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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May 03. 2022

날카로움

아주 사소한 목소리

나에겐 병적으로 듣기 싫은 말이 있다.

? , 이거  이렇게 했어? ,  그러는 거야? , ? , ? 다그치는 말처럼 느껴져서 들을 때마다 식은땀이 나고, 신경쇠약적인 짜증이 난다.


높은 소리가  때마다, 불안해진다.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자꾸 위축되고,  사람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가 유별나다고 말했다. 엄마는... 원래 그렇게 얘기한다고.  다그치는  아니라 물어보는 거잖아. 네가 우물쭈물거리니까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나의 별스러움. 유난스러움.  사소함.

대부분의 화살은 당황하는 쪽의 사람으로 겨눠졌고, 나는 매번  싸움에서 졌다.내가 유난스러운 것으로 마무리되고, 나는 나에게서 문제점을 찾아내기 바빴다.

괜찮아.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무사하잖아.

그래서 나는 내 안에 커튼을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그 소리들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보면 되고,  들은 척하면 지나갈 거야. 어른이 되어야지. 혼나는 것처럼 굴지 말자. 당당해지자.

결국, 이 싸움은 내가 엄마와 이겨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와의 싸움이었으므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특이했다. 7 때는 혼자 집에 있을 때마다 책으로 울타리를  놓고, 티브이를 틀어놓으며 무서움을 달랬다.  울타리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아무도  해칠  없다고.

그 순간에 옆집에 있는 엄마는 내게 너무 멀었고, 방 안에 있는 언니는 다가가기엔 무서웠다. 노크하러 가기까지 문 앞에서 참 많이 망설였다. 어떨 때는 노크를 멈춰도 잠 긴 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운했지만 이해했다. 난 그럴 만한 아이였으니까. 나의 이 사소한 무서움으로는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했다.


그래서  불안함이 어쩌면 내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이렇게 태어난  분명했다.

남들보다 불안을 이기는 힘이 약한 아이.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


가끔 엄마는 나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안겨주었다.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업어주고, 달래주고, 맛있는 음식으로 아플  새벽 밤을 지새우며 아픈 나를 간호해주었다. 자주 체하는 나를 안쓰러워해 주며, 감기에 걸린  몸의 열을 내리기 위해 해열제를 먹이며 업어서 재웠다.


그런데도   항상,  사소함을 이기지 못하고,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고 이런 밤이 찾아오면 슬퍼질까. 오늘도 어제와 다를  없는 하루임에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작은 감기 정도의 증상뿐인데도  슬프다. 기운이 없는 것은  기운의 연장이겠지. 달라진  없다고 되뇌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안전에 대한 강박적인 불안.  것에 대한 강한 집착.  것이   없는 것은 바로 포기해버리는 나약함.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들. 그리고 나와 함께 자란 것들.


밖에 나가려고 애쓰는 요즘의  모습. 불쌍하다. 어울리고 싶은  섞이질 않아 항상 외롭고 공허하다. 열은 계속 나고 약을 계속 먹는다. 요새의 나는 몽롱함으로 어지움으로 나른함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웃기면 웃고, 슬프면 운다. 그런데   하루는 채워지지 않는 걸까.  가득 찬다는 느낌보다는  뚫린 공간 안에 바람만 가득  기분일까. 배부르지 않고 역겨울까. 소화되지 않고 배설될까.


 해는 내게 유난히  힘들다. 날로  해가는 외로움과 고독함. 쓸쓸함.  존재의 필요. 우울감.  사소한 것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연약함.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텐데. 다른 것들도 발견하고 싶다.  안의 기쁨과 만족감. 반드시 찾아서 안고 싶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은데.  필요는 어디에서 인정될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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