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n Apr 29. 2022

1%의 노력과 99%의 선심.

나는 글렀다.

열일곱, 고등학교 언덕 중턱을 넘으며 생각했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예쁘지도 않은데 커서 무엇을 해야 하나. 이제와 꿈을 정하는 건 너무 늦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친구들처럼 하고 싶은 게 분명하게 있었다면, 아니면 공부라도 잘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별 볼일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어도 이모양일 거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서른 살, 나는 죽지 않으려고, 건강하려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게으른 나를 싫어하고, 증오하고, 혐오한다. 예상대로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삶에 대한 집착은 나이만큼 더해져 열일곱 보다 더 흉한 모양을 띠게 되었다. 이건 열일곱의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라 당혹스럽기도 하다.


나는,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했나 보다. 그래서 책도 읽히고, 글도 쓰게 하고, 전시회도 가게 만들고, 사람들 속에 섞여라도 보라고 기회를 주었다. 던져지고 뒹굴다 보면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괜찮은 부분들도 있을 거라고. 그럼, 늦었어도 조금의 노력만들이고도 충분히 뒤처진 것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실, 어느 정도 뒤쳐진 지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몰라도 어떻게든 해봐야 했다. 죽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나는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정말 돈만 벌면 나의 모든 결핍들을 참고 살아갈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맞다고 할 자신도 없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은 많아지질 않고 오히려 줄어만 간다. 인생을 알아가는 건지, 정말로 모르는 게 늘어만 가는 건지 모르겠다. 자신감 있었던 것은 오히려 열일곱의 나다. 그때는 이 정도로 손을 놓고 내 인생을 관망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 일기장을 사서 일기를 쓰면 된다. 소설을 쓰고 싶다면 당장 써도 되고, 드라마를 쓰고 싶다면, 영화를 쓰고 싶다면 그냥 계속 써 나가면 된다. 읽히지 않은 글은 가치가 없는가. 조회수가 없고, 관심을 받지 못한 글은 사장되면 그걸로 끝인 것인가. 애초에 글을 왜 쓰겠다고 생각했을까. 초등학생 때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그 좋은 기억 하나로 여태까지 꿈을 이어왔다는 것 자체가 과연 옳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글 쓰는 것 말고 다른 것을 도전하는 것은 어떤가. 왜 꼭 글이어야만 하는가. 나는 왜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가.


글을 떠오르는 것을 적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깊은 사유 없이 써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그렇게 가볍게 글을 써왔다. 그러면서도 주목을 받고 싶어 했고 사랑받고 싶었다. 어불성설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인데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굳이 작가가 되어야 하는가. 글과 씨름하며 단어를 고르며 끊임없이 생각하는 고된 노동을 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이 내게 기쁨을 가져다주는가.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가. 무언가가 되었다는 생각에 나를 설레게 하는가.


아니다. 나는 상을 받는, 관심을 받는 그 순간의 즐거움만이 좋다. 글을 쓰는 창작의 시간은 나에게 너무 길고, 쓰고 아프다. 드라마 70분짜리 한 회 분량은 a4용지로 30-35페이지를 필요로 한다. 나는 분량을 채울 만큼 충분한 이야기를 가졌을까. 쓰면서 알게 된다. 나는 보고 들은 것, 실제로 경험한 것만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상상 속의 이야기는 만들지 못한다. 할 수 없다. 어쩌다 잠깐 생각이 난 감상으로는 35페이지를 쓸 수 없다. 어쩌다 문득 스친 상상으로는 70페이지의 소설을 만들 수 없다. 갑자기 꿈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큰 상실감이 몰려온다. 지푸라기처럼 잡고 있었던 마지막 한 가닥이 뚝 하고 끊긴 기분이다. 


1%의 노력과 99%의 선심으로 꿈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진작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일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나의 부족한 글을 실어줄 만한 잡지, 문학지는 없었고,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놓지 못했다. 누군가는 내 글을 알아봐 주겠지. 언젠가는 내가 신진작가의 대열에 오를 수 있겠지. 나에게도 그런 기회는 오겠지 하며 끝없이 기대를 했다. 좋은 마음을 가진 어떤 편집자가 내 글을 발견해주고 사람들에게 소개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세상이 내게 선심을 베풀어주기를 빌고 또 빌며 그렇게 내 꿈을 지켜갔다. 


그건 꿈을 지킨 것이 아니었다. 내게 꿈은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주는 것이 었나 보다. 이루어줄 사람이 없는 꿈은 더 이상 날개를 얻지 못한다. 바닥에 처박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숨을 거두는 것이다. 내 꿈은 애초에 어떤 모양도, 내용도, 목소리도, 몸집도, 형체도 없어서 막연한 것이었기에 잃었다고 해서 슬퍼할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마음이 허전하다. 돌아가야 하는 건지, 앞으로 계속 걸어가며 다른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꿈이 없는 나는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나를 무엇이라 소개해야 할까. 


쉽게 가도 된다. 꿈 없이 지금처럼 계속 살아도 된다. 최저생활비를 받는 직장에서 스트레스 적게 받으며 그렇게 살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창조고 나발이고 다 뒤로 재쳐놓고 그냥 살아도 된다. 당분간 그렇게 살아볼까. 내가 쓰는 글은 10원어치의 값도 안되니 그 시간에 다른 것들을 벌여볼까. 부모님 힘들게 하는 행동은 그만하고 이제라도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그만 걱정시켜드리는 것이 맞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사는 건 나답지 않은 것 같다. 또 반대로 나답게 살아야 하나? 사는 모습대로 사는 게 나다워지는 건 아닌가. 


글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 싶다. 이렇게 날 애먹이는 글, 더 이상 좋아하기 싫다.  


 

작가의 이전글 굴비 굽다가 철든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