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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Feb 03. 2022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

오늘도 나는 부자를 꿈꾼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부자가 되어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다. 나는 노동자다. 노동자에게 나의 시간은 없거나 적다. 근로시간을 자본가에게 주고 나면 남는 시간이라곤 잠과 식사를 위한 시간 정도만 남는다. 그마저도 야근이라는 놈이 발목을 잡으면 온전히 갖지도 못한다. 그럼 나머지 한두 시간은 피로와 싸우며 자기 계발에 힘쓰느냐 그것도 사실 힘들다. 책이라도 읽으려면 눈은 감기고 고개는 푹푹 쓰러진다. 하루치 생활 에너지를 다 썼으니 쉬라는 몸의 신호다. 오늘도 타협하며 이불속으로 몸을 숨긴다. 의지가 부족한 내가 부끄러워 얼굴까지 요를 덮어버린다.


나는 돈을 벌고 싶지 않다. 그럼 둘 중에 하나여야 한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만큼 생활이 여유롭거나 자본주의 사상을 버리면 된다. 과연 가능할까? 상상 속에서나마 꿈꿔본다. 100억 원 복권에 당첨되어 당장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골프 치러 다니고 백화점 가서 쇼핑하고 한 끼에 100만 원 되는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 평범한 날이 될 날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자본가의 배를 불리고 소정의 돈을 월급으로 받을 뿐 오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래서 좌절감에 빠지고 의욕을 잃는다.


돈에 종속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나는 부자를 꿈꾼다. 시급 몇 백 원 높은 곳을 찾아 헤매고 싶지 않아서 부자를 갈망한다. 돈이 내 일상을 침범하는 것이 싫어서 오늘도 돈을 많이 벌어두려고 출근한다. 돈이 내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 싫어서 돈을 번다. 역시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안 하려고 인문학과 철학 책을 읽는다. 속물 소리를 듣기 싫어서 오늘도 부단히 애를 쓴다. 그래 봤자 돈 없이는 못 사는 한낱 노동자일 뿐이다. 지금 보다 처우 좋은 일자리가 생기면 언제든 짐을 꾸려 다른 곳으로 이직할지도 모른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건가? 이대로 살면 돈에 집착하지 않는 내가 원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돈 때문에 불안한 거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퇴근하니 오후 9시였다. 설을 쇠고 오니 물량이 많아서 기계처럼 손을 움직였다. 내겐 의미 없는 동작들. 이것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거나 행복감을 얻지는 못한다. 대신 그 시간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다. 추가 수당까지 합산한 노동의 대가다. 돈으로 정신을 마취시킨다.


그래, 이 정도면 돼. 잘하고 있어. 이 정도면 내 인생 내가 책임지는 거지 뭐. 하며 눈을 스르르 감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부자가 될 생각은 애초에 해서는 안되었다고. 아르바이트로는 한 달 생활비를 대기도 빠듯하다. 몸은 피곤하고, 생각은 정거장에 서는 버스처럼 자꾸 멈춰 선다. 내 시간이 없구나. 내 시간이 사라졌다. 나는 남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유튜브에서 라운지 음악을 테마로 설정하고 가만히 듣고 있으니 이제야 내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글로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정돈된 기분이다. 겨우 1시간 남짓한 시간이다.


온전한 내 시간. 잠을 좀 줄이면 내 시간이 더 늘어날 테지. 따뜻한 보일러 기운이 방안을 감싼다. 발바닥에 온기가 전해지자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내 시간을 살고 있다는 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온전한 자유, 그리고 해방감.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온전한 내 시간이 시작되었다.


슬프다기보다는 그래도 다행이다. 오늘은 바로 잠이 들지 않고 마치 ‘부자’처럼 내 시간을 가져보았으니 그걸로 만족이다. 내일의 나도 야금야금 내 시간을 가져볼 생각이다. 그래도 간단한 육체노동이 정신적 피로함 보다는 훨씬 낫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정신적으로 피곤 치는 않으니 뭔가를 할 여력이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부자가 되어야지. 언젠가 남의 시간을 살 수 있을 만큼 큰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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