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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30. 2022

사진 찍을 때 나는 대충 빠르게 vs 느리지만 완벽하게

사진은 대충 빨리 찍으면 잘 찍힙니다. by 언니

 나는 사진을 잘 못 찍는다. 아니, 엉망으로 찍는다. 결과물을 보면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수평은 안 맞고, 구도도 틀어졌다. 게다가 흔들리기까지 한다. 피사체가 움직일 때,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셔터를 눌러버리기도 한다. 못하는 것도 자꾸 하면 잘한다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오늘도 언니한테 사진 못 찍는 다고 한 소릴 들어 심히 위축된 상태다.



  “거참, 대충 빨리 찍자. 커피 마시려고 왔지, 사진 찍으러 왔냐?”


나는 호랑이 앞에서 생쥐가 으름장을 놓듯 찍찍거렸다. 그러자,

  “ 그래, 빨리 예쁘게 찍어줘. 자!”


언니가 묵직한 한 방으로 호랑이 발을 휘둘렀다. 나는 그 발에 눌린 채, 신음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아이폰이라 그런가, 무겁기도 하지.'     

결과물은 처참했다. 내가 봐도 뭘 찍은 건지, 모를 정도다. 다섯 번째 시도 끝에 언니가 포기함으로 사진 찍기 노동은 끝이 났다. 언니는 그르렁그르렁 분노를 삼키며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갔다.      


“너는 왜 구도를 맞춰줘도 못 찍냐? 그냥 셔터만 눌러! 그것도 못해?”     

나는 화가 났다. 언니의 말을 맞아서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능력하고, 한심한 사진 실력 정말 늘지도 않는다. 고작 한 다는 나의 핑계는,     

“사진 좀 그만 찍어. 아님 전문 사진사를 고용하든지.”    

정도다. 정말 별로다. 멋지지도 않고, 적절하지도 않다. 망했다.      

빨리 찍으면, 대충 찍게 되고, 대충 찍으면 예쁘지 않지 않아? 근데 어떻게 언니는 빨리빨리 예쁘게 잘 찍을까? 타고난 센스인가 보다. 사진 찍는 것 따위 관심도 없지만 그래도 칭찬에 고픈 나란 어른이는 오늘도 언니의 조언을 들어 사진을 찍어본다.      

“00아,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틀고, 좀 들어. 그래, 자 찍어.”      

언니가 포즈를 취한다. “자! 찍어줘!”     

다른 포즈를 취한다. “자! 찍어줘.”     

언니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사뭇 긴장되어 침을 꿀꺽 삼킨다. 과연 언니는 어떤 평을 남길까?     



 

“하...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다 별로야. 됐어. 커피나 마시자.”     

한 편으로는 해방감에 어깨춤이 들썩들썩 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사진 찍을 때만큼은 죄인이 따로 없다. 언니는 나의 인생샷을 남겨주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늘 언니에게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런 내 맘도 모르고 언니가 또 툴툴댔다.    


“명사진은 피사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투영되는 거래.

나는 널 얼마나 잘 찍어 줬냐? 근데 너는 이게 뭐야. 하... 오늘 네 마음 잘 알았다."    


“언니가 그렇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나온 거지. 뭔 내 탓을 해.”     

나도 쏴 붙였다.


“뭐야?!”     

언니가 찌릿하며 나를 흘겨봤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라테 한잔을 마셨다. 따뜻한 온기가 위장을 훑고 지나간다. 맛있다. 언니는 나를 째려보면서 커피 잔을 들었다. 나도 지지 않고 눈을 끝까지 부릅떴다. 뜬금없이 눈싸움 배틀.     

“너는 똥손인데, 나만 불쌍하지. 너랑 다니니까.”     

“그럼, 이제부터 딴 사람이랑 다니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언니가 그대로 주먹을 들어 내 이마를 콩 하고 쳤다. 막을 새도 없이 훅 들어온 펀치에 정신이 아뜩해서 이마를 문질렀다. 언니는 아직도 내가 중고등학생짜리 애로 보이나? 사람 많은 데서 서른 넘은 중년 여자를 때리다니. (워크넷에서 30대 구직자를 중년으로 구분하더군요;;)     


“뭘 봐!”     

언니가 히죽거리며 커피 잔을 들고 라테를 마셨다. 나도 똑같이 머리를 때리려는데 언니 손에 막혀서 정조준을 하지 못하고, 엄한 데를 때렸다. 맞아도 하나도 안 아픈 데를 때려서 분에 못 이겨 씩씩 거렸다. 나도 위신이 있다, 못된 언니야.     

기분은 별로지만, 한옥 카페의 분위기는 고즈넉하니 좋았다.

12시 30분에 도착해서 카페 안은 한산 했다. 손님이 우리 밖에 없었다.

여유롭게 카페 한편에 있는 책 몇 권을 가져와 읽었다.

밖에서 돌아다니던 길고양이가 카페 안으로 들어와 우리 앞에 자리를 잡더니 그루밍을 한다.

여유롭다. 고양이는 열몇 시간을 잔다던데. 쟤는 무슨 재미로 묘생을 살까? 가만히 관찰했다.

그래도 제법 귀여워서 사진 몇 장 찍었다.     

“이거, 고양이도 나한테 못 찍었다고 하는 거 아냐?”   

     

언니한테 고양이 사진은 안 보내줬다. 잘 찍었다고 안 할 것 같아서.

오늘 언니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찍어준 사진이 업로드되었다.

“엇! ㅋㅋㅋ언니, 미안.”     



그래도 오늘 커피 내가 샀으니까 언니가 맘을 좀 풀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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