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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Feb 26. 2022

오만과 편견

오늘도 연애 모의고사 낙제점을 받고 쓰는 글.

나는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먼 관계부터 가까운 측근까지 사람을 속성별로 분류해 관리한다. 단순히 나의 편의를 위함이다. 얼마 되지 않는 나의 인간관계라 할지라도 알기 쉽게 속성별로 정리한다. 


그리고, 오만하게도 각 그룹마다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각주처럼 따르는 설명들이 있다. 대하는 방법의 용이함에 있어서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명확히 감이 섰으니까.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내 안에 강한 편견이 생겨버린 것이다.


편견은 내 연애에도 작용했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썸의 기류가 생기면 바로 철벽을 쳤다. 교회는 소문이 무성한 곳이니 괜한 허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저 사람은 바람둥이야, 저 사람은 너무 진지해, 쟤는 동기니까 패스. 내가 경험한 것도 아닌데, 주변 소문 만을 믿고, 그 사람을 싫어한 적도 있었다. 여물지 않은 어린 생각의 결과였다. 


그런 말이 있다. 회사에서 다 경력직을 채용하면, 신입은 어디서 있을 해야 하냐고. 기회를 줘야 경험이 생기고, 성장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게 하는 취업시장의 냉정함을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나에게도 적용하고 싶다.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은 없다. 흠이라고 강하게 표현했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족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고른 능력을 갖출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사람의 일면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버릇을 버리질 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기회를 잃어만 갔다. 


사람들에게 연애사를 오픈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렇다 보니 나는 계속 수동적으로 사람들의 말에 대응하기만 했고, 말 없고, 낯가리는 아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가니, 그들도 내게 궁금한 것들이 점차 사라지는 듯했다. 그렇게 무수한 연애의 기회들을 잃어가는 줄도 모르고, 나 스스로를 내 세상에 혼자 가뒀다.


나만 보면 연애를 하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오늘도 나에게 넌 너무 생각이 많다며 진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요점은 남자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소통하라 였다. 내가 썸남들과 연인으로 관계가 진전되지 못했던 수많은 케이스를 알고 있는 그녀다. 그렇기에 이 조언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와의 일화를 들려주며 나의 정신을 환기시켰다. 현재 애인과의 첫 만남 이야기였다. 때는 일요일 저녁 6시, 둘은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했다. 내 친구는 당연히 식사를 안 하고 왔는데, 이 남자는 간단히 차만 마시고 헤어질 생각으로 나왔는지, 애프터가 없었다고 했다. 


친구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애프터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대화로 알게 된 사실은 판이하게 달랐다. 


남자는 다이어트 중이었고, 첫 만남부터 이 친구에게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 번 만나지 않은 어떤 날에 고백을 해왔다고 했다. 


이 사례를 나에게 적용시켜보면, 나는 최근 소개팅을 했고, 똑같은 상황을 겪었다. 오후 3시에 만나서 2시간을 이야기하고, 저녁도 먹지 않고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카톡으로 대화를 이어가다가 남자가 코로나 확진이 되어 약속 날짜가 미뤄졌다. 그리고 이 사람과는 인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부터 친구와 나의 선택이 달라진 것이다. 친구는 남자를 알아가기 위해 다음 약속을 잡았고, 남자의 생각을 물었다. 이 남자에 대해 오해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정말 친구에게 관심이 없었는지, 왜 저녁도 함께 하지 않고 집으로 가버린 것인지 말이다. 


친구는 자신의 생각만을 믿지 않고,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알아내고 극복을 했다. 그래서 연인이 된 것이다.

 

친구는 여기에 첨언을 덧붙였다. 본인은 한 사람에게 여러 번의 기회를 주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가까이에서 보고 여러 해를 지켜봤던 친구로서 말해주자면,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데 더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론 정말 남자가 이성적으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빨리 접는 게 좋지만, 싫지 않다면 대여섯 번은 만나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나서 정말 많은 대화를 해보고, 서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말을 내 식대로 받아들인 것은 다음과 같았다. 


내 마음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게 상대방에게 몇 번이고 묻기. 내 마음이 늘 옳은 것이 아니란 것을 인정하기. 사랑은 두 사람이 만나 하는 것, 혼자서 끝났다고 선언한 것을 이성적이라 착각하지 않기. 


이제껏 나는 연애 모의고사에서 늘 만점이었다. 당연했다. 문제를 다 풀고, 정답지도 보지 않고 혼자 채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틀렸을지도 모르는 오답을 애써 동그라미 쳐가며 내 부족함을 감췄다. 남이 문제를 보고, 답을 알려주려고 하면 화들짝 놀라 시험지를 뒤로 감췄다. 그랬기 때문에 연애에 있어 한치도 발전이 없었고, 매번 그 자리였나 싶다.


오만과 편견의 조화로 나는 매번 연애 고사에서 낙제점을 받아 나머지 공부를 해왔다. 문제의 유형들은 매해 달라지고,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합격자들은 말한다. 고득점을 받고 싶다면, 상대방을 알아가고, 지켜보고, 친구로 지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일제히 조언한다. 


나는 오늘도 늦깎이 수험생이 되어 연애 고사를 치른다. 내 첫 연애는 생각보다 싱겁고, 밍밍하고, 맛없을지 모른다. 기대만큼 달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 그대로를 마주하는 것, 한 꺼풀 벗겨진 상대를 마주하지 않으면 나는 사랑에 진입조차 하지 못할 거란 것을 이제는 알겠다. 


이번에는 오만과 편견을 좀 지워보고, 속상하더라도 울어도 보고, 자존심도 좀 버려보고, 매달려도 볼 생각이다. 연애를 하는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어떻게 위기를 이겨낼지 제대로 겪어볼 생각이다. 한 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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