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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Jan 31. 2022

너, 올 해는 설 선물 받은 거 없었니?

나의 처지에 따라 가벼운 일도 가볍지 않은 것이 된다.

아침부터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아침밥 먹은 것을 설거지 치우고 내방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이 시간에 집에 있는 딸을 아주머니들은 무어라 생각할까? 괜한 자격지심이었다. 그렇게 집에 없는 척 조용히 노트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내 방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오셨다.  

   

“00아, 너 혹시 설 선물 받은 거 없었니?”  

   

나는 당황스러웠다. 작년까지는 회사에서 명절이면 두 손 무겁게 선물을 쥐어주었다. 선물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바디케어 제품이나 참치 식용유 세트 등 기본 명절 세트였다. 그런데 올해는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그런 것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었다.  그 순간 내가 엄마에게 무언갈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하는 죄의식이 느껴졌고,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응? 어... 어... 없어. 못 받았어.”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알겠다고 말하고는 다시 방문을 닫았다.

아르바이트생이라도 무언 갈 하나 챙겨 받을 거라고 생각하셨나? 실망하신 것 같아 내가 다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근데 뭘 그런 말을 아주머니 있는 앞에서 굳이 내 방문까지 열고 들어와서 묻지?’     


엄마가 나이가 드시더니 눈치가 없어지셨나? 아니면 눈치가 없는 쪽은 되려 나인가?

복잡하고 미묘한 신경전이 내 안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분명하게 묻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래도 불리한 쪽은 나였다.

엄마의 집에서 얹혀살고 있는 처지에 자존심까지 챙기자니 무엇이 이득인지 내 마음이 갈팡질팡 정신없이 길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됐다. 그냥 가벼운 거잖아. 선물 받았어? 못 받았어. 그럼 끝! 어려울 거 없어. 잊자.’     


그렇게 나는 출근을 했고, 그 일을 잊은 채로 5시간이 흘러 다시 퇴근을 했다.

아파트 경비실을 지나치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나를 다급히 부르셨다.     

“저기요. 저기 잠깐만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아저씨께 되물었다.     

“저... 저요? 저 말씀하시는 거예요?”     

, 잠시만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이거, 오감사님 앞으로 들어온 건데 집에  계셔서 제가 대신 보관 중이었거든요.”     

나는 엄마가 동대표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선물일 거라고 직감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엄마한테 드리면 누가 주셨는지 아실까요?”     

“네, 아실 거예요.”     

나는 경비원 아저씨께 꾸벅 인사를 드리고 선물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명절이라고 선물을 받는 엄마가 부럽기도 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신을 벗고, 마스크를 벗고 현관에 들어섰다. 명절이라고 사장님께서 일찍 끝내주신 덕에 오늘 제일 먼저 퇴근한 것은 나일 것이라고 자부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언니는 이미 집에 도착해서 한 것 지게 목욕까지 하고 있었다. 화장실 문을 열자 나른하고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고 있는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약이 올라 한마디 던지자 서로 웃음이 터졌다.      


“뭐야! 오늘 내가 더 일찍 끝난 줄 알았는데.”     

“흐흐흐. 아니, 점심밥 먹었는데, 이제 가라고 하길래, 왔어.”     


생각해보면 언니는 명절 때마다 일찍 왔다. 근데 왜 그게 킹 받는지 모르겠다. 같이 놀 사람 생겨서 좋기도 하고, 집이 비지 않아서 좋기도 한데 뭔가 킹 받는다. 맨날 내가 뒤에 차를 타고 온다는 게 지는 기분이 들어서 일까? 별게 다 문제다.     


“오늘 사장님이 떡값 주셨다. 현금 봉투로 받으니 기분이 묘해. 더 좋아.”     

나는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언니는 물을 몸에 끼얹으면서 풀린 눈으로 말했다.

    

“그럼, 오늘 네가 저녁 쏴라.”     

나는 외면했고, 언니는 피식 웃었다.      

“언니, 엄마 설 선물 받았나 봐. 경비아저씨가 줬어.”     

“그래. 아까 엄마가 전화해서 난리였어. 다른 동대표들은 다 받았는데 엄마만 못 받았다고. 분명 줬다고 하는데 말이야.”     

그 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럼 내가 방금 들고 온 선물, 그리고 아침에 엄마가 물었던 그 선물은 엄마의 것이었나 보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경비 아저씨가 설 선물이라고 주셔서 잘 받아왔어요. 응. 아, 그랬어? 응.”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니까 내가 퇴근하고 선물을 받아왔을 때, 경비아저씨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신 모양이었다. 준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없으니 중간에 그 선물은 공중 부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다 내가 오늘 일찍 끝난 다고 말씀을 미리 안 드렸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언니가 안 받았으면 우리 집에서는 받을 사람이 없는 계산이 된다. 그 이후로 언니는 세상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고 있었고 핸드폰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으며, 엄마는 언니에게 계속 전화를 했고, 화가 난 상태였다고 한다.     


‘불통의 가족.’     


그나마 내가 빨리 알아채고 전화를 드렸으니 망정이지. 엄마 속을 까맣게 다 태울 뻔했다.     

그리고, 아침에 있었던 작은 해프닝도 막을 내렸다.


나의 작은 오해. 그 속에 있었던 작은 열등감. 죄의식.

괜찮다고, 잘 해내가고 있었던 내 믿음에 대한 반기. 내가 또 주변을 의식하고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별일 아니다. 그냥 작은 일화인데, 아침에는 뭔가 멜랑꼴리 했다.      

다른 사람이 날 무시해도, 나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에게 모욕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어느 인터넷 글귀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런 것처럼 이 날의 일도 그러하다. 나는 굳건하다. 나를 파괴할 수 있는 권리는 나 자신에게 있다. 아무도 그 영역은 범접할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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