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잃을 때가 언제인가?
누가 나를 화나게 할 때?
아니다.
다이어트한다고 며칠 까불다가 바람 타고 들어온 찌개냄새를 맡았을 때다.
그날은 냉장고가 냄비에 다 들어가는 날이다.
김치찌개인가 부대찌개인가 너는 누구인가.
라는 작품이다.
삼겹살이,
두툼한 프랑크 소시지가,
시큼하게 잘 익은 김치가 냄비를 꽉 채운다.
언젠가 먹겠다고 얼려 둔 동두부도 원초적인 모습으로 함께 한다.
간 많이 하면 안 된다. 김치 맛없음 식초 설탕으로 기교 좀 부리고 맛있는 조미료 좀 넣고
삼겹살 기름이 벌겋게 올라올 때까지 끓이면 될 일이다.
한 공기 밥이 샤벳처럼 사라지고, 두 공기를 향해 가는 손을 간신히 잡아본다.
다음날이다.
먹다 보니 짜서 물을 붓고 끓여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본다.
재료를 어찌나 많이 넣었는지 처음과 다름없어 뵌다.
국물을 한껏 머금은 두부,
부드럽게 씹히는 삼겹살과 팅글거리는 소시지에 역시나 밥 한 그릇이 녹는다.
뺀 몸무게가 원위치로 돌아오는 시점이다.
또 다음날,
엔딩이다.
참고 참았던 라면사리를 흐트러지지 않게 장식한다.
비엔나소시지를 한주먹 얹고 잘 익은 김칫국물과 라면수프로 간을 더 해서 정신을 놓기로 한다.
짜다 싶게 국물에 젖어든 면을 건져 밥에 얹어 후루룩,
푹 익어 부서지는 고기를 남김없이 건지며
다이어트는 요요가 정상이라고 부른 배를 다독인다.
냉장고를 냄비에 넣고, 냄비를 내가 비웠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
배가 고파 이성을 잃은 날엔 코끼리를 먹어치울지도 모를 일이다.