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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May 24. 2022

보리차를 먹고 자란 어른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Y에게 근 1년 만에 연락이 왔다. 서촌에서 브랜드 팝업 스토어를 열었으니 놀러 오라는 구실이었다. 얼굴도 볼 겸 안부도 물을 겸 친구 H와 함께 통인시장 부근의 매장을 찾았다. 피곤에 물든 친구의 얼굴을 보니 직장인의 애환을 느껴졌다. 그러나 주말근무의 억울함을 위로해주듯 니트 하나가 팔렸다. 친구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녀석 어른이 다 되어있었구나. 


친구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H와 간단히 식사를 하러 밥집을 찾았다. 익선동에 도착하자 노상에 테이블과 의자가 일렬로 늘어서 손님들이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두운 밤 조명만을 의지해 술잔을 기울이며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H와 나는 그사이로 걸어가며 우리의 도착지로 향했다. 


계절마다 당기는 음식이 있듯 요즘 나의 입맛은 한식에 맞춰져 있다. 맵고 짜고 달고 느끼한 4대 천왕의 미각들을 좀 뒤로하고 건강한 밥집을 찾느라 좀 고생을 했다. 익선동 골목을 굽이굽이 가르고 들어가니 우리가 찾던 곳을 찾았다. 반가운 마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명란 가지 비빔밥과 들깨 비빔면을 주문했다. 


감칠맛이 도는 양념과 가지 볶음과 곁들여진 명란 소스가 일품이었다. 먹자마자 동시에 터지는 감탄에 친구와 공감의 웃음이 오갔다. 10년 동안 알고 지낸 친구인데도 늘 만나면 먹는 메뉴는 피자나 파스타, 양식 위주였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이번 해부터는 한식에 초점이 맞춰지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식사를 하며 피부 속 당김과 건조함이 예사롭지 않아 졌다는 말들이 오갔다. 하다 하다 어머니의 화장대에 놓인 설화수를 몰래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자 친구가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박장대소했다. 중년 부인의 상징이라 생각했던 화장품인 설화수를 탐내는 나이가 되었나 싶다가도 내 피부가 이렇게 좋아하는 데 그까짓 것 뭐 대수냐는 생각도 들었다. 


긴 시간 알고 지냈음에도 새로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가정사다. 그녀가 살아온 가정환경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녀는 어릴 적 동네에서도 유독 말라서 주변인들의 걱정을 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녀의 어머니는 몸에 좋다는 영양제와 한약으로 찌지 않는 살을 보충할 방법을 선택하셨다. 편식도 심하고 밥 먹기도 싫어해서 어머니의 애를 태웠다는 그녀는 불행 중 다행으로 영양제는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고 했다. 손에 한 움큼 쥐고 꿀떡꿀떡 잘 삼켜서인지 지금은 키도 크고 늘씬늘씬하다.


얘기를 하다 보니 공통점이 있었는데 가정의 식생활 환경이었다. H네 어머니는 그녀가 다 자랄 때까지 흔하디 흔한 삼겹살도 먹이지 않고 키웠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여서 건강에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소주에 삼겹살을 곁들여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들은 삼겹살과 초면인지라 낯을 가리기 시작했다. 나는 심지어 어떤 이에게 "무슨 콘셉트이야?"라는 식의 비아냥도 들었다. 세상에 스무 살에 삼겹살을 처음 먹는 사람이 있다며 주목을 시키니 절로 얼굴이 빨개졌다.


세끼는 모두 집에서 해결, 그마저도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매끼를 반찬과 간식을 해먹이며 인스턴트 음식을 금지시하며 키운 셈이었다. 물조차도 생수는커녕 보리차를 직접 끓여 마셨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당황했던 것은 정수기 사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는데 친구들은 익숙하게 사용했다. 뭐, 버튼을 누르고 레버를 뒤로 당기면 온수가 나오고 아니면 냉수가 나오는 식이라는 방법을 알고 난 후로도 정수기 물을 먹진 않았다. 집에서 먹던 물과 다르고 왠지 모를 비린 맛이 났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생수 감별사가 되어 편의점에서 사 먹는 물을 브랜드별로 알아맞힐 수 있다.  미묘하게 물맛이 달라서다.  


12년 동안에는 부모님 그늘 아래서 식이조절을 해가며 자랐다 쳤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마구잡이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원체 식성이 까다롭긴 해서 가리는 음식도 많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려니 곱창, 삼겹살, 피자, 떡볶이, 자장면, 탕수육 등 기름진 음식들을 매일 먹다시피 했다. 애써 길들여놓은 영양 체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리차를 물 대신 마시고 자란 우리들은 보리차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친구가 집에 놀러 오면 물 대신 보리차를 건넨다. 어느 날은 보리차를 받아 마신 친구가 맛있다며 몇 잔을 더 마신 적도 있었고, 귀한 차를 마신다며 부러워하는 친구도 더럿 있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매일 밤 주전자에 보리차를 우려내던 어머니의 그 정성을, 귀찮은 내색도 없이 매일 같은 시간에 물을 끓여 내일을 준비하던 그 마음을 말이다. 감사함에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어렸을 때는 정수기 없는 게 창피한 적도 있었다. 우리 엄마는 돈이 없어서 그러나, 왜 정수기를 안 사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를 졸랐다. 정수기 제발 사자고, 친구 중에 정수기 없는 아이는 나뿐이라고. 10살의 나는 그랬다. 보리차 지겹다고.

더운 여름날 냉장고에 물이 없으면 엄마를 탓했다. 그러니 진작 정수기 샀으면 보리차 다 끓일 때까지 안 참아도 되지 않냐고. 물론 그런 불편함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다 추억이었다. 갓 끓인 뜨끈한 보리차를 후후 불러가며 먹던 일, 한 숨 식힌 보리차를 델몬트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는 엄마의 칭찬을 기다렸던 일, 주전자의 주둥이에서 김 나는 것을 보며 멍 때렸던 일 다 즐거운 한 때였다. 


H와 나는 스무 살이 되어 만났지만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시절에도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참 재미난 일이다. 보리차를 끓여 마시고 탕수육을 튀기고, 돈가스를 직접 만들고, 오븐에 빵과 피자를 구워 먹었던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다는 게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별난 가정이지만 모이니 동질감도 느껴지고 나름의 장점도 나눠가며 긴 대화를 이어갔다. 


H와 11년 지기 친구인데 또 알아갈 것이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다른 세상이 내게로 걸어오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말을 실감하게 되는 서촌에서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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