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소한 목소리
나에겐 병적으로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응? , 이거 왜 이렇게 했어? , 왜 그러는 거야? , 응? , 응? 다그치는 말처럼 느껴져서 들을 때마다 식은땀이 나고, 신경쇠약적인 짜증이 난다.
높은 소리가 날 때마다, 불안해진다.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자꾸 위축되고, 그 사람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가 유별나다고 말했다. 엄마는... 원래 그렇게 얘기한다고. 널 다그치는 게 아니라 물어보는 거잖아. 네가 우물쭈물거리니까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나의 별스러움. 유난스러움. 그 사소함.
대부분의 화살은 당황하는 쪽의 사람으로 겨눠졌고, 나는 매번 그 싸움에서 졌다.내가 유난스러운 것으로 마무리되고, 나는 나에게서 문제점을 찾아내기 바빴다.
괜찮아.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무사하잖아.
그래서 나는 내 안에 커튼을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그 소리들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안 보면 되고, 못 들은 척하면 지나갈 거야. 어른이 되어야지. 혼나는 것처럼 굴지 말자. 당당해지자.
결국, 이 싸움은 내가 엄마와 이겨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와의 싸움이었으므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특이했다. 7살 때는 혼자 집에 있을 때마다 책으로 울타리를 쳐 놓고, 티브이를 틀어놓으며 무서움을 달랬다. 이 울타리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아무도 날 해칠 수 없다고.
그 순간에 옆집에 있는 엄마는 내게 너무 멀었고, 방 안에 있는 언니는 다가가기엔 무서웠다. 노크하러 가기까지 문 앞에서 참 많이 망설였다. 어떨 때는 노크를 멈춰도 잠 긴 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운했지만 이해했다. 난 그럴 만한 아이였으니까. 나의 이 사소한 무서움으로는 누구도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냥 혼자 있는 게, 편했다.
그래서 이 불안함이 어쩌면 내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는 이렇게 태어난 게 분명했다.
남들보다 불안을 이기는 힘이 약한 아이.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아이.
가끔 엄마는 나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안겨주었다.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업어주고, 달래주고, 맛있는 음식으로 아플 땐 새벽 밤을 지새우며 아픈 나를 간호해주었다. 자주 체하는 나를 안쓰러워해 주며, 감기에 걸린 내 몸의 열을 내리기 위해 해열제를 먹이며 업어서 재웠다.
그런데도 난 왜 항상, 저 사소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고 이런 밤이 찾아오면 슬퍼질까.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임에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작은 감기 정도의 증상뿐인데도 참 슬프다. 기운이 없는 것은 약 기운의 연장이겠지. 달라진 것 없다고 되뇌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안전에 대한 강박적인 불안. 내 것에 대한 강한 집착.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포기해버리는 나약함.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들. 그리고 나와 함께 자란 것들.
밖에 나가려고 애쓰는 요즘의 내 모습. 불쌍하다. 어울리고 싶은 데 섞이질 않아 항상 외롭고 공허하다. 열은 계속 나고 약을 계속 먹는다. 요새의 나는 몽롱함으로 어지러움으로 나른함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웃기면 웃고, 슬프면 운다. 그런데 왜 내 하루는 채워지지 않는 걸까. 왜 가득 찬다는 느낌보다는 뻥 뚫린 공간 안에 바람만 가득 찬 기분일까. 배부르지 않고 역겨울까. 소화되지 않고 배설될까.
올 해는 내게 유난히 더 힘들다. 날로 더 해가는 외로움과 고독함. 쓸쓸함. 내 존재의 필요. 우울감. 그 사소한 것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내 연약함.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하지만 그것만이 내 전부는 아닐 텐데. 다른 것들도 발견하고 싶다. 내 안의 기쁨과 만족감. 반드시 찾아서 안고 싶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은데. 내 필요는 어디에서 인정될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