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여겼으나 사랑은 될 수 없었던 인연들
세 번째 남자는 영등포역에서 만났다. 키가 컸고 단정한 옷차림의 남자였는데 지금 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내 이상형에 가까웠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해가 질 때까지 계속 걸으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꿈은 무엇인지, 어떤 데이트를 좋아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끝도 없이 대화를 계속했다. 대화를 할수록 이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고, 다음 약속을 얻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애프터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와 연락이 완전히 끊긴 후 우리의 만남을 다시 되새겨봤다. 우리가 연인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가 말하는 고민은 명료해져 갔지만, 나는 그 질문에 지혜롭게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이 내가 내린 답이었다. 그는 기댈 수 있는 연상의 연인을 원했고, 나는 배울 수 있는 듬직한 연하의 애인을 바랐다. 우리가 이것을 극복하고 연인이 되었더라도 이 공백은 메울 수 없었을 것이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 '위피'라는 앱에 가입했다. '위피'는 동네 친구를 소개해준다는 목적의 앱이었는데, 나는 동네 친구가 되어 연인이 될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이 앱의 회원이 되었다.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한 남자를 기다렸는데, 남자는 반팔, 반바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우리는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술을 마시러 이동했다. 편한 친구를 만난 느낌에 터놓고 말을 하다가 남자는 내게 사실 여자 친구가 있다고 고백을 했다. 장거리 연애 중인데 계속 만날지 고민 중이라며 내게 상담을 했다. 나는 소주 3잔을 마셔서 흐릿해진 정신을 떨치려 냉수를 연거푸 마셨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남자를 나를 따라 일어서며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절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는 가는 나를 잡더니 내가 화가 난 이유를 물었다. 이건 동네 친구를 만나는 앱이지, 연인을 매칭 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정확히 내 의사를 말했다. 나는 이 앱을 통해 이성친구를 찾으려고 한 것이고, 너와는 더 이상 만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말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를 놓아주었다. 그의 목적은 나와는 달랐다. 서울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파트너를 구하러 나온 것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소개팅 앱은 불순한 의도로 다가오는 남자를 막을 수 없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뛰어든 것은 나였다. 그런데 이렇게 상처로 남는 것은 내가 또 착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만은 다를 것이라고, 나만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마음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뒤통수가 아니라 앞통수를 맞아도 그럴 줄은 몰랐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아픔은 예견된 일이었다. 내가 믿지 않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