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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28. 2022

엄마! 집밥이 맛있어요!

허기짐을 달래는 좋은 음식들

  엄마의 식탁에 밥상이 차려졌다. 햄과 감자를 채 썰어 기름에 볶은 감자 햄볶음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무생채 나물, 양파와 버섯을 넣고 소금 간을 한 버섯볶음, 총각무와 깍두기, 그리고 국물을 낸 무나물 볶음이었다. 그리고, 언니가 선물 받은 조미김까지 반찬에 올랐다. 오랜만에 엄마와 하는 식사에 옛 기억이 떠올랐다. 배고픈 상태에서 허겁지겁 먹었던 엄마표 밥상. 엄마가 퍼준 밥공기만큼 든든하게 배를 채우면 다른 군것질 없이도 허기가 지지 않았다. 그 기분 좋은 포만감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내 위장 속에 다른 것들을 채워 넣는 동안 엄마의 밥상은 차순위로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유일하게 함께 먹는 밥상이었던 저녁도 배달음식으로 대신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내가 주로 시켜 먹던 음식은 짜장면, 피자, 치킨 정도였다. 그 외의 것들은 직접 식당에 가서 주문해서 먹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배달이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러나 코시국에 들어서면서 서울은 배달이 안 되는 것이 드물정 도로 모든 곳이 배달의 지역으로 바뀌었다. 핸드폰 앱만 설치되어 있다면 누구나 손쉽게 주문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걸 사용할까? 관심이 없었는데, 몇 번 시켜먹다 보니 이것 만큼 편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한 차례 두 차례 시켜 먹다 보니 익숙해졌고, 이제는 차려 먹는 것이 귀찮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마 왈, 냉장고에 있는 거 다시 데워서 상에 차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귀찮니? 그러면 나는 툴툴대면서 괜한 반찬 투정을 하게 된다. 엄마는 시래기, 갓김치, 머위, 그런 산첩밥상만 좋아하니까 그런 것만 먹게 되잖아. 난 그런 거 맛이 없어. 난 그냥 돈가스나 먹을래. 그러면 엄마는 그럼, 뭐! 반찬이 다 그런 거지. 입에 달고 기름진 것만 먹으면 살만 찌지! 맨날 그렇게 시켜먹으면 돈은 어떻게 할래? 왠지 이 싸움에서는 내가 늘 지게 된다. 엄마의 말이 맞다. 배달음식은 맛은 있지만 영양은 부족할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시켜 놓으면 다 먹지도 못해서 냉장고의 한켠을 차지한다. 그러면 치우는 몫은 엄마가 된다. 내가 엄마라도 뿔날만하다. 그래도 시켜먹는 재미에 한 번 빠지니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잠시 귀찮은 엄마의 잔소리만 들으면 맛 좋은 떡볶이, 감자탕, 족발, 달콤한 마카롱과 케이크, 빵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는 그만 시켜라 주인 놈아! 하며 아우성치고 있었고, 나는 한숨을 쉬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체중계가 현실을 체감하게 만들어주면서 나는 다이어트에 돌입했고, 배달음식을 끊었다.

  이제 전적으로 엄마의 밥상에만 의지하게 되니 시간 되면 재까닥 밥상에 앉아 엄마의 음식들을 기다린다. 반찬 투정 따위 없다. 다 너무 맛있어서 더 먹고 싶어 진다. 다른 군것질 거리도 현저하게 줄인 탓에 밥맛이 더 좋아졌다. 더불어 엄마의 흡족한 미소도 얻게 되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그리고 달라진 것은 엄마와 아침을 함께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침은 늘 바쁘니 제치고 출근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간식을 줄이다 보니 밥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져서 힘이 나질 않는다. 밥을 먹어야 하면 더 일찍 일어나야 하고, 분주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의 루틴이 생겨 오히려 내게는 더 좋은 것 같다. 아침을 커피로 때우는 것보다 밥 세 숟가락이라도 뜨고 나오는 것이 위장 건강에 훨씬 좋은 것이야 두 말할 것이 없으니까. 그렇게 지금까지 6일 차에 접어들고 있다. 생각보다 배달음식 안 시켜 먹는 것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자취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차려주시는 음식들만 해도 종류가 여러 가지 여서 영양이 부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의 말대로 복에 겨운 투정이었다. 잔말 말고 엄마의 말대로 이행하는 것이 내 신체건강에 훨씬 좋았던 것이다.

  이왕 건강을 챙기는 김에 다이어트 욕심을 조금 더 내서 배달음식 만으로 찌운 내 5kg의 살들을 뺄 생각이다. 이제 밥 몇 숟가락 덜 먹는다고 살이 잘 빠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한약 다이어트다. 다이어트 환을 먹으며 간식을 줄이고, 밥의 양도 적절히 조절해가며 먹기 시작하자 초반보다 1kg가 감량되었다. 환이 보약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포만감도 들고, 기운 쓰는 게 달라졌다. 무거운 종이 박스도 1층에서 4층까지 거뜬히 들고, 짐 나르는 것도 혼자서 무리 없이 잘한다. 살쪘을 때 보다 몸의 기운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사실 배달음식으로 살을 찌운 거라 건강하게 찌웠다고 할 수는 없어서 불필요한 지방을 걷어내니 몸의 효율이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나름의 만족하는 생활을 유지 중이다.

  그리고, 엄마의 집밥이 좋은 것은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배달음식을 배달시켰을 때는 대부분 거실에 상을 펴놓고 tv와 함께 식사를 했었다. 그렇게 먹다 보니 tv를 보느라 가족과의 대화는 거의 없는 편이었고, 음식도 너무 많이 먹게 되어 속이 더부룩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와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일매일 너무 많이 나왔다. 환경에 미안할 정도였다. 분리수거는 매일매일 해야 했고, 나올 때마다 너무 귀찮았다. 배달음식을 줄이니 식구들끼리 누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지 씨름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들 부담 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 감정 소모될 일도 줄었고, 가족들과 천천히 여유롭게 식사하는 방법을 다시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상을 펴고 불편하게 앉아 식사하지 않아 소화도 더 잘 되고, 식탁에서만 식사를 하니 치우는 것도 더 간편해져서 시간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배달음식을 시키는 주범이었던 내가 사라지자 우리 집 식탁도 다시 건강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언니는 주는 대로 먹는 스타일이고, 내가 고르고 따지는 스타일이라 엄마가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입도 짧고, 먹고 싶은 게 아니면 숟가락도 안 드는 나 때문에 엄마가 굶겨 보기도 했지만 정말로 안 먹어서 결국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곤 했다. 무슨 놈의 똥고집인지 그렇게 살아도 나를 내쫓지 않아서 부모님께 정말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그런 반찬 투정도 잘 나오지 않는다. 반찬 한 가지씩을 집을 때마다 맛있다는 생각뿐이다. 달콤 짭짤 느끼 매콤 시고 이런 것들을 줄여서 인지 슴슴한 맛도 이젠 맛있게 느껴진다. 싱겁다 싶어도 건강에 좋다고 하면 그냥 먹게 된다. 짜게 먹으면 고혈압이나 성인병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기도 하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엄마의 식탁을 애정 할 예정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아직 좀 서툴지만 그래도 몇 가지씩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실패하고, 버리고, 실패하고, 버리지만. 시행착오 끝에 발전한다고 하니 그 말을 믿어보려고 한다. 나를 위해 정성 들여 만든 엄마의 손길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오늘도 오물오물 꼭꼭 씹어서 남김없이 밥공기를 비웠다.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하고 나니 내 마음도 깨끗이 닦인 기분이 들었다. 내 속에 들어올 것들을 좋은 것들로만 채우는 한 달이 될 수 있도록 마음가짐도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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