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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29. 2022

퇴사하고 오겠습니다.

세 번의 퇴사, 그리고 남은 것들.

 직장인으로 5년을 살았다. 사번을 부여받고, 이제 이 회사의 소속이라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꼈다. 학교는 출석번호로, 학번으로 나를 불렀다. 재학증명서와 졸업증명서는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인지를 알려준다. 회사도 그랬다. 이제 나는 재직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명함이 나오고,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일종의 감격이었다. 졸업 후 7개월 간 무직의 시간을 인고하면서 살기 싫은 날이 며칠이었던가. 아니 좋았던 날들을 세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스스로를 잉여인간 취급하며, 얼마나 학대하며 괴롭혔는지 모른다. 식사를 거르고, 이력서에 쓸 내용이 없어 자책하고, 자학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다시 밤이고, 그렇게 아침이고, 또 밤이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었지만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몰라서 물어보면 혼나고, 이 정도는 스스로 해야겠다 해서 알아서 하면 또 혼났다. 알잘딱깔센이 안돼서 하루 종일 욕을 들어야 했다. 주말에도 일 연락은 계속되었다. 교회 동생이 “누나? 혹시 콜센터 일하세요?”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 정말 어디서 일하고 있는 거지? 현실 타격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사회생활도 쉽지 않았다. 친해지고 싶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혼자 남게 되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말 수가 줄어들고, 웃음도 잦아들고, 직장에서 맘을 털어놓을 사람이 하나 없었다. 설령, 말을 털어놓아도 직장생활이 원래 그런 거야. 그건 네 잘못이야. 네가 어딜 들어가든 똑같아.라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하루는 카톡으로 언니에게 힘든 내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언니, 나 관두고 싶어. 사직서 제출할까 봐.라고 남긴 적이 있었는데, 그걸 옆에 계신 상사가 보고, 날름 부장에게 말한 적이 있다. “부장님, 00 씨 퇴사한데요. 우리 준비해야겠어요. 사람 하나 더 뽑아야겠는데요?” 엄연히 사생활 침해. 남의 카카오톡을 함부로 보고, 남의 마음을 함부로 들쑤시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대했다. 정말 내가 그만두었으면 해서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너무 상하는 일이었다. 회사 생활은 멘붕의 멘붕, 절망의 절망, 분노의 분노 그 자체였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지옥과도 같았다. 자려고 누우면 내일이 없었으면, 이대로 삶이 끝나길 기도했다. 노트북을 들고 퇴근해서 일을 하고, 울면서 일을 했다. 그런 하루가 계속 반복되고, 쉬는 날 직장 전화를 받았다. 일이 제대로 꼬이려고 하자, 순식간에 감정이 무너져 내려 전화를 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못하겠어! 나 이젠 정말 한계야.” 그리고 주저앉아 절규하고, 목 놓아 울었다. 놀란 엄마가 뛰어와서 한 숨 쉬듯 말했다. “그래, 그만둬라. 하지 마.” 그 말이 내게 구원과도 같았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 나를 멈춰주길 바라 왔는지도 모른다. 할 만큼 했어. 널 탓하지 않아. 수고했어.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가서는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안도했고, 다행이었다. 무시와 하대가 일상적이었고, 냉소와 조롱만 당했던 내게는 이 조직의 문화가 천국과도 같았다. 외국계 기업이라고 해서인지, 서로 일을 존중하고, 신뢰해주는 것 같았다. 눈치 보며 썼던 연차는 하루 전에, 아니, 그 당일에도 결재가 났고, 이유는 묻지 않았다. 개인 사정으로 쓰면 승인해주는 문화였다. 이전 직장과는 정말 다른 차원의 곳이었다. 계약직 신분이었지만 더 오래 다니고 싶었다. 정규직을 기대했지만 이곳에서는 1년의 계약기간이 종료되고 회사를 나와야 했다.

  세 번째 직장은 콜센터였다. 사람에 치여 일에 치여 살았던 나는 이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번아웃 상태였다. 주어진 스크립트를 읽고, 외우고, 정해진 데로 잘 전달하면 되는 상담원이라는 직종에 발을 담갔다. 이곳은 오는 전화를 받고, 교육받은 데로 잘 안내만 하면 되는 일이라 스트레스는 크지 않았다. 가끔 민원성 고객이 인입되어도 정해진 데로 안내하고, 그래도 욕설과 고성을 남발하면 관리자에게 인계하면 되는 일이라 이 전의 일보다는 할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우리끼리는 연대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서로의 노고를 알아준다는 것,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것. 그리고, 일 얘기를 털어놓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 이런 것들이 적절히 어울려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때 당시에 퇴근 후에는 꼭 맥주 한잔씩을 했다. 한 잔의 술로 피로를 씻는 듯 하루의 고됨을 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직장 이야기를 포함해서 개인의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마음을 털어놓고 언니, 동생으로 지내듯 허심탄회하게 말을 했다.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계산하지 않고, 숨김없이 다 드러냈다. 그렇게 지내니 술자리도 편했고, 즐거웠다. 마음이 맞는 언니들끼리는 사적으로 여행도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 그랬었다.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만나고 친하게 지내고 있다. 회사에서 만든 친구는 이 언니들이 전부다.

  세 번의 퇴사를 하고, 느낀 것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직군이 있다는 것. 이곳이 아니라도 다른 곳도 많다. 아침 메뉴 고르듯 직장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선택지가 이곳이 전부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됐다는 것이다. 어렵게 들어온 직장인데, 어떻게 취직된 곳인데, 내가 이 정도 힘들다고 여기를 그만둬? 여기서 스트레스로 죽더라도 끝까지 견디는 게 근성이고, 의지야.라는 생각으로 본인을 학대하고, 괴롭히기에 당신들은 너무나도 예쁘고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내 젊은 날을 생각했을 때 나는 너무 힘들어서 돌이키고 싶지 않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는데,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야 열심히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쉽게 그만두는 게 어린아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서 주변에 투정도 부리지 않았다. 어리광 부리게 되면 어리광만 늘어갈 것이고, 그럼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니까. 힘든 것 나 하나 만으로 족하다고 말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 기대며 살아도 되었으련만, 그게 잘 안됐다. 사실 주변에 넌지시 말해도 잘 받아들여진 적이 별로 없었다. 그때만 해도 사회 분위기가 잘 참고, 잘 견디는 것에 박수를 치는 분위기여서 그랬던 것 같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아니면 빨리 나와서 내 살길 찾아야 한다. 내 감정도 소중하다.로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개인의 정신적 건강을 되찾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안 괜찮다는데 네들이 뭐라고 떠들어? 닦쳐! 하는 분위기! (닦쳐는 너무 격앙된 제 감정입니다.)

  좋으니 싫으니 해도 팔십 평생을 내 몸을 달고 살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다. 골골 대며 아프고, 고생스러운 병을 달고 사느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을 지고, 돈을 벌고,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는 것. 그게 내가 내 삶에 해줄 수 있는 예의고, 삶에 대한 보장이다. 남들 눈에 잠시 잠깐 비칠 때 멋있어 보이는 것보다 스스로가 정말 괜찮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요즘의 나는 정말 괜찮다. 직장을 쉬고 있어서 그런가? 하루 반 타임 정도 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내게 들어가는 최소한의 비용을 감당하면서 그렇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산다. 물론 그 전보다 훨씬 더 쪼들린다.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돈 나가는 것도 무섭다. 그렇지만 뭐, 흘러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요즘의 나는 고여있지 않다.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 직장을 다니면서 뭔가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닻을 내리고 항해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뭍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도 충분히 신나고 설렌다. 항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단한 것을 한 가지 한 셈이니까.

  올해는 너무 비장하게 살지 말아야겠다.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이곳이 아니면 저곳이 또 열린다. 다양한 것을 보고, 만지고, 듣고, 생각하며, 말하고, 느껴보려고 한다. 내 인생의 책임은 내가 진다. 그것은 충분히 무거운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n분의 1로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겠지. 너무 멀리 내다보려 하지 말고, 딱 바람이 밀어주는 만큼만 그만큼만 생각하면서 천천히 나아가야겠다. 대신 방향만 분명하게 설정하고, 순간순간의 선택에 집중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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