나. 내가 한마디라도 했다면. 아니 그냥 거길 가지 않았다면. 내가 그때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아 이건 모두 내 잘못이구나... 자책을 그만하고 싶어도 끊기지를 않아서, 정말 내 잘못 같아서, 그때가 자꾸 머릿속에서 반복되어서, 괜찮아졌다가도 또다시 무서워졌기에 티도 내지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위축되며 사람들 속에서 울다가 도망치기를 반복하며 내가 그나마 괜찮아지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정말 오래 걸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